발칙한 QT
나는 전을 제대로 건축하고 있는가 (왕상6:1-13) 본문
제 6 장 ( Chapter 6, 1 Kings )
비스듬하였지만
주의 사랑 안에서
꿋꿋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는
조만 간에
우람한 성전을
제 영혼에 지어 드리려 합니다
반듯해야만
최고일 줄 알고
몸부림을 칠 때는
오히려 허약했었습니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 공기와
그 햇빛과
그 시원한 비를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이같이 든든해져 있었습니다
주여
당신의 사랑을 믿습니다
주여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입니다
제가 꾸미는
이 생기를 보소서
기뻐하여 주소서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2.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전은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삼십
규빗이며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출애굽한 사백 팔십년이나 지나서
왕이 된지 사년 넘어서 부터
'여호와를 위한 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는 있는가?
내 영혼 안에 늘 그 분이 계시는
여호와의 성전이 바로 나인 것은 맞지만
출애굽하던 그 시절과는 다른
대충 장막에서 '전'으로 대신하던
그 어줍지 않은 '전'처럼 생긴
조금은 더 균형 잡히고
주님 뵙기에 죄송하지 않은
성장한 '영혼의 틀'을 잡아가고는 있는가?
난 내 영혼에
주님께서 불신의 그 어두운 시절을 건너와
격정적인 감동 안에서
내 영혼을 만지기 시작하신
그 첫사랑 이후 지금까지의
출애굽 시간은 기억하는가?
출애굽 후 많은 시간을 거쳐
주님의 말씀 안에서 '묵상'의 시간 동안
그 친밀한 주님의 만지심을 기억하고 있는가?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 님 처럼 강력히는 아니지만
돌아보면 너무도 그 분이 내 곁에서 가까이 하시고 계셨던
그 흔적은 기억하고 있는가?
오늘, 화요일.
'월수금' 오후가 내 수술 시간이고
그 시간의 외래는 '원장님'께서 대신해주신다.
8월에 너무 바쁘다가 9월에는 좀 한가하련가 했더니
다시 환우들이 밀려와 수술을 꼭 한가위 전에 하고
요양 차 쉬길 원하시는 분 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그래서 '원장님'께 진료를 어렵게 부탁드리고는
'화요일'인 오늘 수술 해주기로 한 분이 계시다.
수일 전에 오셔서 모든 수술을 위한 준비와
내과적 검사를 마치고 어제 입원하셔서
수혈을 한다음 오늘에야 보호자 분을 만나뵙고
수술 승락서를 받고서 오후에 수술하기로 되어 있다.
보호자 분께서 낯이 많이 익으시다.
그래도 먼저 아는 척 안하시길래 그러려니 했다 .
참 호감이 간다.
얼굴이 맑으시고 참하시다.
환우 분도 조용하시다.
설명을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조금은 오버 - 오버해야 환자들이 안심한다는 생각으로 내 자아가 용솟음 치는 .. 잘난 체 ^^;; - 하여 설명을 하며 수술 승락서를 받았다.
참 온유하시다.
그리 많은 연조도 아니신데 차분하고 매사에 겸손하시다.
그 분들이 올라가자마자
호들갑스러운 반가운 분의 방문이 있으시다.
병원 환자로 오래 계시다가
병원에 'RD'라는 커피숍 오픈 하시고
많은 분들에게 봉사하시는 '여' 집사님이 오늘도 예외가 아니게
'마' 쥬스를 들고 오시다가 그 분 부부를 뵙고 밖에서 한참을 떠드시다가
내 방에 들어와서 설명하시는 것이시다.
' 저 남자 분이 누구신지 아세요?
S교회 목사님이신.. Y목사님' 이세요.'
병원에서 몇달 전에 외과적 수술을 복강경으로 받으시고
사후 care에 대한 설명을 착오로 - 의사 진이 외국 연수로 잠시 바뀌는 ... ㅜ.ㅜ;;- 아주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시고는 Y대학 중환자실까지 전원하셨던 분이시다.
그런 데 그 분의 그 후 대처가 너무 놀라왔다.
일체의 면회를 안하시고
병원에 손해가는 소문이 갈까 - 이 병원도 미션 병원이 아니시던가? - 교인 들에게 조차
단속을 하시던 분이시다.
그것까지는 생각이 깊으신 분이시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겪으시면
그게 병원의 잘못이던 '벼락 맞을 정도의 드문 이유로 하여 겪은'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큰 고생이셨더면
다시는 이 병원에 오실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
인간의 심사다.
그러나, 그 분은 사모님을 이병원의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나중에 차트를 뒤져 보았다.
전혀 'S교회 사모님'이란 원무과 기록 내지 차트에 써 있지를 않다.
대부분의 목사님 들의 태도나
조금의 권위자들 부류에 계신 분들은 반드시 표현하신다.
