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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나의 하나님 거룩할 나 (레11:25-4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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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나의 하나님 거룩할 나 (레11:25-47)

주하인 2010. 8. 22. 08:50

제 11 장 ( Chapter 11, Leviticus )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 나의 하나님'

너무도 감사하고 익숙한 개념이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점점 더 가까이 느껴진다.

 

'우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

내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내 가족들의 하나님.

내가 아는 지인들의 하나님.

나아가서는 우리 모든 믿는 자의 '나의 하나님'이 되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어야 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전도도 그러한 개념이고

우리의 영적 성장도 그러한 이유다.

내 아들들.

내 아내의 하나님.

오늘 중보해야할 개념이다.

 

' 나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의지적으로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 분께서 내 일생에 깊이 들어오시길 강하게 원하신다.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이 우리의 삶의 형태가 되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못한게 이것이다.

우리는 혼자 살고 싶어한다 .

필요시만 주님께 달라고 한다.

주님은 돈 많고 간섭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이길 원한다.

그게 우리다.

하지만, 올바른 가정이라면 가족 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올바른 가정의 사랑 많으신 가장이 되길 원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분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나는 '애굽' 백성이었던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애굽의 더러운 때,

방탕했던 시절의 둘 째 아들의 때를 씻어 버려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다.

그것은 나를 위하여 눈물어린 사랑의 눈으로

날 구해 내시고 날 사랑하시고 날 보호하시어

날 훌륭한 자로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감격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그게 마땅히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다.
    
 
47.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취하여야 할 태도를 정의 하라면 '거룩'이다.

거룩하기 위해서는 거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거룩은 정결하고 잘 정제된 모습을 이야기 한다.

거룩의 한계는 '내적인 성화'까지를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내적인 거룩까지 되기 위해서는 외적인 거룩 부터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뚜렷한 행동양식을 주신다.

'이렇게 이렇게 하라.

 그것을 연습하는 것이 부정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

감사하고 쉽다.

너무 높은 이상을 요구하면 낮은 지성의 나 같은 자들은

머리가 터질 것이고

몸이 커진 자들에게 너무 낮은 수위의 도덕을 요구하면

그들은 반항을 할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은 '정확한 틀'을 가지고 거룩을 훈련시키신다.

익힌 자들은 이제 그 속에 숨어 있는 '주님의 뜻',

거룩을 향한 주님의 뜻에 대하여 묵상하고 깨닫고 가야 한다.

그때 주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베풀어 가신다.

 가족 간에 지키고 올려드려야 할 '예의'를 지키고

나아가 마음까지 올려 드리면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실까?

더더구나 그 분은 나를 위하여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나를 구원하신 분이 아니시던가?

그 죄악, 그 더러운 땟물 속에

예수님을 육신으로 보내시어

나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이다.

 

 

 오늘은 '주일'이다.

당직이다.

기존에 통계 처리 했던 것들이 약간의 착오로 인해서

다른 틀에다 통계를 돌렸던 모양.

전부다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통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 상태.

당직방에 들어선 점심 시간 이후 한번도 TV를 키지 않고

환우를 보다가 논문 정리하다가 또......하다보니 새벽 2시 반이다.

너무 피곤하여 자다가 새벽 6시 넘어 분만을 받고 나니 피곤하다.

그래도 일찌감치 눈이 떠진 상태라 묵상을 하기로 결심했다.

레위기.

어렵다.

눈이 감기려 한다.

옆으로 눕기만 하면 천국인데... 하는 유혹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오늘이 주일이 아니던가?

잠시 마음을 다잡고 묵상을 이어갔다.

계속 '부정'한 것에 대한 도덕적, 율법적 말씀이 되풀이 된다.

뜻은 알겠다.

 '나'

늘 체제 부정하고 독립적이고 삐닥하여

정해진 틀을 적응하기 너무 어려워 했기에

신앙도 내나름대로 비교적 빠른 이해 가운데 잡아 놓은 틀 속에서

지금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일부분에서는 비교적 높은 이해를 가지고 정결히 잘 유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은 되지만

또 다른 일 부분에서는 규격이 안잡혀 있다.

이해하지 못하고 흐트러지는 부분이 있음을 스스로 안다.

모래성 처럼 가끔은 '확~'하고 무너지려하는 이 연약한 '믿음'.

