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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다 ( 레 10:1-2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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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이다 ( 레 10:1-20 )

주하인 2010. 8. 20. 11:19

제 10 장 ( Chapter 10, Leviticus )

 

주님

세상을 보되

그 안에 숨겨진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남을 보아도

그 들에게 투영되어 버리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올곳이

주님 말씀과 주님 뜻을

순종하여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자 될 수있길 소원합니다

 

하지만

주여

그 모든 것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잘 아시고 계시지요

 

사랑합니다

주님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다른 불.

성령과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단과 구분이 꼭 쉬울까?

기적이나 은사가 목적이 되면

어떤 것이든 허겁하게 되는 게 인간이 아닌가?
사단은 영물이다.

과연 그들의 유혹에 늘 승리할 자 몇이나 될까?

방법은 '말씀' 앞에 바로 서서

하나님이신 말씀으로 정결해져야 하는 것이외는 방법이 없다.

 

 

  
14.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 흔든 가슴.'

 ' 든 뒷다리'

 

표현이 묘하지만

어딘가 운율을 가지고 표현을 하신다.

응식.

기도에 응답하여 주신 음식이다.

 그 분은 무엇인가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가슴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행실인 든 뒷다리를 허술하게 대하지 않으신다.  


     
 
 
19.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20.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하지만,  제사에 있어서

아론의 아들들의 실수와 부족함을 용서하지 않으시며

아론의 자식들에 대한 아파함 조차 용인하시지 않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과 기도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준엄한 뜻이 담겨 있는 듯 싶다.

더구나 이 레위기는 주님이 원하시는 제사를 지내는

첫 행사이다.

그러니 그 엄격함과 하나님의 엄연한 이글거리는 성령의 임재가 느껴짐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기에 정말 중요한 제사, 즉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남겨야

이 세상이 수천년 내려가는 동안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뜻이 무엇임을

세상에 알리실 수 있기에 더욱 준엄하신 것이다.

 아론이 이에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음에도

내게 이런 일이 임하였으니

만일 속죄 제사 지내고 난 고기를 먹었더라면.........'

그는 아들 잃은 아픔보다는 깨달음을

흔든 가슴에 받아 들이길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옳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세상의 어떤 일,

내 가슴속에 벌어지는 어떤 감정적 충돌 보다는

주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다.

 주님의 뜻이 내 감정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

 주님은 그렇게 비인간적인.. ' 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너무나 인본적인 모든 사람들의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근본 뜻은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순전한 믿음을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그것이 어떠한  혼란 속에 있고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한이 있어도

'주님이 선하심' 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뜻이 그것이시다.

주님의 뜻은 그렇게 하면

'모세가 기뻐하듯' 주님이 기뻐하신다.

주님이 기뻐함은 '감정'마져 '천국의 그것'으로 회복시키실 것임을 말씀하신다.

 아론.

아들은 잃었어도

더 큰 평강과 더불어

우리가 알지못하는 더 크고 놀라운 비밀로 하나님과 개인적 만남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아들 잃고 그보다 더 큰 것을 준다고.. 그게 가능해?'  란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 있다. '

아니 있을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고 인간의 판단으로야

세상에서 자식보다 .. 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원리 안에서

과연 인간의 감정이 어떠한 만큼 클 것인가?

물론 인간의 그 귀중한 자녀에 대한 애정 만큼 클것이야 없겠지만

그러한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로써 더 타락하기 위험한 자식들을

먼저 불러 천국에서 아론의 가족 상봉을 성대히 해주실 지 모르지 않는가?
눈을 땅에 고정시킴은 '사단'의 장난 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뿐이다.

 슬픔, 고난, 괴로움...........모든 감정적 고통은

주님의 은혜,

성령의 충만함이면 습기가 햇빛에 말라 들어가듯이 없어짐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아론이 그랬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사장'의 신분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그에게 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슬픔을 딛고 저런 고백이 가능했을 것이 맞다.

  이제 오늘 묵상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다시 한번 읽는다.

그럴듯한 '신앙의 모습'을 버리라는 것이다.

불은 불이되 '거짓 불'은 위험하다.

'성령 사역'도 '말씀'이 중심이 잡히지 않고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늘 깨어 회개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어떤 '의미'도 의미가 없다.

'거짓 불'이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나.

말씀 묵상한다고 수박 겉핥기 식은 위험하다.

기도하고 깨어 있어 말씀을 받아야 한다.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사랑이시다.

이땅의 삶은 '성화'의 여정이다.

주님이 나에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내 인격의 성화이며

기도는 그 성화를 불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도를 하되

정결하지 못한 기도는 피하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다.

순종을 위하여 기도를 하라.

순종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라.

그렇게 하면 '흔든 가슴'의 그 감성을 유지시켜주실 것이며

든 뒷다리의 그 세상의 노력이 보상 받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아론의 처절한 회개와 깨달음이 본이 되어야 한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적용

1. 기도하는 삶을 산다.

 내 삶이 기도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가련한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나를 괴롭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걸림돌이 될 문제에 대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주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기도하는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주님은 기도를 시키시는 이유가

 만나 주시기 위함이다.

 주님의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얻으시겠는가?

 순종만을 보시고자 하심이 아니겠던가?

 

3. 성경 세장 읽겠다.

 

4. 아론의 회개를 배운다.

 처절한 자기 반성을 배운다.

 

5. 주님의 기뻐하심을 보길 원한다.

 금요 성령 예배다.

 묵상을 하며 찬양을 하면 달라진다.

 더 깊어지고 더 은혜로와진다.

 주님의 말씀 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하리라.

 

 

 6. 주님은 내 가슴을 아시는 분이시다.

 흔들리는

흔들고 있는 '흔든 가슴'을 아시는 분이시다.

내 감정의 흔들림을 잡아주시는 그 분이 난 감사하다.

사랑합니다.

주여.

 

 

 

기도

 

주님

귀하신 분이시여.

주님이 원하시는 정결한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화의 삶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저의 대화임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오늘 하루 기쁨 가운데 거하길 원합니다.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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