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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시는가( 삼상6:1-7: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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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시는가( 삼상6:1-7:2 )

주하인 2008. 5. 19. 11:54

제 6 장 ( Chapter 6, 1 Samuel )

 

 십자가를 보는가?

십자가를 소품으로 한

달밤의 멋진 분위기를 보는가? 

 


2.  블레셋 사람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소경이 소경한 테 길을 묻는 구나.

  
 
3.  그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 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하고
 그래도

그 소경은

영적인 생활을 하는지라

영적 원리에 대하여 꿰뚫고 있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신 조물주시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서도 그 분의 흔적을 찾을 길이 많다.

 

 스님도

무당도

영적인 원리를 안다.

신통하기도 하다.

 

 그들 나름대로 믿는게 문제지.
 
9.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이거보라.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지 않는가?

 

 잘못된 믿음.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가니라
 
 암소가

마치 의지가 있고

큰 소명이 있는 것처럼

젖 떼지 않은 자식들을 두고

좌우를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까지 간다.

 

 이걸 보며

몇가지 의문이 든다.

 

하나님은

불신자 제사장들의 시험거리에 속하시는가?

지켜보는 가운데 벧세메스로 가시지 않는가?

속상하기도 하다.

 

 하나님

여호와 그 분이..

어리석은 벌레같은 인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터덕터덕

초라한 마차에 실려

말도 아니고

소가 끄는 우차에 이끌려 가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동자...  (생각 같아서는 '눈깔들'이라 하고 싶다.^^;;;) 들이 쳐다보고 있었을까?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판단하고 생각하고 했을 것 아닌가?

아무래도 그러면서

그들은 주님의 살아계심을 판단하기는 하겠지만

그러기엔

속이 상하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의 시험아닌 시험에 응하신다.

 

그러시면서

그 분은

그 분의 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보이신다.

 

그게

암소의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이다.

온 우주를

지배하시고

운행을 관리하시는 그 분이

세상에 가능하면

보이지 않으시려하시지만

어쩔 수 없는

놀라운 일에

당신의 모습을

우차 안의 궤 속에서

흔적을 보이시긴 하지만

그 중에서

그 암소까지

꼿꼿이 하시는

당신의 위용을

슬그머니 보이시는 것이시다.

 

 약간

속이 풀린다.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것의 보임을 기뻐하더니 

 그래

기뻐 하겠지.

하나님의 궤가 보이니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기뻐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궤의 흔적을 기뻐한다.

'그것의 보임을 기뻐한다.'라고 분명히 나온다.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소를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리고는

하나님이 가르친 대로

하나도 빠드림없이

제사 행위를 한다.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를 드리니라
 
  이제

목회자까지 와서

품격 다른 제사를

한번 더 드렸으니

얼마나

할 것 다했을 것 같은가?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칠십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NIV에는 '칠십인'이라 나온다.

몇 명이든

그게 무슨 문제인가?

 

 문제는

이렇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에게

죽음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의중이 문제지..

 

 계속 보지만

주님은

주님의 뜻을 보이신다.

 

 이스라엘 패전

 블레셋 죽음

 독종

 흔들리지 않는 암소.

 거기에

 또 한번

 벧세메스 인들의 죽음...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주님이 화나셔서 징벌하시는가?

모아 놓으셨다가 한꺼번에 폭팔시키시는가?

 그것은 주님의 원리가 아니다.

주님의 원리를 어긋나게 하는

경고하고 싶으신 잘못들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분노하시는 것도

이 70인의 죽음도

 '궤'를 우상화함과

주님의 뜻을 앞서는 행위 - 닿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들여다 본 죄 -를

철저히 경고하시는 것이시다.

 

 

 

 

  
 
제 7 장 ( Chapter 7, 1 Samuel )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제야

주님은 가만히 계신다.

 

 20년간..

 

 그러나,

역시 무엇인가 우리의 감각으로는 걸리는 것이 있다.

약속하신 레위인의 인도가 아니고

기럇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이신가?

제단도 아니시고

그냥 집 안이시던가?

 아비나답과 엘리아살이 무슨 특별한 선택의 기미를 보였던가?

 

'거룩히 구별하여'..라는데 그 답이 있다.

거룩히 구별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20년을

변변치 않는 그 집에 계시는 것은

무슨 이유신가?

 어떠하신 의도로 생각하여야 하는가?

 

주님에 대한

마음 가짐으로 생각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따르려는

마음자세.

순종이다.

주님을 앞서지 않고

주님이 가만히 계시면

1년이고 20년이고

가만히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자세.

 

 틀림없이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놓고도

바깥의 사람들,

레위 제사장

지도자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고

대책회의도 하고

프로그램도 짜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시들해졌을 것이다.

 그 복잡한 변화에도

아비나답은

그냥 가만히 ,조용히 .. 기다렸을 것이다.

 

 주님이

오늘

나에게 바라시는 기본이 이것이신 것 같다.

 

 '암소'라도

사람보다 더 정중히 하고 충성되이 움직이셔

당신의 뜻을 보이시는 그 분께서

비록 그 모습이

작은 '궤' 안의

우마차 위에 초라히 있으시고

마치 잊으신 것 같아 보여도

그냥

주님 앞에

변화 없이

그 분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 분이 인도하시고

그 분이 나타내심을 보이실 것을 믿고

가만히

가만히

기다리는 인내와 믿음의 연단,

주님이 반드시 알아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내려놓음'의 원리를

믿고

순종하고

기다리기를 말이다.

 

 

 

 

적용

 

1.  세상이 너무 영특해졌다.

 영들이 특별하게 나선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흔들려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낮추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말자.

 

2.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앞서지 않는 다.

 

3. 신성한 듯한

 이단이나 이방종교도 그럼직은 하다.

하나

그것으로 그들은 끝이다.

 

4. 시험을 하지 말자.

 

5. 내가 하는 믿음의 행위가 종교 행위의 모습은 아닌가 경계한다.

 

6. 성경의 말씀의 기본인 '사랑'으로 환자와 내 이웃을 대한다.

 

7. 아버지 학교 . 무리가 되어도 간다.

 

8.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앞을 나서지 않도록  도우소서.

그냥

기다리게 하소서.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한

지루함에도

인내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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