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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밀면 밀리자(창26:17-35 )

주하인 2007. 5. 3. 08:44

( 이렇듯 황량한 골짜기로 밀려나도 이삭은 묵묵히 샘 만을 팠습니다.)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이삭이 하는 일 마다 다툼이 일어난다.

매사에 되는 일이 없다.

쉽게 말하면 재수가 없다.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허나 이삭은 무반응이다.

그냥 싸우지 않고 옮겼다.

손해보고 말자다.

또 다른 우물을 파고 나서야 다툼이 없으니

과묵한 그의 입에서 고백이 나온다.

 

"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다."

 

이런 고백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속상함도 없다.

귀찮음도 못느끼는 것 같다.

아깝지도 않은 가보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분노도 없나보다.

그냥 모든게 하나님 뜻으로 그에게 보이나 보다.

 

 긍정적인 게 말도 못한다.

넓은 장소를 물려 주시려 그토록 다투게 했나보다. ...가 그의 생각이다.

 

참 부럽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약해지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다.

곤란하고 궁핍해지고 핍박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면 그게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다.

그게 곧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바로 이삭의 이 모습이 아닌가?

 

철저하게 주님은 예를 들어 좋아하면서도 삶에서 실행하지 못하는 이 주하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 같아 주님의 세심함이 새삼 감사하다.

 

이삭은 연달아 선언한다.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 할 것이다."

 

그의 배울 모습은 참을 성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철저히 믿고 기다리며 포기할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온 것을 아는 지혜도 있다.

그 지혜는 세상의 사는 처세술, 성공술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이다.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지혜 뿐인가

결단도 있다.

때가 되면 주님의 단을 먼저 세우는 실행력도 있다.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 지라 
 오랜 고생의 시간 후

그가 때가 온 것을 알고 단을 세우려 가는 날 밤에 정확히 하나님께서 나타 나셨다.

그리고 축복을 한다.

 이삭의 형통한 믿음이 보이는 듯 하다.

그는 절대로 무리를 하지 않는다.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9.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2.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이삭의 주님의 뜻에 맞추는 믿음은 모든 게 형통하게 한다.

 

그가 고통을 받을 동안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자인 듯 하였다.

바보 같고

철딱서니 없어 보이고

理財에는 전혀 비전이 없어 보이고

무능력 자 인듯이 보였지만

결국은 그는 성공했다.

 

 그러고 나니 그를 괴롭히던 자들도 하나하나 다 그에게 무릎을 꿇고 다가온다.

그것을 그는 또 화해의 품으로 끌어 안는다.

 

 믿음의 승리다.

 화합의 승리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의 승리다.

 인내의 승리다.

 

 복은 연달아 터진다.

 단을 쌓으면서 뚫기 시작한 물이 또 터진다.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그럼에도 완벽한 세상 삶은 있을 수가 없나 보다.

에서가 말썽이다.

 

 못 가진 것을 가지고

가슴앓이 하면 세상의 삶은 유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을 기쁨으로 감사하고

부족한 것을 주님께 아뢰고

그 분께서 고쳐주시기를 기도하고 기다려야한다.

 

 둘째 아들이 공부를 참 못한다.

최근에 두 분의 도우심을 입어

나름대로 많이 변했으나

아직도 옛버릇을 전혀 고치지 못하고

틈만 나면 거짓말- 확증은 없지만 그 애의 오랜 습관을 알기에 안다.-을 하고 내일이 시험인데도 오랫동안 밖에 나갔다가 11시 경에 들어온다.

 속이 뒤집어 지려 한다.

그럴 때마다 근심이 되기도 한다.

'내 나이가 몇이고 지가 몇학년 인데 저러나?

 저런 성품을 가지고 어찌 하누

 세상은 각박해지는 데 어떻게 살꼬?...'

 그것 마져 놓으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한번 씩 밀고 올라오는 근심은 오늘의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 까지는 아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세상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고금을 불문하고 다 똑같고

환경의 다름에도 다 비슷할 것임이 한편으로 위로가 된다.

 

 

 

적용

 

1. 이삭의 무저항 주의를 닮겠다.

 무리한 요구가 있어도 그냥 물러난다.

 

2. 인내를 닮겠다.

 

3. 모든 것을 주님의 뜻안에서 생각하겠다.

 

4. 이삭의 고백을 외우겠다.

  창 26:22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그리고 기도로 최근의 편안함이 주님이 넓혀주신 장소인지 여쭈어 보겠다.

 

5. 아들들을 위해서 깊이 기도하겠다.

  주님이 다투소서.

  주님이 싸우소서.

  그 아이들을 잡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6. 성경 5장 읽겠다.

 

 

기도

  오늘은 이삭의 모습을 보며 많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제가 사모하는 말씀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예가 제 삶에서 펼쳐지면

아직은 가슴이 두근 거리고

얼굴이 후끈 후끈 달아오르고

손발에 식은 땀이 나며

온통 근육이 긴장하고

동공이 수축하며

눈꼬리가 올라갈 그런 상황입니다.

걱정이 많이 될 듯 싶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신경쓰일 그런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어제의 그 터부를 깨는 지침돌 묵상 처럼

저에게 제 터부를 또하나 깰 도구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또 한번 내 의지적으로

주님의 뜻대로 변화할 거야.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반응하던 분노의 태도에서

이제는 똑같은 상황을 차분히 대처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엉터리 같은 이삭의 상황에서도

이삭처럼 이겨내고 나와

'주님이 기뻐하실 거야'라는 기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라는 고백과 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그 느낌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임을 압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또 이길 지표를 주신 하루를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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