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모든 궁극은 구원이다[눅17:11-19] 본문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세상엔 아픈 사람도 많고 힘든 사람도 많다.
공익광고 방송에 우리 나라 사람 1/4가 심리적 질병을 앓는다던데
그게 맞는 지 모르겠지만 그 만큼 영적 , 심적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멀리서서' 라는 표현을 보아서
그들은 자신의 나병이 다가갈 수 없는 병임을 잘알고는 있지만
멀리라도 '예수님의 기적'을 믿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던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만났다.
이 세상엔
난
예수님을 이유로 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흥미가 없다.
그전에도 , 지금도..
그래서 예수님이 날 찾아 오셨고
난 멀리에서서 그 분을 흠모하다가
이제는 조금 가까운 듯한 상태로 되어 있다 .. ..
생각했지만..
모르겠다.
솔직히..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들은 그들이 그들의 현재 상태를 벗어날 유일한 길이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고있다.
아니.. 오직 예수님 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절감하고 있던 차다.
그 시대에
나병을
어찌 ...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절절히 외쳤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슴이 아프다 .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솔직히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이렇게 외친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돌아보면 그렇다.
예수님 밖에 갈 곳이 없고 기대할 곳이 없기에
기어 들어가는 소리라도 '외치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가면서도 변화없는 듯한
내 모습, 나에게 실망하기를 얼마였던가?
그러나, 내게 역사하신 주님은
일상에서 살면서 어느새 많은 변화를 가져왔음은
이 곳에서의 고백으로 너무나 많이 깨달아 왔다.
마치... 가다가 깨끗함을 얻은 이들처럼
살면서 인내하다가
어느새 난.. 복강경 수술의 앞선 방법인 단일 절개 복강경을 하고
그 것의 시술례가 보기 드물게 많아졌다.
사진을 찍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찬양을 인도하고
시 쓰고 ...........
안양 에서
실망과 절망과 다시 일어섬과
포기와 소망 사이의 수없이 많은 여정 가운데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 일이다.
그러면서 내 속에 도저히 풀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영적 문둥병들이 조금씩 나아감을
어느샌가 느끼기 시작했다.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드디어는 '다른 계기'를 만나
난... 나았다기 보다 나아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정말 난 감사하는 게 있다.
그런 문둥병이 나아지는 것도 기쁘고 좋고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점차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
내 방법은 기도의 시간을 늘리고
게으리기 짝이 없는
아침이 늦은 내가
'하나님께 영광올리기 위하여 '
의지를 발휘하여 아침에 일어나 묵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확신을 가지고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내 삶을 이어오는 핵심은
' 어떤 일, 어떤 과정에도
내 삶에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한 허락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 궁극은
'구원'
믿음으로 인한 나의 온전한 영육혼의 구원이
주님이 나를 이렇게 인도하시는 데 있다"는 확신이다.
그렇다 .
이 열명의 문둥병 환자 대부분은
'예수님' 만난 '약발^^;;'로 병이 나았고
그들은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이땅이 모두였다.
절망의 속임.
기쁨의 썩어갈 본질.
하지만 영생을 염두에 두고
'구원'을 위한
모든 도구임을 깨달은
단 한명의 문둥병 환자는
나아짐 조차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도구 일뿐이고
이 땅의 아픔과 회복 조차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비 된 것임을 아는 자였다.
나도 그러기 위해 몸부림친다.
성령의 은혜..
치료의 생물학적 기쁨..
둘 사이의 구분이 가끔은 혼란 스럽긴 하지만...
주님.
아시지요
기도하오니 도우소서.
감사합니다.
내 모든 갈등 조차
주님 홀로 영광을 위한 배려인줄 압니다.
제가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더 무릅 꿇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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