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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다시 들어보라(막7:14~ 23)

주하인 2007. 1. 23. 11:04

2007-01-23 마가복음 (Mark) 7:14~7:23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 오직 십자가 만이  영혼의 질곡을 열수 있는 힘입니다... )

 

 

 어제 바리새인 들의 질타와 송사에 주님의 포용하심으로 안아주시는 장면이 나왔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우리..

세속의 가치로 도저히 평가조차 할 수 없는 자격으로 우리를 깨끗이 해주셨고

그 깨끗해짐을 우리에게 인식 시켜 주셨다.

 우리는 주님의 보고 계심 안에서 식물을 둘러 앉아 먹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나서 가려는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신다.   

왜 가려던 자를 다시 부르셨을까?

다시 부르신데는 어떤 느낌이 있는가?

그 분은 우리를 아기처럼 귀히 보시는 것이시다.

우리의 완전히 성화되지 못한 내적 상황에서 나오는 덜 다듬어진 인격을 안타까이 보시는 것이시다.

다짐하심으로 한번 더 성숙시킬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시다.

 이런 느낌에 대한 부분은 너희는 라는 말씀의 어조를 보면 느껴지는 것이다.

아주 친밀한 어조.

강조하시려는 의도...

 특별히 이 아침에 주님은 다음에 당부하실 말씀에  듣고 깨달으라 고 하신다.

듣고 보고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 다짐하고 맹세하라고 하시지 않고 그냥 '들으라고 ' 하신다.

그리고 '깨달은' 다음에 자신을 치고 금식을 하고 남에게 좋은 영향 끼치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기를 강조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또다른 '초자아'를 양산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말씀하신다.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 의도만 가지고도 기뻐하시고 당신이 뜻하시는 대로 자연스레이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시다.

 

내가 할 일은

 다시 돌이켜

말씀을 듣고

깨달은 다음에 내 속에 일어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욕구를 따르려는 약간의 결단과 의지만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주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피조물이 성화되어 가는 길이 될 것이다.

 

귀 기울여 들을 말씀은 아래와 같다.

오늘의 각론적 말씀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 제 속이 이리 시커멓었습니다.  )

 

 

 

늘 주님의 말씀과 보혈과 성령의 도움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어찌 온전해질 수 있을까?

 속이 이렇게 시커먼데..

특별히 얼마 동안의 은혜의 기간을 거치고 나서 주님이 허락하신 연단의 시간이 오면 여지 없이 변함없는 시커먼스가 되어 버리고 만다.

 주님의 은혜로 나름대로 편안해지고 사람들에게 여유롭게 잘하려 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또 단정적이고 교만하고 짜증 잘내는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자신을 보며 좌절하기도 한다.

어찌 이렇게...

 

 오늘 그걸 주님은 아시고 어제의 위로에 더불어 주님의 위안 속에서 그냥 안주하고 그러려니 하고 살 위험성이 다분한 나를 붙들어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다.

 

' 다시 들어라. 

듣고 깨달아라.

속이 시커먼 것은 알고 있는가?

인식하고 인정하라.

그리고 내가 너를 수용한 것 처럼 수용하라.

또한 이제 부터 말할 내용에 대하여 네게 해당하는 것 있으면 반성하라.( 개인적 당부의 느낌...)

 음란하지 마라.

차를 두고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버스와 길거리에서 보며 예전 보다 음란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기회가 많아졌다.

솔직히..

주님 앞에 내려놓자.

특별히 음란, 간음, 음탕이라는 세 단어로 경고를 하시는 게 심상치 않으시다.

난 이래서 살아계신 개인적 하나님을 느낀다.

감사하다.

더 나빠지지 않을 예감이 드는 부분이다. ㅎㅎ

 도적질, 살인, 속임.. 나에겐 해당되지 않을 부분 같지만 남의 것 탐내는 마음은 혹 갖지 않았는가? 

형제들에 대한 용서는?   용서 못함이 살인이라고 하셨는데...

회개하고 내려놓을 부분이다.

 악독..

악독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성질이 화를 잘 내는 편이라서 특별히 오늘은 무엇이든 참을 노력을 하겠다.

' 흘기는 눈' ' 교만'

환자들.. 예상치 못할 만큼 당황되는 분도 종종 있다.

실은 그 보다 내 교만하고 잘난 탓에 그들을 무시하는 눈을 뜰때가 더 많다.

아침에 묵상하고 나와서 이제 글 쓸 동안 몇 분에게 덜 흘겼다. ㅎㅎ

묵상의 힘 !

 

 또 하나 최근에 스스로 걸리는 부분으로 인식되는 것.

단정적인 말투..

이것에 사람들이 그리 상처 입을줄 모르고 지났으나 이게 나의 많은 오해의 부분이었음을 최근에야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나 오랜 말투의 습관은 인식보다 먼저 튀어나가는게 대부분이었다.

오늘 주님이 '훼방'과 '교만'과 '광패'라는 말로 나를 스스로 지켜보도록 만드신다.

 

말투를 더 부드럽게..

아니 고개 숙이고 겸손하고 조용히 말하는 하루가 되겠다.

 

주님 도우소서.

 

 

 

기도

 

주님

올바른 정체성을 새로 부여하시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시더니

오늘은 더욱 개인적인 말씀으로 지도하십니다.

그리되길 저도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니 더욱 그렇습니다.

도우소서.

습관의 강력한 드라이브를 차단시켜줄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부드러운 눈 뜨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좀더 다정한 속 심으로 다가오는 자들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교만치 않고 광패치 않은 입으로 그들을 어루 만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아름다운 딸들을 선하게 쳐다볼 수 있는 강함을 허락하소서.

잘못됨을 즉각 회개하고 십자가에 내려 놓을 수 있는 지혜를 원합니다.

용기도 원합니다.

남의 것을 조금이라도 탐내지 않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억울하더라도 그냥 따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원리시면 그냥 따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원함이 더 뚜렷해지기를 원합니다.

그 원함이 주님 안에서 원함이 되기를 원합니다.

원함을 막는 송사들이 막아지길 원합니다.

주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당당하고 기쁘길 원합니다.

그 기쁨으로 내 이웃에 선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이 많고 기쁨의 원천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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