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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만한 먹을 것 (레 11:1-23 )

주하인 2010. 8. 21. 10:36

제 11 장 ( Chapter 11, Leviticus )

 

 

주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 안에서

저 하늘에 펄럭이는

저 깃발같이

내 의지와 결심도

주님 영광 안에서

춤을 추듯

펼쳐질 수 있길 소원합니다

 

주여

죽도록 절 깨우치시고

끝까지 절 인도하시사

죽어도 주님 안에서

살아도 주님 안에서

그리 살게 하소서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저 같은 자들에게도

주여 이르소서.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중 너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 먹을  생물은 이러하다' 

 

먹을 생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먹을 것.

먹는 것은 입으로 먹는 것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먹을  것을 말하기도 한다.

아무 것이나 섭취하는 것은 소화 불량을 유발할 수도 있다 .

육신의 소화불량이면 배가 아파 고생하거나, 약을 먹으면 나을 수도 있지만

영적인 소화불량은 어떠한가?

 그 소화불량은 '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육신적 과욕이 지나치면 영적인 소화불량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행동'을 제재함으로 영적인 평안을 누리려고들하고 있어왔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면벽', ' 고행자', '티벳의 오체투지'... 이 아니던가?

행동을 절제하고 하는 것은 나름으로 일시적인 영적 평안을 유지할 수 있지만

원죄적 존재인 인간의 영적 깨끗함을 유지할 수 없다.

왜 이던가?

인간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규범과 규제는 원죄적 특질에 맞추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단, 규제로 옳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주님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

그것이다.

오늘 그 말씀을 하신다.

주님은 옳은 규범을 주신다.

그 규범을 옳게 지키면 된다.

물론, 온전히 지키는 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구약시대의 바리새파 들과 수 많은 성경의 예로 인하여 불가능함을 증명했지만..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로 인하여 그 율법의 족쇄에서 풀렸지만

율법은 여전히 우리가 어린 영혼의 상태에서는

규범이 필요하다.

그 규범 안에서 갈등하고 영적 전쟁을 걸어오는 사단에 대하여

예수님께 이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기 위한 기준점이 된다.

 가정교육이 부족한 사람들.

그들은 이 규범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방종하는 사람들이 자유하는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규범이 있고 없고다.

규범 안에서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다면

그것이야 말로 주님 안에서 '자유'다.

 오늘 묵상 구절은 '먹을 것'에 대한 규범이시다.

이것 이것 먹어도 된다...시다.

그것 따르면 배부르고 자유로운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쁨이고 기대됨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약간의 걸리적 거림이다.

무엇이 나에게 보상이던가?

'주님 안에서의 참된 기쁨'이다.

 

 어제 금요일 하기오스 찬양이었다.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 에 대하여 묵상한 것을 계속 연상하며 찬양에 임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힘뺀 찬양.

운율과 감성에 '흔들리는 가슴'을 허락하시고 '뒷다리에 힘이 들어간' 정말로

은혜가 나에게 넘치며 세시간 내내 전혀 목소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레위기.

너무 힘이 들다 생각하여 거의 읽지도 않았던 묵상 구절에서

오히려 원초적이고 원리적인 주님의 맑음을

은혜 롭게 느껴가고 있다.

비록, 내 영적인 성장이 적은 탓으로 뚜렷은 아니지만 ^^*..

 지금까지의 찬양과는 유다른 은혜와 깨달음이 넘쳤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으로 흔들리는 내 가슴에

뒷다리에 힘이 가해질 정도의 터질 듯한 감동이

내내 자리 잡은 '말씀 그대로의 ' 성령 집회였다.

 

 SPSS라는게 있다.

수학의 분야에 '통계'가 있다.

이 분야는 정말 싫어하는 것이라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아예 접어 놓고 읽어보지도 않고

대학 수능고사에 나올 때도

본고사에 응시할 때도 이 부분이 나오면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고

제켜 놓았던 부분이다.

그러나, 통계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던가?

투표하고 '출구 조사'...

거기에 논문을 쓰면 의학논문은 통계를 적용해야 하므로

통계에 자신이 없던 나는 늘 피하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논문을 써도 통계가 필요없는 쪽으로..ㅜ.ㅜ;;

그러다가 작년 부터 서서히 마음에 논문을 쓰고자하는 부담이 생겨서

올초에는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복강경'수술 중에서도 '단일 절개'를 통하여

상처 최소한으로 내고 하는 앞서가는 시술에 대한 논문이다.

시술의 case가 쌓여가며 

내 경험을 그냥 두기에 아까워 2차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논문을 쓰기로 했던 바,

늘 논문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통계'처리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틀을 완성해 놓고는 한달 두달 자꾸만 연기 시켜 오던 게 지금까지 였었다.

 그런 내 모습이 불쌍하셨던가

주님은 아내에게 공부를 허락하시고

그 과정 중에 '통계학'에 대한 기초적 과목이 삽입되게 하시더니

드디어는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통계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

물론 전문적 인 것은 아니다.

다른 논문에서 나오는 내용을 이해하고 간단히 처리까지 할 수 있을 수준만...

그것도 많은 고뇌를 필요로 하기는 했다 ^^;;

어쨋든 며칠 전 드디어 내 논문의 자료를 대충 '평균'과 '분산'값 만 내고

비교하여 정리하려던 것을 통계처리까지 하게 되었다.