그러기에 '레위기'는 나의 부족한 그 신앙의 기본에

하나님께서 허락한 '틀'을 다짐'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딱딱하기는 하지만 한편 '은혜'로 내 영혼을 채우신다.

깊은 곳에 알게 모르게 기쁨이 있다.

 그렇다.

부정한 것은 부정한 것이다.

그것을 오래오래, 하나하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그 뜻이 감미롭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나를 애굽에서 불러내셨다'라는 말씀이

가슴을 멍~하니 친다.

그렇다 .

또 잊고 지냈었다.

내 신앙.

달콤한 평강 만 추구하다가

진짜로 주님이 날 부르신 이유,

날 거룩하게 하셔서

그런 나를 보시며 기뻐하시는

동행의 하나님이시길 원하시는

동행의 아버지가 되길 원하시는

그 주님의 마음을 잊었었다.

 '거룩'

특별히 오늘은 주일이다.

거룩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주님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다른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다.

주님이 거룩하시니 거룩해야 한다.

' 너희들의 하나님이라 하신다'

내 자식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는 하지만

늘 내 가슴 속에는 '될까... ' 아니 그보다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들이 강하다.

이 믿음없음을 무엇으로 깰까?

그러니 내 신앙이 힘이 없는 것 맞는 것같다.

누구를 믿는 다는 것은 '손해'본다는 개념을 아주아주 깊게 간직하고 있다.

자수성가하신 고향의 아버지께서 심어주신 탓도 있다. ㅜ.ㅜ;;

 '너희들' 속에

내 자식들과 아내를 집어 넣어

주님 앞에 데리고 나가는 묵상을 잠시 하였다.

그들도 개별적으로 주님이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로서

오늘 만나시길 기대가 된다.

감사하다.

 나.

내 기도가 들려졌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믿음 마져 그리 내려 놓기로 했다.

마음이 편하다.

 

 당직방에 있다보면

환우가 없을 때는 참 고요하고 편안하다.

아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고

'일'한다는 개념도 있어 아내와 자식들에게

고생한다는 존경심을 받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위안도 있고 ㅜ.ㅜ;;

아무때나 누울 수있는 침대와 커다란 TV도 있고

냉장고에 먹을 것 그득하게 채워져 있다.

거기에다 당직비도 그리 부족하지 않게 나오니...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와 위험한 산모라는 risk 만 없다면

일상에서 피해나와 나 만의 시간을 가지기에 더 할 수 없이 좋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내내 TV만 보다 갈 때도 있고

어떤 땐 신나게 먹어 통통해진 느낌으로 당직을 마치고 갈 때도 있다.

기도는 뒷전이 되고 누워서 책만 읽다 갈 때도 있다.

가끔은 .......

이런 나태에 빠지면 영혼이 참 메마른 느낌이 된다.

당직방을 나설 때 '졌다'라는 패배감과 죄송함이 들기도 한다.

 의도된 바는 아니지만

어떤 때는 오늘 처럼 어제부터 종일 단 한번도 TV를 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논문 쓰느라 바빳지만

방에 도착하자 마자 의도적으로 기도하였기에

나도 모르게 이루어진 경건함이 아닌가 싶다.

 

오늘 묵상에서 '거룩'이 '거룩한 주일 아침'에 눈에 들어 온다.

종일 TV를 멀리 할 것이다.

유혹이 있다.

한번 만.. 틀면 잡힌다.

음식을 시간에 맞추어 먹으리라.

예배는 2시에 드리리라.

아들들의 하나님께

그들 각자의 하나님이 되어 만나주시길 기도할 것이다.

 정결하고  거룩하지 못했던 나를

애굽에서 꺼내신 이유를 묵상하리라.

그런 나를 부르셔서 내 하나님이 되신

그 감사하신 하나님을 감사할 것이다.

나에게 거룩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길 기도하리라.

 

 

 

주님.

귀하신 주님

감사하나이다.

내 인생,

내 일상

어느 하나도 주님이 이끄시지 않음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

의지박약.

생각부족

실수투성인 저를

주님 부르셔서

눈을 들어 잠시 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이셨음을 알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레위기를 통하여 은혜를 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어려운 부분에도 주님께서는 또다른 은혜를 베푸시고

제 부족한 부분을 메꾸시는 그 손길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그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거룩히 잡아주소서.

그게 주님이 날 부르신 뜻임을 이해하고

날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감격으로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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