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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들 죽은 아들( 왕상 3:16-28 ) 본문

구약 QT

산 아들 죽은 아들( 왕상 3:16-28 )

주하인 2010. 9. 10. 09:57

제 3 장 ( Chapter 3, 1 Kings )

 

그래

그리

나누어야 겠더냐

 

그냥

저리

어우러진 하나로

만족할 순 없더냐

 

어이없는

이  세상아

어이없는

이 주하인아

 

너는 오직

하나님 만 바라라

그제야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족할 수 있으리라

 

 

지치고 상한 마음

그 마음에 그대로 빠지고 싶은 유혹이 마구 올라옵니다.

주님.

도우소서.

 

 
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창기와 같이 더럽던 나.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

나의 왕

나의 구주 앞에 설 때는

'어머니' 같이 고귀한 자 된다.


 

23.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그들이 어머니의 입장으로

왕 앞에 섰다.

그리고는 서로 '산 아들'이 자기의 아들이라 한다.

산 아들이 무엇인가?

움직이는 아들이고 숨쉬는 아들이다.

누가 보아도 살아 있는 아들이다.

그래서 서로 그 아들이 자기 아들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엄마는 살아 있는 아들의 움직임을 볼 뿐아니라

그 아이의 생명,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본다.

반면, 가짜 창기 엄마는 살아 움직이는 표면적인 것 만 본다.

그녀가 왜 거짓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하는 것은 틀림없고

그 거짓말이 남에게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녀에게는 산 아들은 움직이는 겉 모습의 산아들이다. 

살아있되 죽은 아들이다. 

 

 
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산 아들을 가른다.

산 아들을 가르면 죽은 아들이 된다.

생명의 존재를 나누면 죽은 존재가 된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비본질 적인 것으로 인하여 본질을 죽일 수는 없다.

죽은 세상의 가치로 인하여

생명의 원리를 버릴 수는 없다.

 진짜 어머니는 비록 창기라도 산 아들을 죽이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다.

창기라도 '생명'을 중시하는 자는 '어머니'의 고귀함을 가진 자다.

 

 가까운 이에게

아주 많은 양의 재물을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임의대로 쓰임을 받았다는 소리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망연자실한 상태가 꽤 오래다.

그럼에도 '은혜'로 난 아무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내 오래된 '죽은 논리'들은

그 일을 만든 사람을 몇번 난도질 할 논리로

나의 분노를 자극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이 그들이라 표현하는 사실 자체도 의심이다.-의 그 어이없는 행태들에 대하여서도

마구마구 분석하고 펼쳐서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잘못되어 있고

기도하고 신앙인의 모습 처럼 꾸미는 그것들이 이제 하나도

주님 앞에 받아 들여지지 않고 앞으로의 장래가 암울할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자체를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있다.

 나 스스로,

너무도 인생을 어이없이 살아왔고

그 큰돈을 믿고 맡기는 어이없는 내 인생의 잘못에 대하여 자괴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안되어...' 하고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싶고

나의 그것으로 통하여 같이 고통을 받아 보게 하고 싶은 유혹이

스물스물 지옥처럼 올라 오려던 것을 피해 나왔다.

그리고는 일체의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너무 힘들지만,

너무 은혜롭다.

 내 일생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단순성.

그 원리가 이제 나에게 연습되어 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번씩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죽은 자식같은 논리가 현실감을 가지고 짓쳐 오려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방법 - 변호사, 서류....... - 을 취하고 싶은 유혹이

아주 강렬히 밀고 올라오지만

모두 주님의 원리에 맞지 않음을 알고 있고

또한 아직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데

내 논리에 근거 하여 허튼 짓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난 그 사실을 재판관이신 '하나님' 의 판정 앞에

그냥 내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산 자식'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그 창기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 해치우고 간단히 해버리면 좋겠지만

주님이 진정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창기의 모습이 아니고 어머니의 모습임을 깨달아

가슴 아파도 '손'을 놓기를 연습하고 있다.

물론 자꾸만 자꾸만 밀고 나온다.

그 죽은 논리.

'죽은 자식 불알 잡기' 같은

못먹는 감 찔러보기 같은.. 그런 심사가 뒤틀려 올라올 때는

진정한 모성애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남자의 심성으로 '화닥'... 해치우고싶은게 사실이다.

그런 것을 주님이 아신다.

'레위기' 부터 시작하여 '열왕기상'까지.......철저히도 날 붙드시고 말씀을 주신다.

'  주하인아

그토록 놓기가 힘이드냐?

아직도 그토록 다툼이 있느냐?

그럼 내가 판단 하여 주리라.

네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반으로 나누어 주마?

정말 산 자식을 원하느냐?

그럼 손을 놓아라?

어렵겠느냐?

창기 같은 자에게 자식을 그대로 빼앗길 것 같아 두렵느냐?

선택해라.

아쉽더라도 놓으면

네 자식의 생명은 유지될 것이지만

붙들면 그 욕심으로 인하여 네 자식의 생명은 끝날 것이다.

그리고, 네 생명은 네가 죽도록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쉽겠는가?
쉽지 않다.

정말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프다.

오랫동안 곁에 같이 살면서

아픔과 고락을 같이 해온 자 - 하나님이 구원해주시기 전에는 철저한 '창기'였던 자들이 ㅜ .ㅜ;;;;;;;;-에게

이제 배반을 당하고 '기로'에 서게 되었다.

자식 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감정적 죽음'까지 몰리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앞으로의 삶도 문제다.

