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매일을 풍성한 여유로움으로 살아가기( 전 8:9-17 ) 본문
제 8 장 ( Chapter 8, Ecclesiastes )
세상 돌아감에 상관없이
그냥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만 살 수 있다면...
아이의 잡은 손가락이
책상을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그냥 잡을 뿐..
나도 그러길 원한다.
그냥
한손으로만 가벼히 잡기를 원한다.
그게 원리다.
주님 앞에서
자유로운...
9. 내가 이런 것들을 다 보고 마음을 다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핀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으며
사람이 사람을 주장한다.
NIV에서는 자신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얹는다..라 나온다.
'통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 의도가 비록 악한 것은 아닐지라도
남에게 자신의 뜻을 전가시키고
그를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는 시도는 모두가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는 통제의 시도는 아닐까?
그러한 통제는 가까운 사람일 수록 나오기 쉽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그럴 수 있다.
쉬운 사람을 향하여 내보내는 욕구의 발로일 수 있다.
이유와 명분이야 어찌되었든
통제를 받는 쪽은 심히 속상하게 되어 있다.
특별히 개인화가 심해져 가고 있는 이 시대는
통제받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스스로의 통제도 있다.
그 이유가 선천적으로 강박적 , 율법적 성향을 띄거나 성장과정의 상처이든
어떤 것이든 그런 자들의 내면은 많은 부분 분노나 우울로 채워지게 되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는 것은 때로는 해롭게 한다..는
오늘의 묵상이 의미 심장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통제를 가하고 있는가?
내 주위에는 ?
내 식구들에게는?
나 자신에게는?
그게 그렇다면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인가?
교육과 통제와의 차이는 어떠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하고 어디까지는 말아야 하는가?
솔직히
난 통제 당하는 것을 참 싫어한다.
어려서 부터 스스로를 '예술가' 타입이라고 자위해 왔을 정도다.ㅎㅎ
조직에 속하여 명령을 듣는
반드시 들어야 만 할 통제 조차도 싫어했었다.
그것은 '잔소리'와 '명령'이 많으시던 가족 분위기에도
일부분 이유가 있지만,
내 교만한 마음이 - 나는 옳다..는..ㅎ- 반발성으로 강화됨도 이유가 있을 듯 싶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을 반성하고 삶에 긍정적 원리로 적용하기 보다는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가 시켜 버리는 경향이 생겨 있었다.
그것은 '자식'과 주위에게 그대로 나왔다.
그러다 보니 날 그리 편하게 대하지는 않았었다.
큰 아들이 제대하고 나왔다.
나름
군대 갔다 왔으니 성장된 모습의 태도를 기대하고
그 틀 속에 넣으려는 또 내 습성이 나오는 듯 싶다.
늦게 자고 늦게 들어오고 여러 태도에서 이전과 큰 변화가 없다는
내 나름의 잘못된 판단이 또 꿈틀대려 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내속에서 용트림한다.
그러다 보니 불만이 생기려 한다.
실은 오랫동안 기도한 제목이 '내려 놓음'인데..
주님은 남을 주장하려 하는 시도가 '해롭게 한다'고 하신다.
그러지 말자.
문제는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고
어디까지가 통제인지 교육인지
솔직히 잘모르겠다.
참 어려운게 사는 것이다.
주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더 어렵다.
^^;;;
14.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15.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
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 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
어떤 게 답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믿음 가운데서 나름 옳다고 생각하고 밀고 나가며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몸부림 가운데서
기도는 응답되지 아니하고 - 최근에..^^;;;- 주위에
나랑 다른 사람들은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아가며
물론, 주님의 뜻대로라는 확고 부동한 원리를 잊지 않고 있고
더 좋은 선을 위하여 잠시 좌절시키실 것임을
원리적으로 이해한 다고 해도
악인 - 내 보기에 심정적으로 ㅎㅎ-은 승승장구하고
기도하는 자는 오히려 위축이 됨은
허탈한 심성을 가져오게도 한다.
둘째가 자꾸만 늦게 일어난다.
부지런한 아이인데..
이 아이가 아침 금식 하고 나름 열심으로
아버지 엄마가 제시해준 길을 놓고 기도를 해왔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니 힘이 많이 빠지나 보다.
나도 속이 상한데 아이는 어떠할까...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된다.
저러다가 어린 믿음에 좌절이 되면 어찌 할까?
전도서에 나온다.
의인이 악인처럼..
악인은 의인처럼 헛되이 돌아가는 모습을 한탄한다.
하지만 겉모습과 반드시 같을까?
악인이 번성하는 풍성한 모습이 그 속까지 풍요로울까?
