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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내 아들들의 향취(창27:15-29)

주하인 2007. 5. 5. 11:46


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23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능히 분별치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 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믿음은 동토의 깊은 추위에서도 안온하게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 

 

 

 

 

 어떤 책을 읽으니까 '그 사람은 생각 그 자체이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어제그제 병원에 한달에 한번 씩 있는 행사에 초빙되어온 분이 '김정택 SBS' 단장님인데 그 분의 달변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웬만한 개그맨의 말보다 훨씬 유려한 말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데 그 내용도 흠잡을 데 없이 차분했다.

그리고는 그 분의 믿음에 대한 생각은 감탄을 금하질 못하게 했지만 특별히 기억이 남는 것은 이것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먹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웃고...'이다.

그리고 감동과 더불어 넘치는 확신으로 '믿음은 기도하고는 그리된 줄 알고 기쁘게 기다리는 것'이라 선언하시는 말씀이었다.

 당연하지만 누구도 잘 시행치 못하는 것을 당신의 간증과 더불어 시행하니 그게 가슴에 꽂혔다 .

 

 믿음은 예수님의 구원의 기쁨을 맛보고 성령체험을 한 사람들의 믿고자하는 생각이다 .

즉 , 살아계신 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그분이 해주실 것임을 의심하지 않으려는 의지적 생각이다.

생각이 주님 안에서는 다 이루어질 것이다

아니면 주님이 알려 주실 것이다.

그게 믿음이다.

그게 믿는 자들의 성품이다.

그 성품이 바로 그다.

그는 믿음이다.

나도 믿음이 되고 싶다.

 

 오늘 이삭의 약한 모습을 보고 있다.

하나님께 에서의 모습을 있는 대로 고하여 올리고

그 분께서 에서를 고치실 것을 믿어버리면 

에서는 어쩌면 그대로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노후의 믿음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자식에 대한 편중된 마음을 보고

모든 믿음을 다 그리 평가하는 것은 어설 픈 짓인 줄 알고 있다.

한편으로 그의 에서에 대한 그런 마음을 허락하셔서

오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렇듯 이어오게 하시고

그 와중에 예수님이라는 엄청난 역사가 지구상에 임하게 되는 계보가 이루어 지도록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의 믿지 못하는 마음 자세는

'만지려 하노라'는 말과

향취를 맡는 행동에 나온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기에 만져 보아야 겠다.

그렇기에 냄새를 맡아 보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미끈한 아들을 털아들과 헷갈린다.

 

그게 그렇다.

믿음은 믿음 만이 족하다.

거기에 그걸 확인하려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

세상은 그래도 속일 것이다.

주님은 믿지 못하는 자의 행동은 그대로 두신다.

 

 이삭은 만일 에서임을 믿고 그냥 담대히 계속 진행되는 감동적인 아버지의 부정을 야곱인 (가짜)에서에게 시행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내 아들의 향취 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아 사랑하는 내 아들의 향취, 즉 냄새는 여호와가 복을 주신 밭의 냄새와 진배가 없구나~~"

하시며 잠시 그 아들을 껴안은 그대로 냄새를 깊게 흠향하고

잠시 글썽거리는 눈물을 참으며

" 에서야~~

 난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로

땅의 모든 기름진 것으로

그리고

풍성한 곡식으로

또한

포도주로

너에게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야곱은 아마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본인이 에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서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깊은 부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며

자신이 아닌지 의심하는 냄새 맡고 껴안고 멘트를 날리는 등의 행동을 시행함으로 느껴지는 짧지만 긴 냉랭한 배척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버지의 그 큰 믿음의 그릇을 느끼며

아마도 그는 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음이 기가 막히도록 감동스러웠을 것이고

그런 귀한 믿음의 행동은 자식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깨닫고

하나님 이름으로 행하는 거짓에 대하여 진짜로 잘못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그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조기에 아물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아마도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등의 고통성 찬양은 나오지 않았을 줄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고통을 통한 공감되며 지어진 찬양과

그의 행적으로 인해 배워질 고통의 유용성과

믿음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그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를 넘나드는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은

이처럼 이삭이 불완전한 모습을 허락하신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니

어찌할수는 없기는 하다.

 

 그렇다면 오늘 묵상에서 배울 것은 이것이다.

 

믿어라.

그것이 무엇이간에 선을 이루는 일에 필요하다면 흔들리지 말고 믿어라 .

손해가 예상이 되어도 믿어라.

 

 또한 어제부터 난 이삭님을 통해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솟음을 느낀다.

그의 비록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이지만 자식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고

그걸 우리 두 미끈과 털아들에 대입시키니

지금 내 한 가슴이 따뜻해지며

눈한쪽이 촉촉히 젖어올 듯하다.

