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미련한 자의 참새 소리[잠26:1-16] 본문
2.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까닭없는 저주'
이유를 알수 없는 저주.
내 잘못과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하는 저주.
왕따,
참새의 짹짹 거리듯
제비가 빨리 날아가 버려
온통 시끄럽긴 하여 마음이 산란 하게 하기도는 하지만
도저히 그 정체를 눈으로 똑바로 보거나 귀로 알아 들을 수는 없는
'참새'나 '제비'일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있게 되는 소리들.
머리속의 상념들.
사단의 소리들.
반드시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온전하고 밝고 건강한 단일의 소리들로
마음이 채워져야
행복하여 지고 밝아지고 생명력이 넘치는데도
사람들은
자라면서 불완전한 동일한 원죄적 인간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그 인격의 틀에
그들의 '참새 같은 소리'
'제비의 비적(飛跡)' 같은 소리들이
그 영혼 안에 자리잡게 된다.
이 오래된 과거의 소리들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든가
너무 오랫동안 영적 타격을 지니며 큰 사람들이라든가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육신의 힘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으면
참새가 지저귀듯, 제비가 혼란케 하듯
그 마음이 온갖 상념들로 뒤범벅이 된다.
이때 다가오는
주위의 의미없는 소리들은
그들 소리들을 자극하여
당하는 자들의 머리 속에서 갑자기 동일한 굉음을 내게 된다 .
'째~액 짹, 지지배배'
머리 속의 판단은 온통 이해치 못할 궤적으로 혼란케 되고..
저항을 놓치거나 심한 경우
우울.......................로 빠지게 된다.
세상이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자신이 중심이 되는 세대라서 더욱 참새의 소리는 강해지고
저항할 '옳은 소리'를 선택할 기회가 줄어들어
영적 심리적 병들이 늘어나게 된다.
믿는 자들은 힘이 줄어들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입'을 닫고
절대 하나이신 여호와,
유일하신 하나님을 더욱 쳐다 보는 것이 되지만.. .
그게
쉬운가?
4.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이때
입을 벌려 그들에 저항을 하면
속이 편할 것만 같다.
' 그러지마..
난. 아냐..
난.. 그렇지 않아.
조용히 해... !!'
이게 '어리석은 일' 아니던가?
나이들어 보니
점차 세상에서 그리 중시 했던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게 있던가 싶다.
그렇게도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체면을 위해 감싸고 붙들며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몸부림 치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 .
가진 것, 가지지 못한 것.
남들의 소리,
그들의 판단... .
세상의 보편하다고 생각되어지던 기준들....
어느 하나 '참새의 소리'가 아닌 것이 없다.
어느 하나 제비 날개치며 그리던 비적이외의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
심지어는 목숨걸어 성공시키고 싶어하던
자식들 마져 내 뜻과 달리 나갈 때
그리 몸부림 치고 싶어지던 것조차
가만히 쳐다보는 시간이 지나니
어쩔 수 없는 '절대자'의 뜻 가운데 한 흐름이었다.
'미련한 자.'
하나님이 중요시 하게 생각지 않는 모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미련한 자들의 어리석은 소리이다 .
그들에 대하여 '대답하지 말라'신다.
비록 내 입은
갖은 논리와 힘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근질 거리지만
그렇게 하여 그들을 이겨내면 또 무엇할 것인가?
결국 참새를 이겨내는 것이고
미련한 자에 반응하는 미련한 내가 아니던가?
5.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보라
'미련한 자에게 대답하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 되는 것이고
그가 스스로 지햬롭다 생각하게 만드는 '죄'마져 지는 것이다라신다.
'강아지'와 대적하는 '호랑이'가 있던가?
호랑이가 같이 진지하게 놀아 주면
강아지는 자기가 호랑이인 줄 착각하고
호랑이는 강아지인줄 믿어버린다.
그것은 호랑이에게도 문제지만
강아지에게는 생명을 잃게 만드는 죄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의 일로 분노할 것이 아니고는
일일이 말대꾸 말자 .
그들의 저주에 응대 말자.
그들은 하룻강아지고
그들은 참새의 지저귐일 뿐이다 .
우리는 '지혜로운 자'고
우리는 '호랑이'다 .
오늘 하루 만이라도
말씀이 이리 정확히 지적하시니
입을 닫자.
그리고는 피하자.
말씀 만 붙들자.
하나님.
하루가 또 밝아 왔습니다.
메르스 때문에 입원했던 수술 환자도 퇴원해 갑니다.
전국이 말도 아니게 어렵습니다.
가뭄은 직격탄을 때리고
메르스는 또 경제에 엎친데 덮친 부담을 줍니다.
일본은 자꾸 한국을 자극하며 엔저의 폭탄으로 중소기업들이 마구 무너집니다.
북한은 또 위협하고
중국은 스마트 폰, 선박을 넘어 '자동차'마져 반값으로 공략해 들어옵니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 리더들은 대책을 세우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정권 말기인데도요.
가뭄은 '엘니뇨'의 영향이고
남해에서 열대어들이 잡히며
커피가 충북 음성에서 재배되고
열대과일이 남부지방에서 마구 나옵니다.
지하수 마져 부족하여 땅은 갈라지게 되며 싱크 홀로 가라앉고
화산은 백두산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진은 네팔을 넘어 일본을 흔들고
우리나라도 안전치 못합니다.
이제 곡물 생산량이 동남아 그곡창 지대에서 조차 30% 이상 감산된다고 하고
3D프린터 등, 미래의 과학들은
더 이상 인간의 일자리를 허용치 않고 있다고 하며......................
곳곳에
그리 반갑지 않은
세기말적인 현상들이 쏟아 지는 이때...
제게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미련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저 .. 외적인 .. .기도해야 할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참새의 소리'
'제비의 궤적'에 후두두하며 떠는 것입니다.
제안의 미련한 부분들,
그 미련한 부분을 자극하는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들 말입니다.
내적인 미련함.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 만 중요하지
세상의 미련한 자들의 소리에 일희 일비함은
그리 중치 않음에도
전 아직도 그러고 잇습니다.
그 미련한 자들의 미련한 소리에
하나하나 깨부수고 싶어하는
미련한 논리와 철칙이 미련하게도 제 안에
바위 돌 처럼 자리잡고 있음을 압니다.
그 앎에도 불구하고
오래 수십년 자리잡은 습관은
또아리를 틀고 앉아
미련한 자의 참새소리, 참새 지저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더 미련함 말입니다.
주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호랑이'의 그것 같은 자격이
저 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가 하룻 강아지에게 반응 않듯
참새의 지저귐에
너무 시끄러우면 슬그머니 피하듯
그리 응대치 않게 하소서.
주여 오늘 제게
새로운 삶의 행태에 대하여
참새와 미련한 자의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셨사온즉
잊지 않게 하소서.
미련한 자에게 미련한 취급받는
미련하기가 한량없는 자되지 않길 원하오니
주여.
저를 붙드소서.
고치소서.
달래소서.
지혜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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