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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속을 나가는 다윗의 뒷 모습(삼상 24:1-22) 본문

구약 QT

굴속을 나가는 다윗의 뒷 모습(삼상 24:1-22)

주하인 2008. 6. 19. 13:40

제 24 장 ( Chapter 24, 1 Samuel )

 

 내

굴 속을 나오는 동안

주님은

많은 것을 보여주신다.

어둠 속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일상, 내 주위에

이처럼 많은 아름다움이 있음을

점차로 깨달으면서

많은 감동 가운데

하루를 살 때가 늘어난다.

 내

근무하는 병원,

샘 병원의 아침이

놀랍도록 아름답다.

주님이

귀하게 보시는 이곳,

이곳을 사랑한다.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굴 ,

어두운 때.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그것도

아주 깊은 곳.

무엇인가에 쫓겨 피해

사람 눈 조차 두려워서

숨어 있던 곳.

절망의 그곳.

 

 굴 속 깊은 곳.

 

 굴 깊은 곳에 있을 때.

 

초조했을 것이다.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

눈 만껌벅이는 순간은

그야말로

초조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굴 속으로

홀로 들어오는

사울을 발견하고는

그들

다윗 일행의 뇌리에는

폭죽 터지듯한

어떤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 이게 웬떡?'

이라고 생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ㅎ

 하지만

이들 믿음의 백성들은

당연히도

아래에 나오다 싶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굴 속 깊은 곳에서

초조함과 불안의 극치 속에서

갑자기 생겨난 기회니

당연히도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천우신조의 기회가

하늘의 뜻 이외에는

달리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보라.

다윗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들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지금도 주위에 보면

하나님 응답을 들었다는 분들이 많다.

그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정황상 너무나도 들어 맞아

부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더구나,

강한 어조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하면,

부인하는 게 죄 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 다가오는 혼란이 있다.

 

우선

망상과 응답 사이의 구분을 어찌하는가?

개인적인 성향의 오류로

망상 내지 환청 환각을

응답으로 착각하는 종교적 망상주의자들도 없지 않다.

허나,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정말 필요한 곳에

당신의 주권적 의지에 의하여

내려지는 게 당연함을 생각할 때

그러한 응답이 만일

나에게 주어진 '레마'라면

그걸 불순종하거나 무시하는 죄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

또한 ,

가끔 묻는 기도를 하는데

말씀에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또한 논리적 모순 아닌가?

 

 특별히

오늘의 상황으로 보아

그들

다윗의 사람들도

말씀은 확실히 들을 수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과

응답을 받을 영적 성숙도

즉,

영성도 중요하지만

그 응답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구분하는 지혜와 영적 맑음

그리고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성숙도는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것 같다.

개인적 생각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응답은

성경에 나오는 말씀에 의거해야 한다.

왜곡된 말씀은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단들이 더 잘안다.

그러기 위해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일상에서 적용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말씀의 원리에 어긋나면 안된다.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어 있다고

분명히 성경에 나온다.

 

 원리에 어긋나는

응답은 사단의 개입일 수도 있다.

 

 또,

오늘 다윗의 행동을 보아

하나님의 응답이 틀림없이 보여

순종을 요구함이 확실 할 때도

주님의 뜻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다.

 

 사울을 다윗의 깊은 굴 속에

하필이면

 그 시간에 그 곳에 그렇게 보내신 것은

틀림없이 '주님의 뜻' 맞다.

하지만...

그것은

사울을 죽이라는 뜻은 아니다.

죽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영적으로 덜 맑은

다윗 신하들의 몫이지

다윗,

그리 하나님 앞에 온전하려 애쓰는 자는

하나님의 기름 부은

또 다른 자, 사울을

아끼는 마음을 시험하고 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영혼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래..

그것은

다윗의 온전함을 시험하고

더욱 더 깨달아

죽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유혹과

주님 앞에 올바로 섬으로 오는

고난의 연장과

반비례로 더욱 커지는

영적인 성장의 확장의 기쁨을

체험하는

둘 사이의 갈등을

온전히

주님의 뜻 안에서의 '선택'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험을 통과하길 바라시는 것이시다.

