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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적 배려 [마19:13-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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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적 배려 [마19:13-22]

주하인 2014. 3. 14. 10:49

사람이 사람을 진정 사랑하고

그들 사이에 가로막는 것이 없어져

하나님이 원하시는

향기나는 영혼이 되기 위하여서는

얼마나 많은 가야할 길과

가로 막는 장벽이 있는지요

 

오늘은

배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온전한 배려

진정한 배려에 대하여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와

온전한 사랑 만이

세상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저희가 거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내 주여

진심으로 간구하오니 

매사에 기도할 수 있게하시고

그 기도로 인하여

제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주여

도우소서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

    니라 하시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크게 잘못했는가?

예수께서 힘들 것을 생각하고 그런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밀리는 환자들을 보시고 하루 한끼도 식사 제대로 못하시는 상태에서

고대, 중세 시절... 인권이란 개념 조차 없었고

더구나 '아이'의 인권이란 아예 무시되던 시절에

제자들은 '스승'으로서 예수님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여 하던

너무나 당연한 , 아니 나름의 생각 깊은 행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모든 원죄적 인간의 영혼이

'아이들 같은 영혼의 회복'을 위하여

세상에 오신 바 그들을 금함은 하나님의 뜻과는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것을 주님은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정말 잘못인가?

혼나는 거던가?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청년.

부자이면서도 

10계명을 모조리 지키었다는 것은

그냥 일반인들이 지킨 10계명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물질은 영적인 성결과 상극이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 하였음은

그의 심성에 꼭 율법적... 으로만 정죄하기 어려운

다른 '선한 부분' 이 있다.

 

 문제는

그러함에도 예수님께서는 '필부'들도 지키기 어려운

과도한 주문을 하신다.

'모든 재산을 팔아서... '

그것.

과연 가능한가?

나..

그리 많은 포기할 돈도 없지만

내것을 팔어 다 주라 하시면

난.. 스트레스가 심하게 올 것이다. .^^;;

아깝기도 형편없이 아깝지만

과연 주님 믿는 다는 것이 이처럼 모두 '거지'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는 가.. 하는

표현하고 싶지 않은 반감 같은게 들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니시지 않는가?

 예수님은 질타나 실족할 만한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의 본질과는 너무 어긋난다.

그렇게 잘하는 자에게 다리 걸어 넘어 뜨리시는 현대의 '집단 정신병'도 아니시다. ^^;;

 

 그렇다면 무엇인가?
위의 제자들에 대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직은 덜 성장한' 제자나 사랑스러운 젊은 부자에 대하여

깨달음을 주시려는 것이시다.

어느 복음서인지 모르시지만 젊은 청년부자를 이쁘게 보시는 뉘앙스가 나온다.

 

그렇다면 두 장면에서 무슨 공통적인 레마가 숨어 있던가?

그것을 나에게 알게 하시려 하심이다.

 

'제자' 나 '부자청년' 모두 잘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했고 나름의 시대적 가치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예수 앞에 나왔다.

청년이 문제가 없음에도 그 가난한 무리 사이에서 예수를 쫓은 것을 보아도 알 수있지 않던가?

모두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 예수님 앞에 칭찬 받고 싶은 선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두 군(群) 모두 그 기준이

'자기 자신들의 생각'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아도 그들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질타'처럼 들릴 교훈을 얻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배려'를 해주시길 가르치고싶으신 것이시다.

제자들에겐 '아이를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기를 권고하신 것이고

부자 청년에게는 '자신의 기쁨을 위한 율법 준수' 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타인의 진정한 필요성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이시다.

가난한 자에게 먹여주는 나눔의 마음..........

예수님은 '공생애 내내' 타인에게 주셨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될 입장이기에 더 세게 권고하셨을 뿐.

 

나를 돌아 보았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것이셨다.

'주하인아 .

이제는 배려를 하라.

네가 하는 행동이 그들에게 옳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해주어라.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다.'

 

당직 방, 새벽 .

환우분의 콜이 있어 깨어내려 갔다 걸터 앉은 침대 맡에서

잠시 묵상을 위한 기도를 하는 중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나.

환우 분들에게 최대한 설명을 쉽게.. 날렵하게 한다.

'이러 이러하니 저러저러 해서 조러조런 치료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요런 요런 경과가 예측이 되니

 이렇게 이렇게 하시라'

어떤 분들은 아주 좋아하신다.

어떤 분들은, 아니.. 솔직히 더 많은 분들이 그래도 어려워 하신다.

