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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내 안에 모셔들이기[막9:30-3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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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내 안에 모셔들이기[막9:30-37]

주하인 2024. 3. 6. 06:52

부제) 예수께서 인생의 절망을 모두 다 안으셨다

(펌)

어차피 산다는 것

홀로가는 외로운 길이다

 

아무리 애를 써서

주위를 둘러보고

나를 안아주고 위로할 자 찾아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

아니다

모두 자신만을 알아달라는

외로운 악귀들의 부르짖음만

귀를 쟁쟁 울리다가

마침내 터져 벌어져 버린 가슴

부여잡지도 못할 게

인생의 궁극이다

 

그러나 아니다

 

내게는

우리 믿는 자들,

좁은 길을 택한 자들에게는

결국의 승리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

성령의 은혜로 인한

소망 넘침이 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넓은 긍휼이 있다

 

모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체휼하고 짊어지고 가신

십자가로 인함이다.

 

할렐우야다

그게 복음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또

일어설 수 있음이다.

 

 

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갈릴리 '

예수님 공생애 사역지의 중심지.

제자들을 택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을 설파하시던 곳...

 

 그러기에 '지인'이 당연히도 많을 곳.

그곳을 '가운데로 지날 새'  

NIV 표현으로 passed through , 통과하셨다..라 나온다. 

더 정확한 뉘앙스는 '통과해 버리셨다'가 아닐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자.. 라 하셨다. ㅜ.ㅜ;;;

 

거기에 안 알리고 지나야만 하는 어떤 상황,

작전 내지 계획에 생길 변수를 고려하여 지나쳤다기보다

그냥 '실망' 내지 

인간 예수 , 인자 예수님으로서의 '실망'.. '속상함'.. 외로움.. 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느낌이 

그 이유 중 하나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침은

(펌) 외로워.. ^^;

그러한 '외로움 전문가 ^^;; 주하인'의

과도한 예민함 탓인가?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그러한 추정에

이 구절이 단서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십자가 사역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라 하신다 .

 우리는 익히 알지만...........................

예수께서 십자가 전날 밤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에 매달리셨고

'제자들에게 같이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신 

그 밤에도 

예수님의 마음을 단 하나의 제자도 헤아리지 못했던

그 절대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던가?ㅜ.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실 당연한 분이심을 알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미리 아시는 자의

그 외로움과 두려움에 대하여 

어찌 모를까?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십자가 사역에 대한 두려움과 

그를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을 깨우치며 

한편으로 같이 고통을 나누기를 한편으로 원하셨을

그 인간적 갈등과 괴로움(죄가 아닌...죄가 없으신....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지니신 .. 인자 예수님으로서의.. ㅠ.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심처럼 느껴진다. 

 

 그게...

그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제자들의 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 본연의 태도'에 

괜한 기대를 했음,

그러기에 '갈릴리의 지인'들을 마주할 이유를 느끼지 못함이셨을 것이고

그게 '그냥 ' 가운데로 지날 새... 라는 표현처럼 

통과 해버리신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 보이심이시다. 

 제자들도 이러한데 

갈릴리의 아는 지인들이 과연 알수 있을까?

실망이라기 보다

인간 자체의 본연의 어이없음에 대하여

보이심이시다. 

의미없는 인간에 대한 기대는 하지말라.. 주하인아

그들은 의지할 자들이 아니다.

기도하고 긍휼히 여길 자다. 

그러하기 위하여는 '예수 안에 더 .....깊이........' 라 하시는 거 같다 .

 한마디로 

예수님의 '외로움'

예수님의 절해고도의 느낌.. 이시다 .

그거.. 

반드시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음... 에

국한되는 느낌인가?

 

 나.

저러한 불편함의 전문가 ^^; 로서 

그런 내 ..모든 것까지 다 '체휼(이 표현이 난 좋다... 체험하시고 체득하셔서 긍휼이 여길 기회가 되었다는 그런 뉘앙스의 표현 아니던가?  ^^*)' 하여 주신 것임을 확실히 안다 .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 

수천년을 격(隔)하여 오늘 '나'에게 까지 알려주시는 거다. 

(펌) 눈빛 교환 ^^;

아.. 예수께서 내게 눈을 마추시며 '알겠니'.. 하시는 듯하다.^^*

그게 감사하다.

 

 그런데,

제자들의 입장으로 와서 

다시 나를 대입해 본다 .

 

예수님을 실망시키는 것,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듣고

변화산 모습까지 본 제자들 마져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 '앞에 

누구나 다 똑같이 움츠러 드는

이 모습 말이다. 

 

예수님 말씀,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멍한 마비, 마취'로 들어감이다. 

 

 마치.. .너무 오래 '북한의 불바다' 위협에 시달리니

그냥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본의 수년간의 방사능 배출' 선언이 그토록 위협적이더니

드디어는 배출되고 나니 아무도 그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

오히려 일본에가서 앞바다 오염 생선회를 싸게 먹고 오고 있다. 

 대기 오염, 기후 변화, AI,로봇의 종말론적 공격에 

또 다 잊어버리고 산다. 

 .............

이 인간들의 '의지적 망각'을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당하고 계시다. 

 

 예수께서 

'집단왕따'..

이 인간의 절망의 '죄성'들을 마주하시며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가.. .

'갈릴리'를 '가운데로' passed through...하시는 모습에서 잘 알수 있다.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가버나움.

갈릴리에서 50키로 떨어졌다한다. 

 

 거기에서 예수께서 물으신다. 

'무슨 이야기를 하였던가..'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모르셔서 이셨을까?

 

이 인간의 결점.

이 ....

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

분명코 모든 것 버리고 예수님 따른 제자들의 본성 깊이 숨어 있는

이 극악한 이기심.

무기력한 '두려움의 망각 기제(mechanism)'을 

또한번 지금의 우리들에게 도 

목도시키고자, 직면시키고자 하심은 아니실까?

 

 주하인아.. 

너무 당황하지 말라.

네 모습이다. 

그것을 다 안다.

내가 다 체휼하였다.

그 절망이 

십자가와 부활로 헤쳐져 나갈거다. 

소망이 아닌가.. 

함들다. 

사는 것은... 

그것을 다 체험했구나..

다 안다 .

힘내자... 

하시는 것 같다.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그러시며 예수께서는

다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살 원리를 가르치신다. 

이 '원죄적' 인간의 심령에

복음으로 다가오셔서

또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으로 자리잡으시고 계신다. 

아.. 할렐루야

 

 

주님.

오늘은 인간의 본연의 절망적 모습을 통하여

그들의 극한의 상황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 망각... 

또 그를 통하여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의지하거나 기대를 할 존재가 없음,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

오직 성령님 만이 답이심을

말씀을 묵상하는 내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성령님을 통한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없는 

죽음의 절망, 

그 외로움이 가슴 깊이 오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 모든 것을 체휼하심으로 인하여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 지고 가심,

그리고 허락되어진 부활과 

성령의 철저하신 은혜로 인하여

'소망'이 되었습니다. 

 

이땅을 그만 보겠습니다. 

그만 절망하겠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이들을 중보할 당연한 당위성을 알게 하셨습니다. 

 

지속되게 하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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