자식과 동료 빼앗기고

홀로 남아 비록 왕 앞에는 섰었지만

창기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암담한 현실에서 무엇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던가?

'선택'이다.

'선택을 요구하신다'

참으로 처절한 선택을 말이다.

옳아도 옳지 않아도 가슴 아픔은 차이가 없을 것만 같은

이 암담하고 우울한 삶.

 이게 비록 그녀들 만의 이야기일까?

그녀 만의 고뇌일까?

 

 주님은 아신다.

하나님의 지혜는

솔로몬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꼭 일천 번제를 드려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을 통해 수천년 지난 내 어지러운 심성에 빛으로 영향을 미치신다.

하나님의 지혜는

솔로몬의 입을 통해 어머니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하신다.

하나님의 지혜는

지혜를 사모하고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임하신다.

'생명'이 무엇인가?

살아있는 자식이 무엇인가?

살아 펄펄 움직이는 그 강보 속의 아이가 주는 것이 무엇인가?

죽어갈 불신 창기 한테는 겨우 움직이는 육신에 지나지 않지만

어머니인 우리 들 과거 창기 들에게는

생명의 유업을 암시한다.

그들이 꿈틀대고 움직임은

내 영혼이 살아있는 징표이다.

그가 웃고 움직임은 영혼의 살아 숨쉬는 격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제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생명을 위해서...

살아있는 자식을 위해서

살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죄책감으로 죽지 않을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분이 십자가에 달리면서 까지 죽으실 만한 '영생'을 위해서

아파도 내려 놓으면

산자식은 살아날 것이다.

오직 생명을 위해서

아파도 내려 놓으면

생명은 살아나게 될 것이고

그 생명은 나의 소유가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내려 놓자.

풀자.

욕심을 버리자.

주님께 맡기자.

아프더라도 풀자.

그리고 기다리자.

기다리면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시다.

일체의 움직이고 싶은 내 욕구를 주님께 맡기자..

그 분이 하시는 것이 무조건 선이심을 믿고 기다리자.

그 길만이 내가 살길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생명의 길이다.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나는 길이다.

 

 

 

 적용

1.  죽은 논리에 속지 말자.

 그럴 듯한 논리.

 두렵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는 논리.

 우울하게 하고 외롭게 하는 논리.

 화를 가져오고 분노를 가져오는 이간질 하는 논리.

 그 논리에 속지 말자.

 

2. 산 자식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자.

 내려 놓자.

 욕심도 내려 놓자.

 결과의 허무함이 예견되어도 받아 들이자.

 그냥.. 그게 사는 자식, 생명을 위함을 알기에 내려놓자.

 무엇이든 받아 들이자.

 주님이 옳게 판단하시기를 믿자.

 

3. 기다리자.

시간이 길어짐은 고통이 길어짐이다.

 고통은 오히려 은혜다.

 그 시간에 내 내적 혼잡함을 단순화 하는 시기로 기다리자.

 모든 게 주님의 뜻으로...................

 

 

4. 성경 3장 읽자.

 지혜는 말씀으로 기인한다.

 말씀 만이 참 지식이다.

 유수의 지식인의 영적 깊이가 그리 높지 않음을 보고

 하나님의 주신 지혜 만이 참 지혜임을 다시한번 깨달아 가고 있다.

 

5. 인자하고 긍휼하자. 

 용서함을 주님이 그러하시듯이 그러하자.

 에베소서의 구절을 명심하자.

 

6.  장래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자.

 창기 동료가 없어져도

 자식을 하루 아침에 빼앗겨도

 벌써 수천년이 지나가 버렸다.

 주님 안에서 시간은 금방이다.

 다 돌아보면 헛것들이다.

 장래.. 걱정할 것을 걱정하라.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할 것만 걱정하자.

 그.. 진정한 죄만 걱정하자.

  

 7. 내려놓자.

 모든 것 내려 놓으면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주님의 뜻을 준행함...

주님의 뜻은 성령의 열매 익혀감...

그 안에서 그 뜻을 지키는 것이 산 아들을 살리는 것이다.

내 손해를 , 내 원통함을 ..내 분을 ..

주님의 원리 때문에 기다리고 내려놓는 것이다.

 

  기도

  하나님.

절묘한 시간에 절묘한 묵상을 주심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 주심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죽은 가치 붙들고 떨지 않게 하시고

산자식 함부로 방치 하지 않게 하소서.

욕심 부리지 않게 하시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진력 빼지 않도록 하소서.

주여.

원리는 알지만

삶속에 들어가면 잊어버리는 우를 범치 않게 하시고

두려움 속에 멍해지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놓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욕심을 내려 놓고

주님의 원리에 맡기기 위해

두 주먹을 펼 때

주님의 원리가 시작됨을 알게 하소서.

매사를 맡기게 하소서.

손을 펴는 순간,

다시 새로운 주님의 역사가 시작됨을 목도하게 하소서.

주여.

저...

아시지요?

실제적 제 상황을 아시지요?

묵상하는 것이 논리의 궤변이 아님을 주님은 아시지요?

사실을 말씀대로 살아가려 하려는 것 아시지요?

그 일상에서 주님..

체험하게 하소서.

매사에 그러하소서.

이 삶의 깊은 골을

주님 메꾸어 주소서.

이제 더 이상 가지고 가기 힘든

이 어려움을 주님 아시지요?

이 죽은 지식들...

죽은 가치관들 .

이 시간 동안 다 주님 앞에 묻어 버릴 수 있길 원합니다.

생명으로 그득그득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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