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생명으로 굳게 서다[살전3:5-13] 본문
서 있음이
그냥 서 있음이지만
마냥 그냥 서 있음 만은
아니다
오늘 피어냄이
단지 며칠 피워내고
영원한 망각 속에 지워질
그런 하찮음 만도
또한 아니다
난
누구도 그러했듯
이 땅에 잠시 발디딛고 살다
어느새
내 시간이 다되어지면
역시 사라지고야 말
그런 자이긴 하지만
내게 허락된
이 인생의 시간동안
예수 그리스도
내 생명의 반석 위에
굳게 발 딛고 살면서
주님 내게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다가
부르시는 그날되어
나 두팔 벌려 기뻐하며
주께 가리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서다 .
stand.
서기 위해서는 두 발을 디뎌야 한다 .
어디에 그래야 하나?
반석이다.
단단한 지면에 발을 디뎌야 '굳게' 설 수 있다 (firmly stand ) .
무엇이 반석인가?
믿음이다.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당연히도 예수님이다.
일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든든히 선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꼭 누가 예수님을 믿어 안믿어.. 할 때 흔들리고 안흔들리는 정도의 차이던가?
일상에 사는 모두가 선교지의 선교사일 때만이던가?
일상에서 전도하는 때 이외는 모두 잊어도 되는가?
믿음이 꼭 믿지 못하게 하는 외적인 압박이 있을 때만이던가?
그렇다면 '성경 '속의 대단한 인물들이나
선교지에서 치열하게 영적 전투를 전개하시는 선교사님들이나
이 땅에서 목회자 들, 그 중에서도 깨어 있으신 목사님들만 해당하는 이야기인가?
나머지 '민초民草'들...
주하인 같은 ^^;; 영적 민초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던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단한 그들만을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시던가?
아니지 않는가?
모두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시지 않으신가?
무엇을 통해
내가 굳건히 서 있음을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내가 서 있음은 나도 안다.
난.. 조금씩 조금씩 여기까지 왔다.
겨우 겨우 걸음마하던 첫사랑 이후의 시간들을 지나
일어서다 넘어지며 깨지고 다치던 영의 무릎의 상처들이 아물고
점차 발걸음을 여유롭게 떼는 자유로운 걸음 걸이를 걸으며
내 온 영혼의 관절에 비교적 단단한 영적 각질이 생기며
어느 정도 단단한 바위에 발을 걸치는 데까지 와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난.. 잘 서 있는가?
오랜 '훈시' 중에 교정에 서 있는 학생들은 안절 부절 못한다.
군대 훈련 -의사들도 3개월의 훈련 과정을 통해 장교로 임관한다. ^^* - 중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많은 힘듦을 초래한다 .
특히 칼바람 부는 '영천 ' 훈련장에서 오래 서 있음은 더 그렇다 .
가만히 있으면 파고드는 칼바람을 이겨내기도 힘들고
괜한 상념들이 머리를 파고들며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하고
잠시 잠시 움직여야 근육의 마비가 오지 않는 데
만약 서 잇음이 백척간두 위라면 어찌겠는가?
서 잇음은 더욱 긴장을 초래치 않겠느가?
일상에서의 굳건하게 서 있음.
큰 자극 없이 가만히 서 있음은
목표가 있으며 행진할 때보다 훨씬 큰 상념을 유발한다 .
머리 놓고 가만히 있기는
영적 전투의 백천 간두에서 좌우 절벽으로 떨어지는 위험성을 유발하고
사뭇 방향 없는 긴장은 과도한 근육 수축으로 탈진하게 된다 .
서 있는 이유를 알고
서 있음의 끝을 알고
서 있음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나.
어느 지점이던가?
격랑은 사라졌다.
가끔 가끔 불어오는 바람 만 있다.
자극이 별로 없다 .
편안히 있어도 될 것 같아 가만히 있다 보니
불현듯 내가 흔들거리는 것 같다.
떨어질 것 같아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졸았던 것 같다.
식은 땀이 난다.
잠시 불안하다 .
그러다 보니 다시 온몸에 긴장이 된다 .
계곡을 스치는 바람이 내 상황의 백척간두임을 느끼게 하고
온몸에 다시 긴장의 힘이 들어가게 한다 .
정신이 아직 비몽사몽인 것 같다 .
잠시 혼미한 내 영혼에 사념이 밀려들려 한다.
'너.. 왜 여기 있어?
