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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아( 출22:1-1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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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아( 출22:1-15 )

주하인 2009. 5. 24. 09:07

제 22 장 ( Chapter 22, Exodus )

 


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  
5.  사람이 밭에서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짐승을 놓아서 남의 밭에서 먹게 하면 자기 밭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 포도원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할지니라 
7.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10.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 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오늘 묵상 구절은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짚어 가시는 율법 조항이다.

읽어가며 드는 생각은

'세밀하시고 섬세하시다. '라는 느낌이다.

정확하고 숨쉬기 어려운 엄밀함을 더불어

인권을 존중하는 배려가 읽혀진다.

 그러나, 묵상으로 진행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몇 곳에서 걸리는 부분이 있다.

우선 '사람이'라는 단어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즉 선민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니고

사람같은 사람을 말하시는 것이고

사람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는

천국에서 살 자격이 있는 사람 같은 사람이며

그 자격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같은 사람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부분을 제한하는 것은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닌 불완전 하면서

앞으로 완전을 지향하는 선택받은 구원의 백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을 이야기 하는가?
시내산 앞에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아닌가?

그러기에  그 사람의 범주에는 선택받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늘 듣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는 구원 받은 사람같은 사람을 의미하시는 말씀이다.

 오늘 나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보고 '사람'이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은 주일이다.

주일에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교회를 가게 된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신 몇 분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그 들이 가 앉아 있는 교회라는 물리적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교회는 다니기는 하지만 말씀을 읽어보지도 않는 사람

게으름이나 근심 걱정 , 기타 다른 이유로

주님의 말씀,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여 듣지 못할 수도 있고

깨끗지 못한 유교병의 말씀, 누룩이 섞인 말씀으로 인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무교병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생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시적이면 개전의 정이 있지만

주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듣지 못하는 경우

그들은 '사람'일까?
 난 어떤가?

 난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행동하게 될 것 아닌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적으로 옳게 사는 것 만이 사람이 아닌 것은

위의 글에서 알수 있다.

주님의 말씀을 기본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빌립보서 1장의 '복음 가운데서 교제'하는 성도의 삶이

사람다운 삶이라 생각한다.

 주님의 말씀이라서 기쁨으로 위에 예시된 여러

율법적 근거를 지켜나가게 되고

그러한 가운데 풍성한 자유,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감동이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올바른 삶의 기본 태도라 할 수 있다.

 


 
11.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특별히 나 주하인에게

사람같이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면이 없지 않을까 하셔서

주님께서 주시는 개인적인 권면이시다.

'여호와로 맹세하면'

'그대로 믿으라'

 

 특성 상 이것 저것 재고 자르고

그 기준 안에 들어와야 안심하고

그러지 못하는 듯한 기미가 보이면

'지레 짐작'이라고 아들이 표현하는 대로

의심을 하고 .........

 쉽게 말하면 잘 믿지 못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 왔었다.

그러한 태도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 였었다.

그러기에 어떤 분들처럼 예수님 믿고

불처럼 타오르며 강력한 믿음의 신앙인으로서

놀랍게 성장해가지 못하고

늘 의혹이 많은 굴곡이 심한 신앙인이었었다.

 그러기에 실족이나 잘못된 이단에 빠질 위험성은 적었지만

베드로처럼 단순하고 열심이 있는

주위의 신앙인들을 볼 때 부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 감성을 통한 주님의 역사는

그러한 부족한 믿음의 소유자인 나에게

많은 영적이고 현실적인 체험을 허락하시고

특별히 말씀 묵상의 많은 시간을 통해

주님은 나의 믿음을 조금씩 조금씩 성장시켜 나오셨다 .

 이제 '신앙과 삶'의 두 부분에서

신앙과 삶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하나인 일치된

신행의 삶을 살기에 지혜가 부족한 나에게

말씀으로 은혜로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하나하나 깨우쳐 가시고 다듬어 가신다.

 사는 것이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삶 속에서 신앙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러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 주하인, 나의 사람아.

 오늘은 네 식구와 가까운 사람들을 조금 더 믿어 줘라.

아이들의 판단을 믿어주고

부족한 부분이 눈에 뜨이더라도 믿어줘라.

혼내고 잔소리 하기 전에

과거의 동일 상황에서 그 아이가 저질렀던 불신의 행동을 끄집어 내어

추궁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무조건 믿어줘라.

그리고는 잊어라. ........'

 아이의 장래가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된다.

걱정은 아버지에게 그대로 물려 받았다.

그래서 주님께 내려놓고 많이 맡기려 하었고 일정부분 많이 성공했지만

아이에게 지도하고 이끌려 하는 순간

또 내 습관적 불신이 밀고 나와 내 속을 편치 않게 한다.

잔소리가 늘어가고

목소리의 톤이 높아져 간다.

 이제 주님이 다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껴진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거든

 그대로 믿어라.

 그게 사람으로서의 주하인 , 네가 해야할 마땅한 바이다.'

 

예.

주님

그리 해보지요.

조금 만 더 도와 주세요.

 

 

적용

1. 성경 일곱장 읽겠다.

   말씀사모는 사람다움의 기본이다.

 

2. 믿는다.

  의심의 마음은 사라져라.

  주님 도우소서.

 

3.  하나님 말씀으로 증거되는 모든 설교를 기뻐 받아 들인다.

  사람의 기본 태도다.

 

4. 사람이..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자.

 

5. 아들을 믿음으로 대한다.

    잔소리 안한다.

    이해하겠다.

  잘못이라 의심되어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믿는다.

 

 

 

기도

 

주님

주일 아침입니다.

아침에 주차장에 세워 두고온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고 일찍 일어나

빼어주고 오면서 묵상을 진행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일.

자칫 게을러 질 수 있는 시간을 챙겨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일거수 일투족을 주님께서 조율하여 주심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마땅히 주일날 취해야 할

사람으로서

말씀을 듣는 선택받은 신앙인으로서의 사람의 태도를 취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여.

조금 더 저를 낮추길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최대한 청종하는 하루가 되길 원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무조건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성령으로 잡으소서.

제 안에 예수의 영이 흐름을 느끼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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