나... 두번 ..세번 설명하면서 지친다.

그리고 차가워지는 듯하다.

그거... 최근에 내 모습인 줄 깨달았다.

어떤 분들이 그렇게 잘 해주는데 왜 짜증 내며 가는 지 조금씩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ㅜ.ㅜ;;;

 

 오늘 말씀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라 시며

'배려' 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크게 들어오게 하셨다.

기도 중...

솔직히 자주 그러해야 함을 알긴 알고 몸부림도 쳐 봤지만

어느새 55년 살아온 내 입술이 나도 모르게

이전과 같이 줄달음질 치고

변함없는 얼굴은 또 딱딱하게 굳어지니...

이 .. 깨달음은 늘 내 행해짐의 뒷북을 치는 것을 되풀이 하면서

난 주님 앞에 결심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자주자주 '주님'은 그래도 아시고 날 이해하실 것을 빌미로

변함없는 시간들을 저들처럼 '내 좋은 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면서 살고 있더란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자'에게서 바라는 더 뛰어난 '행동',

정말 향기로운 행동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자라면 당연히 잇어야 하는 것이

내게는 제대로 나오지 않음에 난.. 자주 당혹해하고 잇던 차다.

 알면서 바라면서도 너무 오래된 (50년 넘게 .. ) 되풀이된 습관의 탓에

난... 의지를 발휘할 틈도 얻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던 차란 이야기다.

그러다가 최근 말씀 가운데,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다시금 기본을 회복하게 하는 촌철 살인의 설교를 들었다.

 

' 결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어제도 그제도 이 말을 썼다.

너무 간결하면서도 내 현재의 수준에 맞는 ^^; 정확한 말씀이기에 그랬다.

결심하고 선택.. .왜 하지 말까?

당연히도 해야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선택'하고 '결심' 하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령으로 인도 받는 것을..

그러나, 영적인 문제가 늘 그리 간단하던가?

어느새 잘되는 것을 이유로 ' 내'가 앞에 나가고 '매너리즘'이 신앙인양 가리다 보면

전혀 영적이지 않은 신앙행동만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간의 본성 중에 누구나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제 새로운 단계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결심하고 하나님 이름을 들먹이면서 내가 쉽게 나가는 행위가 자제되는 대신

매사에 '기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정말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제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본래적.

마땅히 해야 할..

그래서 그러려 한다.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나에게 진정 바라시는 대로' 행하려 한다.

그러나, 고백한대로 난 너무 오랫동안 내 습관에 쩔어져 있다.

그래서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슬금슬금 내가 앞선다.

제자들처럼..

부자청년처럼..

내가 저들과 다른게 .. 하나도 없다.

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타인의 그렇지 못함을 차갑게 정죄하고 있었으며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경시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민은 하지만 내 의지로 고치지 못하여

좌절하며 가라앉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제 다시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내 그런 부족함,

타인의 입장에서 더 들어주고 더 이해하고 더 기다려 주지 못함,

당연히 의사로서 환우들의 어려움과 힘들고 긴장하는 상황을 이해하여야 함에도 그러지 못함,

아버지로 남편으로 아직까지 권세 사는 가장으로 더 낮추어 그들의 소리대로 살아줘야 함에도

난 그러지 못했다.

자주...

이제 기도로서 아뢰고 다가가겠다.

요 며칠 그런 연습을 시키셔서 그리한다.

고민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는다.

괜히 좌절하거나 속상해 하지 않는다.

그러려하면 '주님 어찌합니까?' 하고 일분이라도 기도하고 나서 다시 행한다.

그러면 훨씬 힘이 들지 않고

기뻐하시는 주님을 느끼게 되곤 하였다.

아.. 기본의 회복.

아니.. 올바른 방향.

그 것은 고난과 연단의 과정 중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안다.

 

오늘 특별히 다시 하나님이

그 들, 그 분의 입장에서 배려하여야 함,

그러지 못하게 막는 '에너지'들의 반란에 대하여 기도로써 물리침.. 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도 수술 무사히 마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약간의 걱정되는 상황 (환우의 문제)이 있사오나 그것마져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이 편하신 대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주여.

그리고 환우 분들의 입장에서 들어주려

그제보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노력했습니다.

강한 조급한습관, 정죄의 문제들... 기도하고나니 조금은 가벼워 졌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생각하려 애쓰고 있고

본래적 배려를 방향 잡으려 하니

주님이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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