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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율례의 기본은 사랑이다. (출 21:1-11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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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율례의 기본은 사랑이다. (출 21:1-11 )

주하인 2009. 5. 21. 12:03

 제 21 장 ( Chapter 21, Exodus )

 

 

빽빽히 들어찬

이들 잎사귀의 정렬이

이쁘다는 느낌이 든다.

정렬된 그들의 자연의 율례의 질서와

흰테두리로 마무리 하고

빗방울이 얹혀지고

초록색의 생기로 마무리된

그 모습에서

주님의 율례에 담겨진

사랑의 속뜻을

적나라하게 읽어 볼 수 있다.

아름답다.  

 


1.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율례.

율법

예도.

...

 

 하지만 세상이 유지 해 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의 모음들.

당연히도 그리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

딱딱하고 재미없는

그러면서 짜증이 나려는 단어..ㅎㅎ로 모여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있으면 '구속의 자유'를 누릴 조건이 되기에

율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구속의 주체가 '하나님'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여 놓고 주님이 내리시는

율례를 들여다 보니

그 율례는 죽어 있는 율법과는 달랐다.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우선 보라.

 

 종의 입장에서는 육년 만 고생하면 자유할 '인권'이 보장 되어 있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육년 이후에 권리를 포기할 '순종의 의무'가 담겨져 있다.

 

 
3.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더더구나 종들끼리 눈맞아 결혼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 손해가 두배는 커진다.

여기에 율례를 받아야 하는 '주인'의 입장이 미묘해 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가혹한 처사 처럼 보이기는 하나

물질이나 기득권은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그것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고

주님은 소유를 버림으로 얻는 자유와 

자유를 누리게 되는 하인과의 인간적 애정의 순수함을 누려 보는

계급을 넘어서는 '사랑의 진실'을 깨닫는

정말 귀한 체험을 누리도록 하는 의도시다.

 율례가 딱딱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만일, 주인이 손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 하여

강압적으로 결혼을 못하게 하는 각종의 술수를 쓰게 된다면

그것은 또다른 악을 키우는 기회가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힘있는 자의 '권력을 통한' 정당한 듯한

'악'을 제어할 훈련도 시키시자 하는 목적도 잇을 듯 싶다.

 문제는 주인의 입장에서

주님의 6년 후의 안식년의 의미를 깊이 깨닫도록

주인과 종 모두에게 배려한 그 사랑을 기본으로 하면 된다.

그것이 없으면 악으로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다.

 

 율례의 기본은 '사랑'이다.


 
4.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주님은 거기에 또 하나의 기회를 불어 넣으셨다.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영원히 종을 소유할 수 있다.

기발하지 않은가?

피임법이 거의 전무했을 그 고대에

생기면 낳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혼 안시키기 위해서 '폭력'을 쓸 이유가 사라지니

이것또한 '종'을 보호함이 되기도 하고

주인의 악에 대한 욕구를 배제 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이것보라.

주인이 종에 대하여 사랑으로 대한다면

이 고백이 얼마나 더 실하겠는가?
 율례의 기본이 '사랑'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난 어디에서 종의 입장인가?

조직에서 내 윗분들의 '종'의 입장을 취하길 바라시는가?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우선 좋은 파트너나 영적인 동역자 를 허락하셔서

내 주위에 좋은 영적 자식들을 낳고

나와  그들로 하여금 내 속해 있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자.

상전에게 하는 것이 주님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종인 나로서 나의 의무다.

 

 주인의 입장은 어떠한가?

한 가족의 가장이다.

조직의 경험있는 중진이다.

 내 자식들과 직원들의 행복을 위하여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소유로 가지고 있는 것들... 특별히 가까운 자들에 대한

통제해 보고자 하는 의욕 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

무엇을 이루어 보고자 욕심 부리는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때가 되면 다 떠나 보내야 하는 것들이다.

돈도 그리 욕심 부리지 말자.

오늘 주어진 것들이 때가 되면 떠나 보내야 할 것일 수 있다.

주님은 그것을 내려 놓으라 하신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그냥...

그들이 '결혼'  - 진짜 결혼이든,  그들이 원하여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어떠한 것이든 -을 원하면

물흐르듯이 자연스레이 놓아야 한다.

비록 자칫 잘못하면

둘 모두 자유인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불임일 경우 ^^;;,   소득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든.. - 불상사가

생겨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욕심을 버리고 소유를 놓고

그냥 지켜 보아야 한다.

소유를 내려놓을 때 '아파오면', 그냥 주님의 안식년 포기임을 명심하면 된다.

요사이 좋은 것이 이것이다.

아..

