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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마져 사랑이셨다( 레12:1-8 )

주하인 2010. 8. 23. 10:39

제 12 장 ( Chapter 12, Leviticus )

 

주님

내 부족함 마져

사랑으로 감싸주신

그 사랑에 감격합니다

 

비록

이쁘지 않지만

내 가진 것으로

주님께

두팔 벌려 올립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주여.

오늘도 또 저에게

모세님에게 그러하셨듯

일러 가르키실 줄 믿습니다.

  
  
 
7.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 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기도 하다.

'생명'을 잉태하고 수고한 여인의 노고가 부정하다니..

더구나 남자와 여자아이를 낳은 경우를 차별하시는 것 같고,

더구나 그 내용이 '산모'에 대한 것이라서

남자인 나에게 먼 이야기 같기도 한 바

그렇다면 '말씀'을 매일 같이 주시는 주님께서

오늘은 나에게 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던 것일까?

 그렇게 받는다면 그것은

주님은 사랑이시고 주님은 매일 같이 나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그 본질에 어긋나는 생각이 아닐까?

주님은 분명히 ' 사랑'이시고 살아계신 분이시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내용의 말씀이신가?

 어쩌면 '하나님의 성물'을 만지지 못하게 하신 것은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하지만

그런 '이견'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순종하심을 바라시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부정한 '이란 표현은

산모 자신이 그렇다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산모는 '병'에 취약한 상태이다.

아기를 낳고 총 3개월이 지나야 완전한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고

약 한달간은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기에 이 시기 , 분만 후 3개월 간은 '산욕기'라는 표현을 한다.

'아기 낳고 욕을 보기 쉬운 시간'

 산부인과 의사의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남자 아이를 낳고 한달,

여자 아이를 낳고 보름을 부정한 시간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기 낳았다고 전혀 쉴 수없는 그 시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쉴 수 있는 기간을 배려 하시기 위하여

심지어는 '제사' 지내는 문제에 대하여도

배려 하신 것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면 '부정'하다는 것은

산모 자신이 부정한 것이 아니고

그녀의 출혈하는 몸이 그런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산모 자신의 자칫하면 부정탈 상황을 배려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그렇게 말하면서

주님은 산모인 그녀의 건강을 보호할 목적이라는 것이시다.

남편의 성적인 접촉,

외부 일로 부터의 차단,

........

즉 쉼이다.

 또한  어쩌면 부정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아담과 이브' 사건 이후 에덴 동산 이후

세상에 쫓겨나와 sex라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생물학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 '원죄'적 상징을 상기 시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생명을 위하여 허락되기는 했지만

음란의 죄와 연관되어 있는... 이 이율배반적인 부분에

주님은 조심하길 상기 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게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우리 인간 들이 세상에 살도록 허락은 되었고

죄와 밀접하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 타락한 인간임을 이해는 하시지만

늘 물가에 내 놓은 자식 같은 염려와 사랑의 마음이 읽혀지는 것이다.

 그 증거로는 8절에 나온다.

' 미치지 못하거든'

여인의 속죄제물 - 사랑하지만 눈 찔금 감으시고 '죄'를 먼저 상기시키시는 주님의 눈물이 보인다 ㅜ.ㅜ;;- 이

힘에 미치지 못하거든 그렇게라도 하라는 말씀이시다.

가슴이 멍하려 한다.

 '부정하다' 하심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약하고 불쌍한 존재다.' 하시는 말씀이시다.

 

 어제 당직이었다.

주일이라서 예배를 드려야 함에도

산모가 계속 출산하게 되고 응급 수술이 겹쳐지는 등

일이 이어지는 바람에 저녁 일곱시나 되어서야

그것도 잊어버릴 뻔 했던 예배를 잠시 교회에 가서 드리고는 부리나케 들어왔다.

 산모.

그 중에 한분은 난산이라서

'흡입분만'을 시도하여 출산하였다.

그들의 분만 중 흘리는 피는 500cc 정도 된다.

피와 더불어 분비물도 많다.

그들이 느끼는 통증의 정도는 0.5톤 용달차가 배를 순간적으로 밟고 지나가는

정도에 해당한다는 비유도 있다.

온 몸의 관절은 다 느슨하여지고 특별히 하나로 붙어 있던 골반의 관절까지 느슨해져

애기날 때 관절이 늘어나고 벌어진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의 생명을 잉태한다.