그래야 병원에서 대접을 받으실 수 있고
더구나 이 병원은 교회에 협약이 되어 있으면 금전적 이득도 있기에 그러시다.
그런데 이 분들은 아니시다.
단 한마디도 나에게 사모님의 느낌이나 목사님의 찔리는 듯한 '권위감' 같은 것은
보이시질 않으시는 것이시다.
내내 설명하는 동안도 눈빛 하나 번쩍이던 것이 없으셨다.
만일 내가 입장을 바꾸었더라면
이 병원에는 근처에도 안오셨을 것이며
설령 용서하는 입장에서 베푼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써서
이곳에 온다면 아마도 '의료 원장'님 급의 이름을 들어서 모시고 오셨을 것이다.
더구나 그 S교회는 꽤 큰 교회다.
그러니 더욱 놀랄 수 밖에...
나중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그 마져도 그냥 나가셨을 분들이다.
가슴이 따뜻하다.
놀랍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 들을 용서한다는 마음.
겸손.
권위를 숨길 수 있는 차분함.
그 안에 세워진 성전의 크기가
S교회가 세상에 '성도의 수'로 받아들여진 크기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성전이
그 분 목사님 부부들의 영혼에 세워져 가고 있음을 느끼며
마음이 숙연해 짐을 느꼈다.
수술.
복강경으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다.
잘 마무리했다.
점심을 먹어가며 화요모임에 동행하시는 비슷한 연배의 목사님께 기도받았다.
그탓인가?
차분하게 잘 진행되었다.
나와서 설명을 하는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으시다.
나도 아는체를 안했다.
그 분의 얼굴을 다시한번 살폈다.
번쩍이는 눈빛보다는 소박하고 고개숙이는 겸손의 얼굴이다.
내 마음을 스치는 이 교만의 습관이
늘 나보다 부족한 자 들을 쉽게 보고 싶은 유혹이 순간 내 영혼을 스치고 지나갈 듯
그러한 겸손이 몸에 배신 분이시다.
묵상의 구절에
' 이제는 제대로 된 큰 성전'을 짓는 솔로몬이 나온다.
그의 성전을 지음은
개인의 권위의 소산물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백년을 거치면서 염원하던 것을 그가 이룬 것이다.
그렇다.
나도 그렇다.
내가 이루어야 하는 내 영혼의 성전의 크기는
비단 나의 영적 성취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루는 내 성취는
나를 바라보는 자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를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S 교회 목회자님을 보고 감동하는
그 참된 신앙인의 모습의 전형을
'정~말' 아무런 자격도 없고 포학하기가 그지없던
이 '죄'하인였던 자가
주님의 말씀과 감동으로
너무나도 크고 훌륭한 영적 성전을 지어감으로
남들이 '주하인'으로 서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일이며
정말 하나님,
살아계시는 그 분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니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내 변화로 보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힘이 난다.
솔로몬의 이룸은 솔로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것이다.
영적 성장에 욕심을 부릴 일은 아니다.
어제 '헨리 나우웬' 님의 '발돋움' 을 읽어가며 감동을 받았다.
오늘날 모든 영역에서 성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바
영적 영역에서도 '성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듯
성장의 가치를 재고
성장의 정도를 비교하고
성장하지 못하면 좌절하고...............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
그것이 올바른 것이다.
내 영적 성장을 통하여 아름다운 성전을 꾸미려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그 마져도 주님의 말씀을 앞서가면 안된다.
오늘 보라.
솔로몬의 성전도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 전에 임하시고야 이루어졌다.
그가 재위하고 사년 만에 시작이 되었다.
서두르지 말자.
겸손하자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자.
내려 놓자.
귀하신 주님.
놀라우신 주님.
아무 생각도 못하고
아무 느낌도 없이
느즈막히 말씀 앞에 앉았습니다.
그러니 또 이리 단 한번도 막히지 않고
말씀을 인도해 내십니다.
귀하신 주여.
살아계신 주시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대하여 묵상 하려 하던 중
주님은 그 성전에 앞서 임하시던 주님의 뜻을 보이시고
성전은 내 개인의 영혼의 성장을 아름답게 이루어 내는 것임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그 성장은 비단 나 개인 뿐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는
주님을 알아야 하는 세상의 모든 자들을 위해서라도
책임을 지니고 이루어야 할 것이며
그러기위해서 유지해야 할 '롤모델'까지
S교회 목사님을 통해서 보이십니다.
참 감사합니다.
귀하신 주님.
그 분을 우상으로 하기는 싫습니다.
그 분을 통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보길 원합니다.
흔들릴 때 잡아주시는 주님.
주님을 다시 뵈올때
큰 성전을 제 영혼에 담아 보여 드리겠나이다.
귀하신 주여.
제 영혼을 잡아주소서.
이끌어 주소서.
인도하소서.
성령으로
저 죽을 때까지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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