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매일 주 앞에 서다[수24:1-18] 본문
1.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여호수아'가 불렀지만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선' 것으로 되어 있다
무슨 얘기인가?
현존 했던 여호수아는 '현재의 육신의 현상'을 의미하는 것 아니겟는가?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자'로
그가 부르는 것을
하나님이 부르시어 '하나님 앞에 나와 '
그가 얘기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로 대한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의 존재들이
영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려는 '노력'의 표현일 뿐..
실제.. 말씀이 하나님이신
로고스 하나님을 진정으로 체험하는 자들은
바로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알고 확신하고
실제 .. 그리 됨이다.
그러기에 '여호수아'의 육신 안의 마음을
들여다 보지 못해도
그가, 그 안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잇을 지 아닐지 알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냥.. .
그는 하나님의 매개체로 (하나님의 선택으로 )
그리 되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로고스 앞에 서게 되니
로고스 하나님을 마주한 것이다.
그것.
그냥 말 표현이 아니고
체험되어지고 알아지고 느껴지니
그게 진실이고 사실임이다.
수년전, 양자역학에 강의 듣고 나서
그 이해의 버거움, 양립할 수 없는 두 존재(파장과 물질)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존재하여
현대 문명의 가장 기초에 번연히(반도체... ) 쓰이는 원리임을 알고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심이 역시 사실임을 또 알게 되었다 .
그 원리,
이해할 수 없지만 반드시 있는
그 원리가
하나님의 원리임을 또 알게 되었다 .
그 것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양자역학에서는 '의지'라 나온다 )임도.........
아......
나도 전혀 모른다.
그냥.. 그런데 그 원리가 너무도 성경의 내용과 같아서
그냥 이해되었다 .
오늘 말씀이 그렇다 .
여호수아가 부르니
하나님 앞에 나와 서게 되다 .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날 부르시고
매일 이렇게 말씀을 묵상함을 놓치 못하게 붙드시니
난.. 로고스 하나님..
하나님이신 로고스를 붙듦이고
그러한 선택을 내가 한 이상 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이다 .
육신의 내가 주님의 말씀을 선택하여
말씀 묵상 앞에 서려 결심하는 순간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임하셔서
내 육신을 무한하신 차원과 공간의 하나님께
연결되어짐이다.
그래서 오늘 도
난
'일상을 살되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이다. '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그런 나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선언하는 자의 부류에 있는 자이다.
그러기에 난..
참.. 행운이고
참으로 감사하다 .
내
아주 적은 노력 (죄송하지만.. 남들처럼.. 열정적으로 주님의 일.. 선교.. 등등을 못한다. )으로도
주님을 놓치지 않고
주님께서 내게 기울이시는 관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
또 하루를 살아
여기까지 살아내오고
내 이후의 모든 시간 마져
또 그리 될것임을 알아
내 결국이 주님이 바라시는 바 가까이
변하게 될 운명임을 느끼게 되어서 그렇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는 결심을 늦추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조금이라도 변할 선택을 하며
그리함으로 나 뿐 아니라
내 집, 내 가정, 내 자손들까지
주님의 그러하심과 우리의 교통함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는 하루가 되는 것이다 .
주님.
감사하나이다.
날이 갈수록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심으로
내 삶의 틀어질 뻔함을 교정하고
내 속사람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왜곡을 인지하여 주님 말씀 앞에 말려가며
일상을 살면서
주님 앞에 사는 매일이 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아직 ,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어제까지의 '약함'을 주님 예수 십자가에 동참함으로
기뻐하는 연습이 부족함을 느꼇습니다.
주여.
이 일상에서 말씀대로 그리되기 위한 결심,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또 그리되게 하소서.
주여.
예상치 못하게
일상에서 주를 멀리하고 이방신을 향해 눈독돌리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지 못하게
제 심중을 밝히시고
마음을 움직이시옵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내 주여.
모든 말씀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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