 

 

 

 

 

 
5.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다윗은

주님의 뜻 만을 보는 사람이다.

'영적인 유익'과

'육적인 유익' 사이에서

'영적인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게

머리 속의 계산이 아니고

비록 옷자락이지만

그 옷을 짜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듯하게

마음이 찔려할 줄 아는

그러한

영육혼 간의 온전한

전인적인 성장을 이루는 자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는

듣기만 할 줄 아는 자가 아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그 마음을

자신의 그 마음과 하나로

주님과 영혼이 합일 되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는

미련을 버렸다.

눈 앞의 이익과

그럼직한 응답론을 무찌르고

크고 넓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님의 원리와

주님의 사랑을 선택한 자이다.

그에게

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굴'

그 어두운 유혹,

세상의 절망

세상의 유혹

세상의 끈적거림

세상의 불안

세상의 갈등

................으로 대변되는

'굴'에서 나간다.

 

 굴에서 나감은

세속의 원리에서 자유로와지고

하나님의 뜻에서

한발 더 가까워 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기 길을 간다.

 

내 길은 무엇인가?

어디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다윗처럼

이 미련하고 미련 많은

세속의 유혹에서

한걸음 벗어나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예비하시는

주님의 뜻 가운데로

걸어나가

어디든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의 뜻대로 가는

그런 자가 되고 싶다.

 

아직은

말뿐이지만..................ㅎ

 

 

 

 

 

적용

 1. 말씀을 사모한다.

 성경 여섯 장을 읽는다.

 

2. 적용을 최대한 열심히 한다.

 적용은 말씀이 내 일상에 살아들어오는 기회다.

말씀이 유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용을 최대한 열심히 하고 회개하고 기뻐할 기회로 삼자.

 

3.  육신의 성공은 부수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때로 그게 너무 유치해 보이는 사단의 장난도 없지 않지만

영혼이 맑아지고

아이처럼 바뀌어 가는 것은

천국의 삶을

제대로 준비하는 지름 길이다.

 

4. 응답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맞춘 응답의 해석이다.

 성경에 분명히 '예언은 해석하는 자를 몇명 붙혀서 오류가 없으라는 말씀이 있다.

 주님의 뜻은

 주님의 의도 가운데서 해석해야 한다.

 

5. 신비는 존중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영계는 신비하다.

 신비를 무시함은 종교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하지만, 신비주의 는 배격한다.

 말씀에 의거하고

 사랑과 겸손 겸허 온유.. 등 성령의 열매에 준거한 신비만 존중한다.

 

6. 미워할 자도 주님의 피조물이다.

사랑하자.

 이해하자.

 

7. 목회자의 오류도 불쌍히 여기라.

 비판은 하되 비난은 멈추라.. 주하인.

 대놓은 비판은 금하라.

 언제든..

 

8. 굴 속 깊은 곳도 상관없다.

 어둠속에 있더라도 기뻐하지 마라. .대적아.

 난 엎드러지더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둠속에 있더라도 주님이 나의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라..... 주하인....

 

 

기도

 

 주님

죄송합니다.

늦게 합니다.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굴속에서 나가는

다윗의 뒷모습을 보이심을 기뻐합니다.

그게

내 마음을 후련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말씀대로

말씀에 준거하여 살 수 있도록 하소서.

그것을 정말 목숨처럼 여기게 하소서.

말씀을 붙들고 사는 저에게

보혈로 흘리소서.

제 영혼의 혈관이

주님의 보혈로 채워지도록 하소서.

제 영혼의 심장이

예수의 성령으로 힘받게 하소서.

주여.

어둠 속에 있더라도

굴 밖을 볼 수 있는

혜안을 주소서.

그런 담대함을 주소서.

넓은 아량을 주소서.

주위를 사랑하게 하소서.

모두 주님의 피조물이고

그들 모두를 껴안아야 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게 주님의 뜻이심도 알게 하소서.

 말만 앞서기 원치 않습니다.

변하게 하소서.

오류가 있으신 분들

가만히 보고 있게 하소서 .

그들을 쳐다보시는 하나님의 눈길이

그들을 고치게 하길 빕니다.

아니.. .

제 속을 사랑으로 바꾸소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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