다른 이들은..
언제까지 이 지루한..
너.. 잘못한거야?.... '
갑자기 외로워 지려 한다 .
온 우주가 갑자기 어두워 지려 한다.
발밑을 괴고 있던 단단한 반석이 어느새 모래처럼 흩어 내리는 듯
갑자기 혼란이 오려한다 .
다시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서 있을 수 밖에 없는가 .. 돌아본다.
아니다.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다시 '레마'로 깨달음으로 붙드신다.
'주하인.
이 인생은 '연단의 과정'이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사십년 과정'
이제 네가 서 있음은 가만히 홀로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음을 보는 과정이지 않는가?
여기까지 격렬하고 치열한 하나님의 인도로 왔고
이제 홀로 , 아무 자극없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과의 그 뜨거웠던 기억을 놓치지 않는 훈련... '
아.....그렇다.
이제 주님을 뵈올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
내 속에서 정화되어 눌려가던 찌거기들이 가라앉아 있으니
어느새 내가 온전히 깨끗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으나
조금만 흔들려도 다시 부유물들은
내 영혼을 다시 뿌옇게 만들 개연성..
그것을 고요히 들여다 보길 기다리시는 과정..
그러면서 가라앉아 있는 내 영혼 깊은 곳의 오니 (汚泥)들을
하나님과의 독대 가운데
주님의 은혜로만으로 인하여 조용히 배출하는 기회.
내 영혼이 진정으로 더 성숙하고 겸허히 커 질 수 있는 기회........
그것이 내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 안에서 굳건히 서 있는 '
바로 지금의 시간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시간들은 치열한 영적 전투의 대표자로 서 있지 못한
세상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렇듯
영적 전투 대열 속의 일반 '민초'로 있으면서도
당연히 '각 개인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옳은 방향이 아닐런가?
세상의 돌들 하나, 떨어지는 참새 하나에게도
모두 주님의 아심이 곁들여져 있는데
당연히도 이 부족하지만 그들보다는 귀한
주하인 같은 모든 세상의 하나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듯 관여 하지 않으실런가?
그 안에서 내 살아감의 방향.
굳건하게 섬은 방향을 잡아야 한다 .
다시금 하나님이 오늘 내 일상에서 바라시는 바...
내 남은 인생의 나아갈 바..
그 안에서 일희 일비하는 것의 옳은가 옳지 않은가...하는 것을 되돌아봄...이 진정 필요하다.
그것이야 말로
이 고요한 듯한 , 그러면서도 사뭇 팔다리에 긴장이 되게 하는
이 늙은 삶이 그리 흔들리지만은 않는
평강의 삶이 될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살리라'하는 오늘의 말씀에 표현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믿음'안에 '굳건히' '서야 한다.'
내 믿음의 방향은 주님 안에서 곧 있으실 주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고
그 과정을 밟아감이 이 남은 인생의 목표이다.
그러한 후 난.. 영생을 살게 될 축복을
가슴뛰게 기대할 수 있어야 하겠다.
아직은 이 논리 만큼
가슴에 덜 내려와
가끔 이 인생 백척간두 위에서 졸다가 놀래긴 하지만.. ^^;;
주님.
지난 밤 당직을 잘 지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여성 병원도 지키소서.
삶을 지키소서.
우리 샘 의료원도 그리하소서.
감사할 것은
괜한 불안이 나를 흔들려 함이
오래된 내 터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은 내 신앙 백척간두 위의 잠깐 졸음이었음을 깨닫게 하심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다시 방향을 잡고
내 서 있는 이유,
일상이 그리 변화가 없는 가운데서도
예상되는 두려움들의 이유가
그 안에서 더 큰 확신,
주님으로 인한 연단 과정임을 깨달아
오히려 두 발에 더 힘찬 디딤으로
내 믿음의 반석을 굳게 하여
영혼이 그로 인하여 살게 되는
또한,
나를 바라보는 내 주위, 내 가족들의 같이 삶을 위하여
그리허락하심을 이해합니다.
주여.
아직도 자주 자주 흔들거리며 졸기도 긴장하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이 부르실 그 때가 되면
난 두손들고 홀연히 주의 영생에 갈 것임을
점차로 뚜렷이 기대하게 됨을 또 기대합니다.
내 모든 존재의 이유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또 오늘 하루
내 디딜 발 밑과 내 다리의 힘을 주장하실 것을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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