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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끈 아들과 털아들(창27:1-14) 본문

구약 QT

미끈 아들과 털아들(창27:1-14)

주하인 2007. 5. 4. 13:53

제 27 장 ( Chapter 27, Genesis )


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마음 속에 근심이 되는 자가 에서다.

그럼에도

에서가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삭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버지 인가부다.

그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수천년의 시공을 넘어

마치 옆집 아저씨가 그 자식을 애정으로 부르는 소리 같이 들린다.   

"내 아들아"

 

나도 내 아들 둘을 참 사랑한다.

 

 그중 큰 아이는 군대에 가 있다.

수송대대에 조그만 차를 운전한다고 한다.

 그 큰 아들이 참 차분하다.

여기서 둘째 야곱처럼 털도 별로 없다.

미끈 아들이다.

빈틈이 하나도 없다 .

누가 봐도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아내가 약간 더 편애한다.

 

 둘째는 털아들이다.

몸이 크고 털이 많다.

날 꼭닮아서 식성과 좋아하는 옷스타일도 관심 가지는 영역도..

터프가이다.

엉터리 같고 공부도 못해서 형에게 많은 걸 빼앗기고 자랐다.

그래서 인지 이놈이 애뜻하기는 하다.

 

 이삭의 '내 아들아'하는 소리를 읽으면서

불현듯

군에 가 있는 미끈 아들이 보고싶다.

오늘도 시험을 보며 헤메고 있을 둘째가 생각이 난다.

둘 다 불쌍하다.

성질 급한 아버지 밑에서

혼나고 크느라고 많은 마음 고생을 하고 자랐을 녀석들을 생각하며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삭이 죽을 때가 가까이 되어서

근심이 되는 아들인 에서를 부르며

"내 아들아" 하면서

죽기 전에 네게 마음껏 축복할 것이라는 그 표현이 가슴에 온다.

 

 비록 자식을 올바르게 하나님 앞에서 키우지는 못했지만

그 자식이 가슴에 미어지는 것은

어느 부모나 심사가 다 똑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걱정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나온다.

그리고

그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대로 읽혀지는 것이

성경의 살아 있음을 또 한번 느끼게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내 자식들

공부 잘 못해도

크게 속 안썩이고

마음 밭이 너무도 선한 아이들임을 아는데..

남들처럼 크게 타락도 못해보고

아주 기억날 조그만 죄만 지었던 것을

난 왜 그리 크게 걱정하고 그 아이들에게 잔소리들을 했던가 한편으로 반성이 많이 되기도 한다.

주님 앞에서

에서라는 자식을 길러낸 것은 그리 내세울 것은 못되어서

그들 부부가 근심으로 아들을 쳐다보았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그가 커갈 것을

그냥 기도하고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 안타까움이 죽기 전까지 축복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고

이삭의 인내는 그런 면에서 자식에게 까지 그대로 나타냈던 것 같다.

 

"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난 우리 아들 들이 부족한 점을 많이 보고

항상 어떻게 하지..하면서 키웠었다.

그러다 보니 사랑보다는 훈계가 많았었고

그건 예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부터는 아주 큰 잘못임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을 마음껏 축복하고 키워 보고 싶은 생각은 머리 속에 아주 많고

늘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아이들을 키운 이십여년 의 시간의 습관이 나를 여러 훈련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상한 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삭의 죽기 전에 자기 마음대로 축복해보고 픈 그 심성이 나에게도 어떤 묘한 충동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주님은 그를 기뻐하시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식을 세상적으로 축복하기 보다는

그의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섬을 우선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되지 않고는 축복은 또다른 양날의 검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이시다.

그러한 증거는 곧 나온다.


 
5.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참으로 묘한 우연이다.

리브가가 그 말은 어찌 들었을까?

마치 사극 영화에 나오는 여 시종이

왕후의 시중을 들다가 슬쩍 엿듯는 그런 장면 같이 느껴진다.

그 들음에 따라

미끈한 사람이 털 사람을 이겨내고 축복을 대신 받는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 우연한 엿들음 하나로 인간 세상의 질서가 바뀌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슬람 사람들이 온 세상의 중심이 되어가는 이상한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어쨋든 우리 주님의 뜻을 어기고

자식을 주님의 뜻대로 잘 키우지 못하고

어긋난 자식을 주님에게 눈물로서 올려 드리는 눈물의 기도가 뒷받침 되지 않는

육적 애정에 의한 사랑은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난 내 자식을 주님께 올려야 한다 .

그들의 앞길에 대하여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턱 막히려 한다.

걱정이 너무도 많은 난

오랜 훈련으로 이제야 미련하게도 길을 보고 있다.

그길은 주님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길이다.

어 떤 분들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떤 분은 좋은 환경 탓으로 자손에게 귀한 영향을 끼칠 수 잇을 지 몰라도

선천적으로 교만 덩어리인 난 내 아는 것 이외 것을 들어 보려 하는 귀를 갖지 못한 자였으니까..ㅎㅎ

 어찌 되었든

난 매일 매일 내 터부를 깨뜨리고

내 삶의 지평을

말씀을 통하여 하나 하나 넓혀가고

매 순간 인식의 체계를 수정하고 고쳐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자식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과 괜한 통제를 내려 놓길 가슴에 들어오는 예로써 보이고 있는 것이시다.

 

" 나도 내 자식을 축복하고 싶다.

  정말로.. "

그러나,

주님은 축복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시고

축복은 하시되

인본적인 생각과

내가 어찌 그 삶을 바꾸려는 의지와

기도를 통하여서도 남을 바꾸려는 헛된 생각을 내려 놓으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

 

그들을

사랑으로 쳐다보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재능을 사랑하고

못함을 긍휼이 여기며

무엇하나 내가 하려는 통제를 내려놓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

무엇이든 내가 하려고 하다가는

그 계획이 아무리 좋고 아무리 그럴 듯 하더라도

주님의 손에서 틀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가 미끈 사람이 털 사람을 뒤집은 것이 아닌가?

 

다행이도 우리 아들 둘은 선 후가 분명하다.

큰 아들이 미끈하고

둘째는 털이다.

 

 

 

적용

 

1. 어제 읽지 못한 성경까지 10장을 읽겠다.

 

2. 아이들 둘을 위해 기도하겠다.

 

3. 주님 앞에 내려 놓는다.

 아이들의 모든 장래, 성적, 성품, 모든 것을 ..

 상의만 응해 주고

 칭찬하겠다.

  들어주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뜻대로 세상이 움직여 지기를 원합니다.

나의 아들

그들의 장래까지도 당신의 뜻대로 움직여 지기를 원합니다.

그 아이들의 생각도 당신의 뜻대로 운행되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이 사랑 많음, 올곧음, 지혜 모두 주님이 통제하시기를 원합니다.

그저 그 아이들을 위하여

마음대로 축복하기를 원합니다.

그게

그러나

주 안에

주님의 뜻대로

주님에게 올려서 이루어지는 결과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도우소서.

우리가정 지켜주세요.

건강을 책임 져 주시고

우리 가정의 사랑을 지켜주시고

넘치는 감성이 우리 가정을 깨끗이 감싸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 아니면 목숨이라도 버리는 그런 결단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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