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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아는대로(눅3:18-38)

주하인 2012. 1. 27. 13:13

(눅3:18-38)

사람들이 아는대로

이곳이 내 직장이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

저 청년은 내 아들이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

저 합창단은 뛰어나다

 

사람들이 알지 모르지만

나와 내 아들은 사랑한다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만

주님 믿는 우리는 성공할거다

 

사람들 모두 알길 바라는 건

예수님 내 속에 살아계심이다

 

그 분 하나님을 난 사랑한다

그 분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

 

살아계신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 소리 높여 내 구주를 높이리라

 

 23.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는 헬리요 
 '사람들이 아는대로'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묘한 느낌이다.

요셉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리고 그 계보를 좇아 올라 가보면 '이런 분이심은 알겠는데

그 분이 예수님의 아버지...이란 논리로는

참 .......그렇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에 원하시는 뜻이 '사람들이 아는대로' 에 담겨있는 것 같아

생각할 여지가 많다.

주님은 결코 '세상의 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이다.

세상을 사랑하시고

세상의 삶을 인정하시고

결국 그 분의 뜻대로 운행은 하시되

함부로 조정하시지는 않는 것.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은 구약의 그 수천년을 인내하신 후

참고 참으신 후 보내신 역사 아니셨는가?

그러시면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말구유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시게 하신......

그러면서 그 분은 요셉의 아들로 세상에 인식되도록 배려하신...

 

 요셉을 돌아본다.

요셉은 착하긴 했지만 그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위치를 잡게 되고

그로 인하여 그 계보가 빛나게 드러나게 된 것에

어디 하나 그의 대단함이 작용했던가?

그가 역사적으로 대단한 일을 이루었고

바울, 모세나 여호수아나 갈렙같은 믿음의 용사로서

세상을 리드해나가며

세상에 '믿음의 한 족적'을 남기었기에 선택받았던가?

바울 님 조차 받지 못한 '예수님의 아버지'  , 마리아 님의 남편..칭호를 받았던가?

 아니다.

정말 그의 그러한 위치,

그러함으로 그의 '위'와 '위'.... '위'로 이어지는 계보의 엄청난 빛남은

철저히 하나님의 선택이었다.

 이게 감사하다.

 

 나.

정말 부족하다.

아직도 울컥울컥하는 죄성의 폭팔이 있으려 한다.

금방 하나님 앞에 다스리며 돌아오곤 하지만

죄.. 참으로 날 조그맣게 만들고 있다.

 구정 직후에도 그랬다.

참 열심히 도와주던 SA (Surgical Assistant)가 공과 사를 구분 못하며

임의로 시골에 가버렸다.

그래도 데리고 있던 직원이라 선물 사려 'Pari...B'에 들렀다 전화를 해보니

내려 가버린게 아니던가?

속이 콱 상했다.

불러 올렸다.

금방 순종은 했지만

배신감과 공과사를 구분 못하는 자에 대한

나의 강렬한 미움......이 중복이 되어 며칠 말도 하기 싫다.

주님을 믿으며 이렇게 하면 되는 가 싶기도 했지만

고소한 내 속의 속삭임이 이런다.

' 깨달으려면 좀 그녀석도 마음고생해야해.......'

갈등 속에 하루 이틀 보내다가 어제 불러다 조용히 다시 얘기했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얼른 마음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랬다.

 그래.......

이전 보다는 조금 나아졌다지만

나의 이러한 굴곡은 스스로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인품을 가진 자로서

생각될 때가 많기는 하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나 조차 사랑하셔서

날 저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보내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잖은가?

그게 .........

조금은 더 가슴에 와야 할 듯 싶다.

그것을 '요셉'의 하나도 한 것 없는 데서

예수님의 육신 아버지로 선택하시고

그 가문을 '위로 .. 위로' 빛을 비추시듯 들추어

세상의 가장 뛰어난  가문으로 삼아 주시는 것이다.

참 놀랍다.

 나.........

이래서 예수님이 좋다.

내 진하디 진한 '자책감'과 '자괴감'의 늪에서 건져 올리신 분이시다.

어깨에 무겁디 무거운 무게로 달려 들던

세상 살기 정말 재미없게 하던 무의식의 공격으로 부터

날 자유롭게 만드신 분이시다.

