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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 산 자 ( 막12:16-27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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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 산 자 ( 막12:16-27 )

주하인 2011. 4. 9. 08:41

제 12 장 ( Chapter 12, Mark ) 

날씨가

오랫만에 화창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요

꽃 들이 웃는 것 만 같습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느껴지는 듯 하니

내 영혼 이처럼

환희로 폭죽 터지는 듯합니다

 

살아계시는 내 하나님을

제가 이처럼 기뻐하나이다

 

주여

 


14.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안다는 것.

진실인가?

보고 있으되 보는 게 정말인가?

알고 있으되 알고 있는게 맞던가?

진정인가?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믿는 다 하면서 정말 옳게 믿는가?

혹시 난 주님 대신 내가 만들어놓은 내 자아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던가? 
 난, 살아 있는자 맞는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삶은 아니던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지금 하나님은 나에겐 어떤 의미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 맞던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것은 늘 고백하는 대로, 진실이고 진리이다.

당연하게도...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일상에서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계시던가?

살아있는 아버지 처럼 내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야 당연하지 않던가?
그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만

내가 살아있는 펄펄 뛰는 생기로운 믿음의 신앙인이 아니어서는 아닐까?

'산자의 하나님'

' 살아계신 하나님'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죽은 것은 또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 들어와 역동력을 가지는 상황 ,

하나님을 믿음이 굳건하여 성령이 온 영혼을 운행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감정이나 내 생각이나 증상을 앞서는

말씀의 선택이 자연스레이 이루어지는 상황.

그러함으로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평강'이 자꾸 늘어나는 상태.

생명은 성장을 의미한다.

매일 말씀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심을 점점

확신있게 느끼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더 이웃을 긍휼히 여기게 되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 산자의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사는 것이다.

 

 어제 '금요일'

오랫만에 오전 근무하고 퇴근했다.

운동을 한 후 오전에 먹은 감기약 탓인 지 심한 피곤을 느껴

집에 가려다가 '그래도 기도원 가서 예배' 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들렀다.

 예배 중간 즈음에 들어가서 앉아도 집중은 잘 되지 않고

나른한 오후 햇빛 아래 닭처럼

자꾸만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인내하고

겨우 예배를 마쳤다.

 집에 가서 쉬고픈 생각이 계속 밀려 왔지만

그래도 기도를 조금 더 하기로 했다.

'믿음'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올려드리는 기도했다.

감사기도하고

생각나게 하시는 기도를 했다.

말씀 묵상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간구'했다.

마음이 좋다.

 그래도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다.

가는 길목의 기도원이라서 좋다.

오랫만에 좋은 날씨라서인지 기분이 좋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마구 몰려온다.

그러더니 '눈물'이 나려 하려한다.

집 가까이 오던 길목에 차를 세우고

떠오르는 생각을 마침 가지고 있던 수첩에

휘갈겨 적어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랫만에 가지는 경험이다.

그게 더욱 기뻤다.

가슴 깊이 밀려나오는 '시심'..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심의 증거란 사실이 깨달아 지며

난 그 깨달음이 더욱 기뻤다.

'살아계신 하나님'

수년전 그 풍성했던 하나님의 간섭이

잠시지만 내 영혼을 전율로 잡아감을 다시금 느낀다.

아... 이 생명.

 

 

 요즈음,

나이 탓인가?

한달 내내 감기 기운이 들락 날락하면서 피곤을 많이 느낀다.

그러다가 다시 오후가 되면 괜찮아 지지만..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에 의한 통증과

꼬리뼈 다친 탓에 좌골  쪽에 만성 통증이 점점 심해져

저녁이 되면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다.

안절 부절..

만성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은 '우울'하게 할 찬스를 준다는 것이다.

은혜로 인하여 지금까지 그날 그날 잊어 먹고 지내지만

스트레스 받거나

마음이 해이해질 때는 여지없이 마음이 무겁도록 만드는..........

나이 들어가며 그러한 자잔한 문제들은

많은 중년들로 하여금 자신을 잃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자신이 떨어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게 '죽은 자' 처럼 사는 자가 아닐까?

그러면서 '믿음' 마져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불신자들에게는 그것은 '살되 사는 것이 아닌' 그런 게 아닐까.?

죽은 믿음.

살되 죽은 자.

 

나.

저녁에 육신의 고난이 날 흔들려 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또 이렇듯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산자 ' 주하인.

그 산자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 곁에 매일 계시니

난 살아 움직이는 생기의 주하인이고

그리 역동적인 삶을 살게 되니

난 얼마나 행운이던가?

 

감사합니다.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감사와 기쁨으로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죽어가는 자의 머리속에 유희처럼 나오는

괜한 미사여구 속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절 역동적인 생기로 채우시고

그 생기의 원천이 성령이시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전에는 감성으로 느끼고 그 틈을 불안이 막았으나

이제는 이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점차 뚜렷이

흔들림 덜하게 체험시키시니

그 실제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매일 느끼고 사는 제가 얼마나 귀한 축복을 받았는지

정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여.

귀하신 제 주님이시여.

부디 간절히 바라옵기는

제 자식들에게도

제가 아는 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살아가도록 도우소서.

그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과

모든 내 잘못된 생각으로 묶었던 생각들 내려 놓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살아 있는 그들로 만들어 가시는데

제가 왜 걱정해야 하는지요.

이제 다시 한번 기쁨 가운데

모든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하루가 되길 기원하고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땅의 어수선함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깨닫는 자 들 많아지고

회개하는 자들 더 늘어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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