어느새인가 아주 오랫동안 아침에 일어날 때

그토록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 거리던 증상이 하나도 없다.

그게 그것인가 보다.

일단, 나는 장래에 대한 통제의 욕심을 버리려 노력했다.

아침에 '주님의 말씀을 선택' 한다고 선언하고 나온다.

나오기 전에 주님을 반드시 십분정도 이상을 하고 나온다.

그래서 인가 보다 .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한 이후 옅어지던 근심과 걱정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이것만도 축복이 아닌가?

주님의 율례를 이해하여 보고 적용을 조금 해보려는

아주 적은 노력을 주님은 이토록 보여 주시는 것이다.

 병원에 있다 보면 정신과에 오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 만성 불안과 그로 인한 증상 들이다.

그 기저를 들어가 보면 '소유'의 욕심과 그를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그에 따른 속상함이 원인으로 있다.

그 버리지 못함은 버리려는 의지를 발휘할 근거도 모르는 무지함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율례'는 지혜다.

율례는 구속이지만 사랑의 구속이다.

그것은 자유다.

 

주님은 오해를 받고 계시었던 것이다.

나는 좀더 깊이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순종을 해야 한다.

 

 아침에 '산부인과 학회 지'를 보았다.

얼마 전에 수술했던 케이스랑 유사한 환자 - 내 환자가 더 흥미로운 케이스다 -가 case report로

논문이 실렸다.

 부리나케 차트를 찾아 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을 하고

조직병리실로 전화해서 자료를 부탁하려 했다.

 과정 중에 특별하신 반응을 경험했다.

과도한 흥분....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수술했던 장면을 녹화한 CD 를 들고 그 방에 갔다.

역시 지나친 반응.

어이가 없어 몇마디 하며 올라오려는 급한 분노가 힘이 들어

그냥 돌아 나왔다.

 분했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에 대한 과민한 반응.

주위사람들의 소리가 날 위로하긴 한다.

'그 분은....'

울렁거리며 올라오는 각종 생각 들을 십자가 앞에서

억지로 내려놓았다.

 생각이 정리가 된다.

' 아픔이 크신 분이다. '

' 내 목소리가 그 분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 '

' 사랑해라.'

........

율례는 내려 놓으라 하신다.

분노의 기본 중 하나가 '아니.. 이유없이 , 내 나이가 얼만데..'이기도 하다.

그것도 내려 놓아야 하는 내 필요없는 소유는 아닌가?

기득권.

나이들면 버리기 싫어하는 몇가지 고집들이 생긴다 한다.

그래서 나이들면 더 고치기 어려운게 성품이다.

외골수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의 말을 들을 겸허함이 필요하다.

설령 그것이 내 판단에 옳아도..

더구나 아침의 묵상에서 '내려 놓으라'하시지 않는가?

그것도 어쩌면 나이의 상관으로 나이의 종을 이해할 내려놓음일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주님 앞에 그 선생님을 내려 놓았다.

불쌍히 여기시라 기도했다.

날 위로하여 주시라고 묵상했다.

차분해진다.

 

 

 

 

적용

 

1. 아랫 사람을 사랑하자.

   자식들은 내 소유가 아니다.

   모두를 사랑하자.

 

2. 통제를 내려 놓자.

   무엇을 내가 이루어야 한다.. 는 강박관념은 율례에서 원치 않으신다.

   내 자리도..

   현재의 어떠한 기득권도.. .. 주님이 원하시면 내려 놓자.

 

3. 주님은 사랑을 원하신다.

   주님은 겸손을 원하신다.

   주님은 포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최선을 원하신다.

  뜻대로 따르도록 노력하자.

 

4. 율례의 본 뜻은 사랑임을 알자.

  난 주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기쁜 하루를 보내자.

   모든 것이 사랑의 탓이다.

  당황할 일이 생겨도 그럴 필요 없다.

 

5. 사랑을 읽자.

  성경 일곱장.

 

6. 모든 잔소리를 오늘 만큼은 스톱하겠다 !

 잔소리는 통제의 다른 모습이다.

  결과마져 주님께 맡기는 온전한 내려 놓음이 필요하다.

 특별히 자식들에게 그리하자.

 

 

 

기도

 

 주님.

율례라면 참으로 딱딱하고 무겁고 가슴답답한 것일 줄로만 생각했는데

묵상을 통하여 주님은 사랑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종과 주인의 마땅히 서야할 자세에 대하여 인식 시켜 주십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특별히 가치와 기준이 혼란스러워 

사람이 제대로 살 기회가 없는 이 시대에

주님의 놀라운 말씀이 절 살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

무거운 욕심을 내려 놓게 하소서.

주여.

사랑으로 세상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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