 

 그렇다.

세상사람들 모두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가 자유로와 지고

세상 삶이 점점 더 가벼워 지고

고난이 유익이고

약함이 강함인.......

그리고 , 예수님의 보혈로 천국 백성 됨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치유와 회복의 구원자를 모시는 삶이 얼마나 즐거워지는 지 알게되는

이 원리 안에서 ,

세상을 좀더 복되게 살게 되길 바라는 심정이 그득해진다.

 

요셉.. 그는 사람이 알다시피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셨다.

 

 한가지 더 생각해볼 것이 있다.

요셉.

그는 진정 아무렇게나.. 살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리아..

남의 남자의 씨일지도 모르는 임신녀를 아내로 맞아 아무소리 않고 배려한 분이다.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그득함을 그 영혼이 느껴서

자신도 모르는 은혜 가운데 질투내지 죄악성이 녹아 내려

그렇게 '성스럽게 '행동을 했을 지 모르긴 하지만

그의 영혼의 바탕이 선한 것임을 잘 알수 있다.

 이게 ........중요하다.

 

 나.

점차로 더욱 더 그래야 한다.

세상의 이룸이 ,

하나님 이름으로 해내는 역할이 바울님처럼 대단하지 못하더라도

요셉님의 '성스러운' 내적 성화가

어떠면 더욱 중요할 수 있음이 메세지로 온다.

어느게 더 좋다가 아니다.

바울님은 그의 '선교 ' 달란트를 통해서 그렇게 성화되어갔다.

죽을 만큼 때림을 받아 기절했다가도 또 일어나 원망않고 다른 지방으로 선교를 간 분이다.

그렇게 그는 '선교'를 통해서

요셉은 '일상'의 참음을 통해서 '성화'되어간 사람이다.

 나.

나도 그래야 한다.

내 주어진 환경이 그렇게 흡족스럽지는 않지만,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축복의 조건은

그 상황에서 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날 그리 인도하신다.

 

 

 

38.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는 하나님이시니라  
 위.. 위,... 위..

결국은 계보의 끝의 '위'에 '하나님'이 서 계시다.

하나님이 인간의 계보에........

참 놀랍다.

얼마나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

 

그 분은 '내 ' 삶속에 들어와 계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그 분은 내 계보의 끝에 들어와 계시다.

감사하시다.

 

 

적용

1.  내 삶에 들어오신 내 하나님.. 묵상하자.

  그분은 절대로 삶과 유리된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설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분은 내 뿌리시다.

 

2. 요셉님은 대단한 일 안해도 예수님의 아버지로 인정받았다.

 주님은 내 행실과 상관없이 날 사랑하신다.

 누구에게도 하나님은 자격을 주신다.

 나..

 자연스럽고 당당하자.

 

3. 성경 세장 읽자.

 

4. 감사하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날...

 이처럼 사랑하셔서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날 이처럼 사랑하신다.

 그리고 내가 예상못한 루트로 요셉님처럼 세우실지 모른다.

 어떤 것이든, 주님의 뜻이시다.

 예수님의 아버지로 세우신 것도 ,   선교의 황제 ^^;;로 세우시든......모두 주님이시다.

 그들은 각각 목수였고 강력 바리새파 살인자 였다.

  주님 안에서는 늘 감사 뿐이시다.

 

5. 하기오스.

 찬양으로 선다.

 내 계보의 끝,아니 시작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기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날 구원하시고

내 삶속에 거하시고

날 매일 이처럼 붙드시는

뚜렷하신 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요셉님을 통해서

그의 한 일과 상관없는 영광을 부여하심과

그 계보속에 뚜렷이 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여.

주에게도 확실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느껴지도록 도우시고

제 자신을 더 귀히 여기게 도우소서.

이처럼 사랑 받는 자,

저를 기뻐하게 하시고

당당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그래서 겸손할 이유가 생기게 하시고

사랑을 나눌 원인을 깨닫게 하소서.

사랑 받는 자,

나누는 이유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제 자식들도 기억하시고

제 아내 제 가족 모두를 기억하소서.

참 오랫동안 기다리지만

아직도 큰 변화가 없음을 볼 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

그들에게도 저처럼 동일하게

요셉님처럼 동일하게 만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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