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멋진 출현 (이사야9:1-9:7) 본문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살던 자 들이다.
그 증거가 지금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포악한 마음, 음란한 마음, 틈만 나면 올라오는 욕심, 질투심,...이다.
마치 낙엽이 썩어 가라 앉은 샘물 같이..
어두움에 적응되어 살던 때는 그 어두움이 불편한 줄모른다.
육신의 죄악 시스템이 최대한 가동되어 어둠 속에서도 잘 본다.
먹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열추적감시 장치처럼 작동된다.
그러던 중 흑암의 굴 속에 '예수님'이란 큰 빛이 내리 쬐었다.
하늘로 부터 '쫘~악'
그 밑에 살던 생쥐같던 우리는 눈을 못뜨게 되어있다.
순간적으로 혼란스럽다.
어둠에 적절하게 적응되어 있던 우리 경보체계에 일대 혼란이 왔다.
눈이 부셔서 견딜수가 없다.
온몸에 습기가 말라버리니 숨을 쉴수가 없을 듯이 괴롭다.
양심이란 것이 자꾸 찌르니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일부는 어둠 속으로 도망간다.
그러나 그 빛의 황홀함과 웬지모를 안온감에 끌린 몇몇은 그 아픔을 참고 빛 주위로 몰려든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그는 '경이로운 상담자'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원이 존재하시는 아버지 시며, 평강의 왕이라 불리실 것이다. And he wi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or, Mighty God, Everlasting Father, Prince of Peace. )
그 빛은 '아기'다.
말 구유에 태어 나신 분이시다.
예수시다.
그 빛에 오면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분은 상담자이시다.
그 분은 아버지 같이 훈훈한 분이시고 기대고 싶은 든든한 분이시며
우리 곁에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평강이 밀려온다.
늘 잔잔한 기쁨이 되신다.
능력의 근원이시다.
문제는
가끔씩, 혹은 어떤 분에게는 전혀 상담가 처럼 다 들어 주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데 있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가 아녔던 기독교인 들에게는 아버지로서 느끼기에 힘들다는데 있다.
아버지가 든든한 방패로 안느껴지는데.. 있다.
평화를 느껴 보지도 못하고 컸기에 평강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는데. .있다.
그 아버지가 나의 전 인생을 권능으로 책임져 주신다는 개념이 머리에만 있지 느끼지 못하는데 있다.
그래서 믿기는 믿되 믿지 못하는 희한한 경우가 많다.
이 빛으로 오신 Incarnation(성육신)의 엄청난 대사가 동화속의 얘기일 뿐 직접 느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추측이 된다.
어둠 속에 내리 쬐는 빛의 형상은 '손오공', '손오반' 같은 일본 '만화 영화'에서 강력하게 표현되어서 짐작이 될 뿐, 예수님이 큰 빛이라는 사실은 깊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사람이 사람 다워 지기 위해서..
절대로 '감정'이 없어서는 안된다.
감정없이 이성만 높아지는 것은 차거운 '로보트'와 같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경우 '느낌'의 훈련을 너무 시킨 나머지 느낌이 없으면 믿어지지 않는 , 즉 감정이 이성을 앞서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유치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 싶다.
예수님 믿는 믿음에 '이성'과 '감성'의 선 후 관계가 참 구분이 어렵다.
예수님을 느끼고 나서야 믿으려고 하는 현상이 지나치면 은사 위주나 '신비주의자'로 빠지기 쉽고
반대의 경우 말씀과 봉사 쪽에 치우쳐서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믿음은 두가지가 다 겸비 되어야 올바른 믿음이 되는 데...
그 선후는 이런 것 같다.
첫 사랑 때는 그 분의 기쁨을 알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성령체험' 해주시게 한다.
출애굽의 기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믿음의 연륜이 커가면서..
그분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연단을 허락하신다.
뜨거운 기쁨은 서서히 사라진다.
서서히 첫사랑의 감정적 기쁨이 잊혀져 간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머리로 먼저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의지적으로 붙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고 봉사하고...
주님은 이걸 받으셔서 ..
우리 영혼에 알 수 없는 기쁨과 든든함을 주신다.
오늘 말씀하시는 ' Wonderful counselor'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서 해결해주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그분께 나가는 의지를 발휘하면
'상담'하시는 그 분께서 살그머니 오셔서 우리의 '감정'까지 변하게 해주신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고통이 어느순간 '편안함'으로 바뀌고
거짓이 진실로 바뀌고
불안이 차분함으로
그래서 우리의 감정이 잔잔해지며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영혼이 늘 .. 평강으로 차게 된다.
우리가 헤쳐나갈 수 없는 현실의 문제도 믿고 나가면
권능의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해결해 주신다.
거기에 '주님이 과연 해결해 주실까? '라는 의혹의 두려운 감정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분은 우리가 당연히 주실 것을 의지적으로 '믿고' 나아갈 때,
위안과 해결을 주신다는 것이다.
감동 스럽게도 수천년도 더 전에,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약속의 말씀을 허락하셨다.
주님은 "어둠을 뚫고"
'wonderful counselor'로
'Mighty God'으로
'Prince of Peace'으로
오신다고..
그래서...
나의 일상에
빠짐없이
부족함없이
모든 부분을
하나하나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믿기만 하면 된다.
기도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기 만 하면 된다.
그리하면
감사까지도
자연스레이
나온다.
우리의 영혼까지
잠잠하고
차분하고
떨림이 있는
기쁨으로
늘
가득차게 된다.
할렐루야
기도
주님.
수천년 전에
자신의 의와 전혀 상관없는 왕을 위하여
곧 있을
주님의 성육신에 대하여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오늘
자칫 혼란에 빠지고
죄에 빠져 허덕일
불쌍하고 가련한
저를 위함임을
전
압니다.
순간순간
우리 주님 찾기만 하면
잠시의 영혼의 버거움을 누르고
우리 주님 찾기만 하면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상담해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승리의 느낌을 주시는
그 위로자 주님을 통하여 압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도대체 제가 뉘관대
도대체 제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넘치는
행운을 주셨나이까?
이처럼 과분한
은혜를 주셨나이까?
오늘 ..
우리 주님 오시기 며칠 전
우리 주님
목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짐
1. 기도한다.
2. 예수님 때문에 한번 의지적으로 겸손하겠다. (비밀 .ㅎㅎ)
예수, 모든 나라를 위한 소중한 열망! 갈망하는 모든 사람의 기쁨!
- 찰스 웨슬리
------------------------------------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훈(잠14:1-21) (0) | 2005.12.26 |
---|---|
들뜬 두여인과 고백(눅1:39-56) (0) | 2005.12.24 |
진실(사7:1-17) (0) | 2005.12.21 |
오늘 해야할 일(잠언11:12-31) (0) | 2005.12.17 |
05.12.16 잠언묵상과 황우석 교수님 (0) | 200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