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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3년의 의미[삿9:22-45] 본문

구약 QT

그 3년의 의미[삿9:22-45]

주하인 2021. 11. 21. 08:23

참으로 고요하고 평안했다. 

허락하신 쉼 가운데 누리는
그 시간이 말이다. 

그리고 저 모퉁이 돌아가면
다툼과 전쟁이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불안감은 
전혀 없는 고요의 확신 .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허락된
잠시의 그러함은
아마도 저런 차분함과 맑음의 시간은
가능치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언젠가 터질 듯한 예기 불안과
깊이 눌려 느끼지는 못하지만 때만 되면 밀고나오려는 두려움
잠시의 고요를 누리기 위한 많은 에너지의 소모로 인한 불안정이
비록 그들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하지만
일상의 기본 감성이 아닐까......

불안.

내 나이의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회오리와 잠시의 멈춤이 있어왔다. 
그러다가 도달한 이 자리는 
잠시의 3년 보다는 
영원한 평강의 준비 시간 같은
차분한 기대가 느껴진다 .

잔잔한 가슴떨림.
기대...........의 시간.
뚜렷하지는 않아도 느껴지는 
지속적 감사의 시간

그게 .........
이해되고
느껴짐이 감사한 시간이다.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
'3년 동안'을
주님은 왜 평안히 두셨을까?
그들의 평안이 정말 평안이었을까?
그 안에는 다른 갈등은 없었을까?
갈등이 있었을 정도라면
과연 형제 70명을 죽이고 하나님을 전혀 생각지도 않은 그런 죄를 지었을까?
아마도 악은 악으로 익어가고... 란 것처럼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며 모든 악을 즐겼을 것임일 개연성이 충분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주께서는 왜 굳이 3년을 참아주셨을까?
3년의 시간을 주심은 '우리'와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어떤 다른 뜻이 있으셨을까?
그냥 주님의 계신 곳의 시간과 이 땅의 시간이 다름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이유로
당신의 뜻을 이 땅에 행하기 위한
그 계신 곳의 찰라의 순간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런 시간 차를 막연히 '악'들이 즐김을 방치함을 어찌하실 수 없는것인가?
그렇다고 가정하는 것은 '전능'의 하나님의 '무능'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 가당치 않은 가정임으로
분명코
우리에게
나에게 허락하시고자 하는 어떤 레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으실 듯 싶다.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그에게 행하소서 하니

45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그리고는 드디어 일어나는 '갈등'의 시간들.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
악인전을 보는 듯하다.

악인들끼리 서로 서로 재고 밀고 술수를 쓰며
갈등이 시작이 된다.

3년의 시간은 어쩌면
마지막 회개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은 어쩌면 아니셨을까?
저들 악인들은
자신들의 갈등이 무섭거나 싫지는 않은겐가?
그들은 심적인 갈등을 먹고 사는가?
남들을 괴롭히고 자신의 마음을 갉아 먹는 일에 펼쳐져야 만족하고 사는 가?
3년 그 잠잠한 시간 동안
영화에서 보듯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온갖 '육신'의 재미를 추구하느라 고민이나 갈등이 없었을것이 맞을 것이다.

아..
하나님이 안계신 침묵의 순간.
3년이 그 시간을 상징하는 듯하다 .
그렇다면
내게 의미하는 3년은 과연 무엇인가?
저들을 보면서
난.. 몸서리 쳐진다.
그 3년의 고요의 시간이
곧 불어닥칠 정말로 두려운 갈등과 행악의 회오리 직전의 순간으로
정말 좌불 안석의 시간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주님 모르던 젊은 시절의
육신의 끌림대로 향하던 달콤한 유혹의 지저분한 핑크빛 시간들..
비록 대부분의 불편한 내면으로
기억나는 그 마져의 달콤한 시간은 얼마 기억되는 것이 없지만..^^;

지금.
주님을 '단독자'(아.. 아침에 잠시 들은 L 목사님의 표현이 너무 좋다... 단독자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 로서
만나는 게 어떠한 의미인지 아는 시간에 와 있다.
비록 나이는 많이 들어
내 육신적 바램과 동떨어져
점차로 그러함을 내 내면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허탈함이 없지는 않지만
저 3년의 고요한 갈등의 시간에 대비 되며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나음을 확신하게 된다.
진저리가 쳐진다.

악함.
그 악함의 번쩍이는 유혹과 갈등.
그리고 그 후의 예견되어 도사리는 '불안'
반드시 있을 갈등과 심판............

오늘 3년 이란 본격적 주님 징벌의 시간 전에
난.. .
관조자의 입장으로 서서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신다.

'죄'에 대한 진저리다.
주님 주신 '평강'에 반하는 갈등과 반목과 어두움의 두려움이다.
그리고 일단
주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그들과 한걸음 떨어지게 하셔
그 3년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에 대하여 감사함이다.
또한,
그들의 행악을 돌아다 보며
아직도 번연히 내 안에 자리잡은 유사한 죄성들을
날마다 말씀 앞에 비추어 돌이키고
은혜를 갈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날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날 돌이키고 돌이켜
아비멜렉들의 죄는
내 안에서 흔적도 없어져
저들의 태풍앞의 잠시 고요가 아닌
온전한 하나님이 평강 가운데 거할 수 있는 자가 되길 원한다.
그것.... 주님이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이신듯 하다.


주님.
감사하신 주일입니다.
주의 날입니다.
주님을 본격적으로 직면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내 안을 더 청소하여
내 또 하루 시작될 이후의 시간을
주님 뜻 가운데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내 안이 가시들이 떨어져 나가고
내 가 어찌.. .하며
허락되어진 감람나무의 기름과
무화과의 아름다운 과실을 부여잡듯
하나님의 허락하신 제 모든 삶의 주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붙들어 보듬을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깨달은 바
제 낮아짐을 그냥 기뻐하게 하소서.
그게 제 나이에 맞는 제 위치면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진정한 고요를 원합니다 .
그 고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령의 은혜로 인하여
기쁨으로 바뀌며
어느새 날뛰려던 자아는 수그러져 가고
그 수그러져 가 는 제 자아의 그러함을
인정하고 받아 들여 그것이 제 기름이고 제 과일임을
제 영혼이 인정하고 녹이는 날...
그런 삼년이 되게 하소서.
주여.
저들 아비멜렉들을 보면서
그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 거하게 하시는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뻐하길 원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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