솔직히

절대로 난 감정 잡지 않았다. ㅎㅎ

이것은 큐티를 통하여 왜곡되지 않은 감정의 순화과정임을 난 알기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묵상을 하면서 깊은 장점 중의 하나.

우선 생각이 건전해지고 그 생각이 내 인지체계의 중심 원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보다

왜곡된 감정이 엷어지면서 서서히 순화된 감성이 살아난 다는 것이다.

 

 1년 쯤 지나니 난 詩가 써지기 시작했다.

문체나 구성 등.. 이론적인 바 결핍은 많겠지만 틀림없이 난 시를 썼다..ㅎㅎㅎ

그게 중요하다.

예전에 그리도 이해하기 어려운게 시고

시쓰는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보였다는 게 사실이었다.

 

그만큼 감성이 폭이 넓어지고 순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전혀 시 근처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이러니.. 원.

 

주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 분이 내 깨워진 시성(詩性)에 몇 마디 눈에 들어오는 문구를 남기셨다.

그게

'내 아들의 향취'이다.

아..

얼마전 영화 제목 중 '그 여자의 향취'라는 게 있던 것 같았는데 그것을 보며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죽기 가까이 된 사람이 정말 근심거리 아들이지만 안타까움을 물리치고 순수한 사랑을 결심하며 껴안으면서 맡는 냄새 - 비록 가짜 에서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에서는 그냥 에서다.  이삭에게는... -가 그 얼마나 가슴을 절절히 미어지게 했을까.

아마 눈 속에 파서 담아도

호주머니에 넣어도 안타까움이 사라지지 않을 그런 절절함이 었을 것이다.

그런 그를 가만히 그러나 힘껏 껴안고 잠시 있으면 어떨까?

( 때로 허깅은 놀라운 일을 벌어지게도 합니다. )

 

 아버지 학교에서

교회에서 사람들을 껴안게 시키니

아버지에게 안긴 아들이 이유없이 눈이 퉁퉁 불도록 우는 장면을 보았다.

재추로 들어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새 딸이 엉엉 우는 것도 보았다.

아무 얘기도 안하고 안기만 했는데..

그 안김은 벽의 허물어짐을 유발한다.

 

난 내 아들을 둘 안았다.

이 묵상을 진행하면서..

그래서 인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현상이 나오는 듯하다.

 

우리 미끈 아들.

군대에 가서 외로운지 언제 면회오냐고 전화를 어제 했단다.

가슴 아파라.

둘째... 엉터리 같은 아들 어제 안아주니

저녁에 찬양하는데 나와서

나와 똑같은 -정말로 똑같은 -감성으로 마구 화음을 해댄다.

찬송 '죄짐 맡은 우리 구주'가 우리 셋 - 아내 포함-의 트리오 soul version으로 절묘하게

우리 아파트의 새벽 1시를 장식했다.

 

 그 아들을 오늘 이삭께서는 감동적인 어조로 축복을 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28절이 유난히 아침 부터 아름답게 느껴지던 축복의 구절이다.

세상의 축복을 굳이 고하고 싶지는 않다.

'영육혼 간에 주님이 허락하시면

 그 아이들의 영혼에 맞게 하늘에서 늘 내리는 이슬같이 이슬같은 촉촉함으로 그들을 적시고

 땅에서 심으면 백배 소출 나는 것처럼 그 아이들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영육간에 축복하시며

 무엇을 하든지 곡식 풍성히 맺히듯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기도를 하면 풍성한 은혜를

 봉사를 하면 풍성한 구제가

 남들을 위해 축복의 마음을 가지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면 모든 자가 그들로 하여 부흥되게 하소서.

 포도주의 축복도 허락하소서.

 예수님이 포도주로 피라고 허락하신 그 성령의 충만함이 늘 그 아이들의 장래에 넘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고 싶다.

 

 

적용

 

1.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칭찬하고 공감한다.

   절대 잔소리 않겠다.

 

2. 큰 아이에게 편지 쓰겠다.

 외로운가 보다 .

 

3. 내 아들의 향취 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는 구절을 외우겠다.

그리고 이 소절로 아이들을 축복하겠다.

 

4. 원함을 분명히 하겠다.

 원함이 주 안에서 하나로 이루어지길 소원한다.

 그리고 그 원함을 이루어 주심을 믿겠다.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 날입니다.

아이들은 다 컸지만 아들의 날에 정확한 메시지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이들.

이전에 주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살 떨림으로 그들을 축복하길 원합니다.

내안에 선한 감성 살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믿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무엇을 원하는 지 명확히 하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의 뜻에 합치된 원함으로 바뀌게 하시고

그 것이 이루어 짐을 믿는 제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도우세요.

정말 도우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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