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원래 나는 지금 나는[사5:1-17] 본문
이 곳에 입사할 때
누군가 축하한다 가져온 다육이
가끔 주어야 한다는 말에
너무 물을 주지 않았더니
비들거리며 수년을 버티던 것이
누구의 조언으로 인해
정기적으로 주게된
물을 먹기 시작하고 부터는
이리도 생기롭게 잘자라며
주변에 자손을 버뜨리는 풍성함으로
매일의 내 눈을 기쁘게 한다
원래 이 아이는
극상품의 품종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잘알고
최선다해 버티면서
지금은
그 풍성함을
주변에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ㅎ
1.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난
주님 십자가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자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
선택받은
사랑받는 자.
그게 나 , 맞다 .
주님께서는 그러한 나를
포도원에
그것도 '심히 기름진 산'에 있는
포도원에 있게 하신다신다.
아.
나는 원래부터
주께 심히 사랑받는 포도원에 있는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극상품의 포도 나무'다.
그게 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쩌면
들포도를 맺고 있진 않은지..
늘 그렇지만
구약은 자주 너무 무서운 이야기와 적나라한 표현등으로
가끔은 묵상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포도원' 의 포도나무가
나였더라면 (너무나 일차원일 것 같은.ㅎ ) 하고
잠시 집중을 하니
내 있는 자리 근처로
'포도원 주인' 이 다가와
물도 주고
가끔은 아프지만 가지도 쳐주고
벌레도 제거해주기도 하실 것임이 떠오른다.
아..
거기에
주인이 곁에 계시지 않을
많은 시간은
기름진 땅에서 충분한 양의 영양분 (세상의 것, 내가 원하는 물질 적인 것....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이 주어질 것이며
때에 맞추어 시원한 바람과
어디선가 자라는데 필수는 아니지만 정겨운 매미 소리 같은
정서적 필요
거기에 튼튼하게 하는 강한 햇빛
때로
찾아와 내 과실을 먹으며 즐거워 해주는 사람들 ( 보람있는 세상의 그것..........내 이룸. 성취.....) 등이 연상된다.
그게 나다.
원래, 나.
그렇게 나는 자격이 부여되었다 .
그런데...........
이런 연상에 몇가지 의문이 들어온다.
그하나는 우선
과연
나는 그런 조건에 있는
극상품의 포도나무로서의 나
절대의 십자가 고통을 참아가면서 까지 구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나에 대하여
과연 내가 확신하고 있던가?
내게 있는 부족함, 내 두려움...........은
그 극상품의 나,
완전한 포도원 안에 있는 나로서의 나에 대하여
그리 인식하고 있지 못함이지 않던가... 가 그 첫째다.
그러하다면
난... 극상품의 포도나무가 아닌가?
그런 포도원에 위치한 내가 아니던가?
분명코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는가?
세상의 대부분을 향하여
성경의 말씀으로 펼쳐 내어졌지만
은혜가운데,
특별히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사는
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레마'가 아니시던가?
그렇다면 그게 사실인데
왜
삶과
삶의 중간에 서 있는 나는
이리도 '척박하고'
이리도 어이 없이 느껴지는 가?
가끔................. (많이는 아니다. ㅎ )
그 이유는
내가
맺는 열매가 어쩌면 '들포도 송이'이기에 그렇지 않은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자격을 부어진 그러한 내가
원래의 '나'임에도
난..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들포도'를 맺고 있음이고
그러한 사실에 속절없이 당하고
인식하지 못하며
그러함을 숙명처럼 받아 들여
아무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이해하게 하시려 해도
내 매일은 이렇게 그렇게 살던게 아닌가?
그게 분명코 맞다.
내게 주어진 것은
분명 기름진 포도원임에도
나 자신의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문제로 인하여
들포도알을 맺고 있음이다.
그게 무엇인가?
왜 나는 진정 나 자신, 그러한 극상품 포도나무 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왜 나는 매일 잡초 뒤덮힌 들포도나무처럼 인식하고 그리 살아왔던가?
그러하지 않아도 됨을
이제는 다시 인식하고 인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들포도의 어떤 것이
내게 그런다.
묵상 중에...........
' 그래
그 따스한 곳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고
늘 고상하고 아름다운 곳에 있는 것이
어이없지 않은가?
아름답고 풍족하지만
지루한 지옥 말이다.
천당같은 지옥 '.
그래.
궁극적으로 부딪치는 게 그런거다.
'성화'가 내 삶의 궁극의 목표다 .
그를 위하여
나를 부르시고
그 과정으로 '서로 변론'하게 하심으로
진홍같은 붉은 죄를 희게 만드시기 위함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궁극임을 알지만
이 지루한 듯함.........
그 도전이
그 막아섬이
'들포도'를 냄의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들포도생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전적 오염,
해충........악한 영적 문제......말이다.
점점 더 단순하고
점점더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이
주께서 진정 우리에게 바라심이시다.
그게 '극상품의 포도알'이다 .
그러기 위하여
더 깊은 곳으로 묵상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내 평생에 원하는 일 한가지는
늘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그의 제단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라 하시는 시편 고백이 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함께 하리니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 란 시편 23장도 있다.
우리의 마지막은
어느 곳에 살던지
무엇을 하던지
매일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의 제단을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게...........극상품의 포도를 내는
마지막 결국의 모습이다.
그러기 위하여
오늘도 내게 다가오는
수없이 많은 갈등들.................다 내려 놓으려 한다.
주의 집에서 주의 제단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렇게 되는 현상으로
난..........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낮아짐을 기뻐하고
약함을 기뻐하며
궁핍과 핍박이 있는 일도 그러하며
내 오래된 문제로
또 다시 휘싸이는 '욱여쌈'에도 쌓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결단을 하고
모든 발걸림에도 넘어지지 아니할 결심을
다시 하여야 한다 .
그게..........또 되풀이 되는
매일의 어리석음 같아도
주님이 그거를 위해 나를 부르셨으니
그리 될 결심으로
기도하며 살다보면
주인되신 주님 오실 때
극상품의 포도알을 내어 드릴수 있지 않을까?
주님.
믿습니다.
긴 묵상이지만
제게 깨닫게 해주신
그 극상품포도나무로서 날 부르시고
날 사랑하셔서
철따라 햇살과 이슬 비로
가녀린 호우로서 내 삶의 가지에 맺게 하여 주시며
기름 진 땅에서 나는
여러 인생의 소산들로 저를 키우시던
그 사랑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자주 ...
저를 공격해오는
인생의 여러 들포도로 가라 앉히려는 도전들을
예수 앞으로 가져 갑니다
주여.
성령으로 도우소서.
은혜로 어루만지소서.
또 단비처럼 받아 먹으며
오늘 하루도 이겨내길 소원하나이다 .
내주여.
부르실 그날까지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제단을 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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