논문에 보면 SPSS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던 것이

아내의 책에는 버젓이 나와서 얼마나 기뻣던지..

SPSS 는 이전에 수작업으로 계산하던 것을

자료 입력 만 하면 자연스럽게 통계 계산하여 주는 것이다.

 그것을 이제는 공부를 통하여 이해하고 '가설 검정'까지 적용하여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였다.

나름대로는 내 논문의 정당성을 확실히 통계가 증명을 해줄지 알았는데 아닌 것이다.

 당황했다.

거의 마음 먹고 2년 여, 실행하기 시작하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올 8월까지 마무리 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 거의 눈앞에 와 있었는데

결과가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나온 것이다.

 이때 슬그머니 유혹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수치를 조작해볼까?'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데이터들이었다 .

전적으로 내 손으로 이루어진 수술 시간들을 비교한 것이니

하나하나 챠트 대조작업 하기까지는 밝히기 불가능한 것이다.

아니다.

그래도 그것은 '죄'임을 안다.

그래서 마음을 접었다.

 다음으로 통계를 빼버리고 그럴 듯하게 말로 조합을 해 내면 어떨까?

논문의 가치는 물론 떨어진다.

더구나 지난 한달 가까이 통계 공부한 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통계를 이해하고 나니까 버려?

말도 안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이유를 들이대고 논문이 이렇듯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못한 것을

변명해댈까?

그러나 그렇게 하면 논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데..

진퇴 양난이다.

어떻게 되겠지...하며 잠시 미루어 두었던 오늘 아침이다.

 아침에 역시 일찍 일어나 진다.

집이 직장에서 멀어지니 이게 좋다.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이 회복이 되었다.

그렇게나 사모하던 아침의 주님 묵상 기도가 연 일주일이나 이어진다.

그리고는 묵상을 녹음해서 운전해 가며 들으려 MP3를 켰다.

묵상구절을 읽다가 '먹는 일'의 정확성에 대하여 나온다.

다시 묵상을 한다.

무슨 말씀을 하실까 묵상 기도를 하였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는 말씀 큐티를 시작하고 나서 이 '불현듯'이란 단어가 너무 좋다.     -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얼른 기도를 끊고는 컴퓨터에 앉았다.

시간이 충분하다.

데이터를 다시 입력하여 다른 데이터를 SPSS로 't검정 ' 하였다.

그 데이터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번뜩 생각나는 바가 있어 기존의 통계를 돌아 보았다.

데이터 수가 한개가 빈다.

아.. 빠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정확히 확인하며 다시돌렸다.

그러니.. 한개가 의미가 있게 나온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아침에 '내 거짓으로 먹을 논문에 대한 명예 욕심 먹거리'에 대하여

나름으로 정직을 택하니

정확한 '먹을 만한 것'을 주신 것이다.

그 분은 나의 정확한 결심을 기뻐한 것이다.

주님을 의식하여 거짓을 피하고

먹을 만한 것만 먹을 결심을 하니 정확한 먹거리 통계를 배려해주신 것이다.

감사하다.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주님의 말씀으로 늘 깨어 있고

말씀의 뜻에 맞는 것만 선택하는 것을

주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 것인가 깨달았다.

어제의 경험도 마찬가지고

오늘 아침의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그 어려운 레위기,

그 딱딱한 구약의 제사방식에서

난 오히려 '맑고 강한 은혜'의 원류를 발견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더 은혜를 깊이 허락하실 것인가..

그 "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인하여 " 모든 것의 형통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원리를 체험하고 있다.

 

 

적용

1. 먹을 만한 것 만 먹자.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지 말자.

 무리한 욕심은 주님이 싫어 하신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신다.

 먹을 만한 것은 '성령의 열매'에 합당한 것이다.

 때로는 유혹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영적 평강을 흔들 것은 필요없다.

 

2.  논문.

오늘 부터 이틀간 당직이다.

 마무리 할 것이다.

논문은 주님이 허락하신 내 수술 패러다임의 변화를 표현해 내는 것이다.

그 분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는 증거물이다.

연초의 결심의 실현화이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4. 레위기를 묵상하며

 원초적이고 깨끗한 믿음을 회복을 기대하자.

 

5. 인내하고 참고 말을 조심하겠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그것이다.

 

 

 

 

기도
  
주님

귀하신 하나님.

생각지도 못한 레위기를 통한 깨달음과

그로 인한 은혜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모든 것이 주님의 살아계심 탓이 맞습니다.

주님.

오늘은 특히 먹을 만한 것만 먹으라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그럴 듯 해도 무리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금년 들어 제 약한 부분을 거부하고

말씀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성공한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님.

특별히 의지가 필요로 되는 부분에서

전 늘 약하기에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부분들에서 성공을 보이기에

더욱더 감사합니다.

 레위기 .

그런 저에게 때가 되어 필요하시기에

정확히도 인도하심이 아닌가 합니다.

정확하고 정결한 의지를 동반한 '은혜'와 '힘있는 하나님의 실체화'.

감사합니다.

특별히 어제 찬양 중에 저 개인에게 임하셨던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더욱 은혜로와 감사드립니다.

제 자식들 인도하시고

제 아내 끝까지 붙드시고

제 직장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제 아는 모든 사람들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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