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남은 용서 490-N개[마18:21-35] 본문
울 손녀
예배끝나고 목사님 축도하시니
그냥 나가서 같이 저런다 ^^*
주께서 말씀을 통해
용서하라시니
나도 저리 두손들리라
용서하리라
490번 용서하라시는 바
한번 용서할 것 있으니
489번 남았다
그렇지 않으면 좋으련만
복잡히도 머리를 혼돈케 하는
용서할 일들이 또 있으면
또 다시 그리하리라
그 모든 것
말씀이 있으시고
성령의 도우심 있으실 것 아니
나 또 다시
용서를 선택하리라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형제가'
꼭 형제 뿐이고,꼭 아는 사람 뿐이며 ,꼭 친한 사람 뿐이겠는가?
심지어 더 가까워 그러지 못해야할 자까지 내게 죄를 짓는
그 어이없는 상황까지를 말하겠지..
'내게'
그 특별한 가슴앓이...
나만이 알 수있는 형제의 죄.. 가까운 자의
내게 대하여 형제가
'죄를 범하'는 경우가 생기면
어찌 행동하고 어찌 자신을 붙들어야 할까?
그래도 '일곱번이라도'라고 물어봄이
마치 어린아이가 숫자 통해 자신의 알고 있는 가장 큰 범위를 말하듯
뜬금없이 '일곱번'을 이야기 하면서
그 죄 용서함의 어려움에 대하여
갑자기 말했다
이것..
베드로의 내면에
천국과
그를 위하여 용서해야할 어려움에 대하여
부담으로 느껴졌을 가능성과 더불어
일곱번이라는 표현은
그래도 예수님 안에서 '승리'..
말씀이 있어서 '용서치 못할 자에 대한 승리로서의 용서'에 대한 기록......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 공생애 사역에 따라 떨어질 시간이 없었으나
그 용서를 마음 속에서 나마
예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시도 해보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지만 과연 자신이 얼마나 더 승리할 수 있을까..
매사 어디까지나 '용서'할 수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베드로 다운 의구심이 들어서 이고..
그 만큼 용서는 반드시 해야하는
영적 승리의 기본 태도이며
한편으로 용서의 어려움과 더불어
용서는 해도 때로 자꾸 되풀이 올라오는 '미움과 원망'의
누구에게나
심지어 베드로 같은 단순 간결한 성품의 소유자에게도
동일히 있을 수 있음을 보이심 같아 보인다.
무엇이신가?
'용서'의 반드시 필요함.
용서의 어려움
용서해도 되풀이될 잦은 되풀이의 당연함.
그래도 용서해야함.
우리의 내면의 복잡함... 에 대한 돌아봄이
오늘 내게 말씀 하심이 아닐까?
용서는 끊는 것이다
죄의 사슬
악한 멍에를 끊고
가벼히 풀려나는 것이다
단순화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세로 인하여
모든 묶임을 끊어 버리고
주님의 임재 안
천국의 평강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예수께서 그러신다.
'일곱번이 아니라 490번이라도 ..'
어찌 가능할까?
용서라는 단어만 보아도 마음이 콱막히려는데..
그리고 베드로님의 입술을 빌어
그래도 나만 그런게 아니고
용서해도 또 미움과 복잡한 마음이 올라옴.. .
끝없이 되풀이 되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그러함의 어려움이 읽혀져
그게 비단 나만 그런게 아니고
오늘도 또 어쩌면 ... 그럴 수 있고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내면의 복잡한 얽힘.. 에 대하여
다시금 말씀하심 같다.
그렇다면
어찌 용서를 맞이 해야하는가?
어쩌면 오늘도 다가올 그 복잡한 영적 도전..
거기에 반드시 '용서'로 이겨내야할
하루의 대책이 있단 말인가?
예수님의 '단칼'의 말씀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단칼이란 표현.
불가능한 것임을 예수께서 과연 모르셨을까?
용서에 얽히어 있는 그 수많은 '미움과 갈등' ..
그리고 나락으로 빠뜨리려는 '자괴'와 '자기 연민'.......
이 땅의 삶에 매진하기도 힘든 수없이 많은 도전 중에
이 얽힘을 누르느라 에너지 사용되는데
어찌..................?
그런데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아는 자 들 아닌가?
말씀이 있으시지 않은가?
오늘 '예수'께서 단칼의 말씀은
이러한 귀중한 도구를 주셨으면
무엇이 문제인가?.. 라시는 뉘앙스로 다가온다.
"주하인아..
넌 할 수 있다.
일곱번에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으니
무조건 머리가 얽히고 설키며 복잡한 논리로 엵이고
마음이 이상히도 울퉁 불퉁.. 하는 상황이
혹... ^^;.. 다가오며
마음이 불안정하고 '분'이나 '노'가 올라오려하면
그냥 말씀이 있으신
또 용서할 결심을 하라.
말씀이 있으시니 용서하라.
용서하라시니 용서하길 결심하라.
..
그러면 '성령'께서 도우시어
또 승리할 것이다.
다가오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의 얽힘이
단순화되고 잘라지게 되리라.
그리고 또 한번의 '승리'의 기록이 좁은 길의 간증으로 채워지고
넌 또 승리하게 될 것이다.
또 그러면
또 그러해라.
단순화하라.. 하심이다.
용서로 단순화하라.
그 어떤 어두움의 논리로 스스로를 묶을 필요없다.
가까운자의 배반.. 배신.. 왜곡... ?... 모두 용서하라.
단순하게 용서하라.. 하심처럼 들려온다.
할렐루야
예
주님
그리하겠습니다.
용서하라 시니 또 용서하겠습니다.
거기에 그 어떤 논리도 필요없고
좌절이나 지침과 자기 연민과 의식하지 못한 수없는 많은 논리들..
거짓 소리들의 흔듦을 들어
오늘 하루를 무겁게 보낼 그 어떤 이유도 없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단순화 시키겠습니다.
용서하겠습니다.
몇번이라도 그리하겠습니다.
용서하라시니 그리하게습니다.
주님이 그러라시니 그러하고
주님이 그러하라실 때는 그러할 힘,
당연한 '성령의 기뻐 하심'을
제 영혼이 체험케 하심이며
승리의 기록을 더 쌓는 기회일 뿐임을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도우실 것을
잊지 않고...
단순하게 만 생각하고 살길 선택합니다
주여.
맑은 하늘이 예상되는 아침입니다.
날씨와 상관없는 제 시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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