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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기뻐서 죽음이 달갑다[고전15:20-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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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기뻐서 죽음이 달갑다[고전15:20-34]

주하인 2015. 11. 30. 08:54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부활.

예수님의 부활이 있으시기에

나도 내 죄로 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

'보라 .  이전 것은 갔으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도다.. .' 하시는

그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가능하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시면

난.. 내 죄로 인하여

그 죄책감으로 난 치여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활이 있으시고

이전의 죄가 '십자가'에 죽었기에

난.. 다시 멀쩡한 마음으로 설 수 있다 .

 

나.

오랫동안 고백해왔다 .

너무 힘든 가장이었고 스스로도 ......................*)_ㅖㅖ_{ㅛㅆ썌(&**%^() ...다.

무섭고 사나운.....

그로 인한 죄책감..

.... .

만일 이대로 살아 왔다면

지금쯤 혈압으로 머리 혈관 몇번 터졌을지 모르고

온통 삶이 엉터리 였을..

 

 지금.

행복함이 불행함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날 채우고있다.

내 하루에서 말이다.

미래의 고민보다

과거의 미움보다는

지금이 행복하다.

그것.

 과거의 죄로부터 , 억울함으로 부터 단절되고

죄책감 , 우울함, 낮은 자존감.. 으로 부터 유래될

훨씬 더 커진 미래의 무게로 부터  많이 발을 뺏기에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 믿지 않았더라면.. 이란 가정을

어제 묵상 중에 했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교회갈 시간 다 되어

부리나케 컴을 켜고 끼워 넣은 단문의 묵상이지만

만일.. 하나님이.. 예수님의 '복음'으로 구원을 하시지 않으셨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지금을 살 수 있을까.. 소름이 돋았다.

 

나.

확실히 확신하는 것은

난... 천국이 예비되어 있어 든든하고

이 땅.. . 늙어갈 나머지의 시간동안에도

삶의 의미가 있어서 가볍고 든든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하루를 새로 살아갈' 의미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런데 내게 부족한 게 있다.

 

이 사도 바울님의 힘있는 고백을 보라.

 

아.. ' 단언컨대'.. 라시지 않는가?

나.. 단언할 만큼 자신이 있게 하나님 앞에 살아오고 있는가?

이 분처럼 세상을 구원할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전 생애를 걸지도

그렇다고 이렇게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을 ' 그런 삶을 살고 있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 .

부활이 더 크게 되기 위하여서는

더 많이 죽어야 한다.

내가 죽는다.

나는 죽는다.

무슨 개념인가?

 

내 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자아가 죽는 다는 것.

내 것, 내 기분, 내 마음, 내 뜻대로.. 가 죽는 것.

정말.. 이 자아가 죽어야 하는 데

아직도 난 내 기분이 흔들리는 것을 아주 힘들어 한다.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건들고

내 자존심을 흔드는 타인에 대하여 '부르르'하니.. 이 얼마나 어린 자인가?

 

그래.

말씀 가운데서 하나둘 .. 이전 어릴 적 행태들을 벗어내고 있긴 하지만

이 분 처럼

'나는..... '

'날마다'

'죽노라'...하시며 강력한 고백을 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다.

정말 못한다.

그래서 이분의 이 말씀, 이선언이 이토록 부럽다.

 

그의 고통,

그의 나머지 발걸음에 다가올 세력의 장애가 얼마나 클지 몰라도

그는 그러한 두려움이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

망각이 아니다.

하나님의 도움, 성령을 통하여 폭주하시는 에너지로

매일 새롭게 부활되어 가고

그러기에 그 기쁨이 너무 크고

그 에너지가 '복음 Gospel '임을 영혼이 전율하며

매일 같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소망없는 자들아...

예수님을 믿어라.

그래서 나처럼 자유롭고 날아갈 듯 가벼워 보라.

든든한 주님의 날개 아래의 삶이 얼마나 평강, 샬롬인지

같이 깨달아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십자가에

우리의 자아를 내려 놓아보자.

그래서 매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맛보자.

저 천국의 삶이 어떠할지 같이 전율해보자.. 라 는 것 이다.

 

 

 

 

 

주님.

저는 저러함을 바랍니다.

그러함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십자가에 날 내려놓고 매일 죽기로는 너무도 내 자아가 팔팔하나이다.

주여.

이 죽지않는 날 생선 같은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길 원합니다.

그게 '죽음의 고통'이라기보다

주님의 부활을 같이 참여하는 그 기쁨이 너무나도 커서

매일매일 죽길 원합니다.

주여.

내 자존심이 무엇입니까?

 내 죽어 한줌 먼지로 삭아져 갈 이 육신의 살아 있음을 소리치고 픈

아주 가녀린 바램 아닌지요...

 

그게..

정말 영원에 아무 비교하여 들이 댈 가치가 없음에도

전 .. .아직도 내 자아를 살려 놓고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원망하고 속상해 하고 허전하고 외로워합니다.

내 주여.

 

힘을 주소서.

죽음의 고통보다

부활의 기쁨이 너무커서

날 .. 사로잡게 하소서.

저 혼자의지로는 전혀 불가능 하오니

내 주님..

날 성령으로 강력히 붙드사

내 온정신을 사로잡아

매일 매일 나 죽노라.. 하는 고백 외치는 자 되게 하소서.

내 주여.

삶에 적용시키게 하소서.

알면서도 안되는 이 자아의 퍼득거림을 사로잡으소서.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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