결과물로 보면 산모님들의 육신은 말그대로 엉망진창이 된다.

상처는 부어서 각종 염증의 감염찬스 덩어리고

몸은 오물로 씌워져 있고

피는 빠져나가고

느슨해진 척추관절과 골반관절이 자리 잡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런 와중에 온 몸은 또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하여

준비를 하게 된다.

 젖으로 모든 영양 소는 몰리고

........................

한마디로 출산한 후의 여인은 '생명' 잉태자라는 개념을 빼면

부정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 말씀을 적나라하게 하시며

그니들을 외부의 침범으로 부터 보호할 이유로

'부정'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이 분명하다.

 산모가 아기를 출산하고

'샘여성 병원' 

내 근무하는 병원의 산부인과 전문 병원은

모든 의사가 산모 분이 원하시면 '기도'를 해준다.

어제도 그랬다.

믿는 산모는 '감동'으로 '아멘'한다.

참 가슴이 벅차다.

 믿지 않던 '산모'도 숙연해진다.

그래서 그랬다.

' 기도해주니 좋지요?

그러니 '그렇단다.'

'내 목소리 어때요?

 그윽하지요?

 분위기 좋지요? ' 하고 농담하니 모두 웃는다.

그녀의 그 극한 상황을 달려갔다 돌아 온 생명 출산 직후

그녀의 영혼에 하나님의 마음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나님이 그러신다.

' 산욕기 지난 후 속죄제물 드려라'

죄가 그녀의 죄 탓인가?

죄가 나 만의 탓이던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인류 모두의 죄로 생긴

'출산하는 고통'이고

그 고통의 산물인 '상처' 탓이다.

 

 나.

내 상처가 부정하고 버려야 할 것이 맞지만

그것은 주님의 눈물어린 이해의 아픔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죄책감'은 덜어지고

'그 분의 위로' 에 의한 넓어지는 가슴을 허락 받는 것이다.

 산모 분들.

내 위안의 기도에 참으로 마음 편해 한다.

그들의 부정한 몸은

내 기도와 더불어 ,

주님의 축복 가운데 태어난 생명으로 인해 '성스러운 ' 자들로 거듭나는 듯하다.

 

주님이 그러신다.

' 만일 그러하거든'

정말 부정한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극악한 죄의 것이면

주님이 저러시겠는가?

주님은 우리의 죄가 피해야 할 것은 맞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의 것임을 안타까이 여기시면서

위로하고 받아주시는 것이시다.

 

오늘 묵상은 그러기에

차갑고 날카롭고 정확하고 분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원죄로 인해 상처  많이 생긴

어찌할 수 없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같은 자들에게

교육적 가르침과 더불어

보호와 사랑을 허락하시는

그러한 주님의 사랑이 표현되는 말씀이시다.

할렐루야.

 

 

적용

 

1. 내 죄를 돌아보아 회개한다.

 짜증.

 주님 앞에 회개한다.

 

2. 회개 하되 고민은 사양한다.

  죄책감, 고민, .. 은 사단의 그것이다.

  주님은 부정하다 하시되 그것은 사랑이시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은 생명이다.

 

4.   내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느끼자

 부족하다.

 성급하다.

 ...

 그래도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

 때로는 나보고 '부정'하다 하실 지 모르지만

 그마져 사랑임을 이제는 안다. 

 

기도

 

 주님.

모두 가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피흘리는 산모같이 추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는 자이기에

주님은 안타까운 사랑의 눈으로 

날 부정타 하시면서도

날 보호하시고 안아주시기 위해서 그러심을 압니다.

산욕기 ,

그 깨지기 쉬운 상태의 산모에게

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들의 정결을 위해

속죄를 말씀하시지만

실은 속죄의 제물조차도 가장 가벼이 허락하시는

주님의 그 배려에서

두려움 보다는 사랑을 읽었습니다.

주님.

오랫동안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 주님의 인격으로 변화하면서 회복이 되었지만

아직도 부정하다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질타가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질타마져

주님의 사랑이심을 압니다.

질타가 아니고 부정을 말하지만 그마져 사랑이셨던

주님의 사랑을

말씀 묵상을 통하여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저와 제 자식들과 제 아내와 제 아는 모든 자들이

주님의 그 깊은 사랑을 영혼에 듬직히 부여 안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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