선인이라 칭해지는 기도하는 선한 자들의 속이
좌절 했다고 늘 괴로울까?
아침에 찬양을 리더하는 데
일주일 전이랑 다름없이
불신자 직원들의 눈빛 들이 '뜨악'하다.
매주 그렇다.
찬양 가사 중에 '부요케 한다'라는 단어가 나와
그들에게 '부요'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부요란 '부하고' '여유로운 것'을 말한다. ..라고.
그리고 나서는
아침에 '리사이틀'하는 무명가수 같은 어이없는 심상에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 찬양을 진행했다.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주님이 훈련시키신 이유가 이것인 것 같다.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부요에 대한 받을 연습...ㅎ
묵상에서 'enjoyment' 즉, '희락'을 누리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보다 낫다고 나온다.
이 '희락'의 정체는 그것인 듯 싶다.
비록 부자로 돈을 물쓰듯이 쓰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골라먹고
멋진 옷을 입고
칭송을 입는 ...
겉으로 보기에 '선인이 받는 축복'을 받는 듯하여도
그 악인의 심령에는 '희락'이 없을 것이다.
그 희락은 선인 만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외적인 상황에 상관없이
내적인 풍요로움, 즉 부요인 것이다.
욕심을 내려 놓을 수 있거나
욕심을 더 안부려도 충분한 물질이나 성공을 주시거나
어떠한 부의 축복이 주어져도
그 주어짐의 정도에 상관없는 풍성한 여유로움,
그것이 '부요'로 표현되는 '희락'이 아닐까?
그 희락은 하나님의 평화가 전제가 되기에 가능할 감성이다.
도저히 이 물질의 세계,
주님이 안계신다 생각되는 이 현세에서는
가능치 않을 논리고 현실이다.
즉, 선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축복을 받지 못하는 듯 보여도
그 마음에는 풍성한 기쁨을 누리고 살게 된다.
그것이 축복의 진실이다.
내 상황을 돌아본다.
한동안 속상했다.
많이..
하지만, 주님이 내 속에 풍성한 느낌으로 정리해 주셨다.
나 , 다시 부요한 상태로 살기 시작하고 있다.
몇일 갈 지 모르지만..
아이.
그럴 것이다.
몇번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고 일어나며
자신의 실책에 대하여 반성하고
장래에 대하여 다시금 마음을 고쳐 먹고
그 과정 과정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인지하게 되고
그 하나님께 조금 더 성숙된 모습으로
내려놓는 믿음이 이루어 질 때
그 심령은 '희락'으로 가득차게 되고
그 일생에 어떠한 풍파와 혼란이 몰아쳐도
늘 항공모함의 든든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나보다 30년은 먼저 시작한 신앙의 깊이가 될
아이의 50살 모습은
타인에게 굉장한 선한 영향을 주는
귀한 성인(成人..,聖人) 이 되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리 믿는다.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
장래의 큰 영광.
그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누릴 것이고
이 땅을 '심령천국'으로 살아가되
이웃에게 그러한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것이라
난 믿으며 바란다.
감사하다.
적용
1. 통제의 욕구를 내려 놓겠다.
아이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겠다.
기도하겠다.
어렵지만 스물거리는 욕심을 내려 놓는다.
오늘은 잔소리 하지 않는다.
2. 기도한다.
묵상대로 되기를 ..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4. 있는 그래도 본다.
어이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5. 진실로 중요한 것은 '심령의 희락'이다.
희락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임재감이다.
그것을 방해할 모든 생각과 의도는 내려 놓겠다.
욕심도 버린다.
안되는 것은 받아 들인다.
기도
주님
통제의 끈을 낮추게 하소서.
지혜를 주소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보게 하소서.
인내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주소서.
그때까지 믿고 기다리게 하소서.
주님
비교하지 않게 하소서.
비교하되 내 속의 평강을 기쁘게 느끼도록 도우소서.
두손모두 움켜쥐지 않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려 놓게 하소서 .
주님 인도하소서.
내 가정 이끄소서.
내 자식들의 장래를 이끄소서.
내 아는 모든 분들을 그리하소서 .
정말 중요한 원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중요하지 않은 세상의 얻음을 그리 마음쓰지 않게 하소서.
얻지 못함도 그리 억울케 생각지 않게 하소서.
비교도 내려 놓게하소서.
기쁘게 살게 하소서.
상황에 맞지 않는 든든함을 주소서.
주님이 계시기에 그렇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소서.
주여. 간절히 비옵기는
저로 남을 위해 살수 있는 이타적 긍휼함을 주소서.
잊지 마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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