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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고 계시는 내 두려움[마17: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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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고 계시는 내 두려움[마17:1-10]

주하인 2023. 3. 5. 08:22

(펌)

내 홀로

저 산정상에 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에 있다면

심히 두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니

어느새 홀연히

두려움대신 아름다운 든든함

오히려 감동이 몰려오려 한다

 

두렵다

누구라도 아닐까

이 시대의 두려움

완전히 뒤집혀 버릴 세상의 새로운 가치로 인하여

바야흐로 백척간두의 위태함이

온통 우리를 사로 잡으려 하는 세상이다

누구도 알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뉴노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치를 강요한다

 

하지만

이제 주예수를 믿는 우리

좁은 길을 걸어오는 우리에게는

주님이 강하게 붙잡으시리라

그날을 감하시리라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일어나라 두려워하지마라 시리라

매일 매일 일상에서 말이다

 

그것을 말씀하신다

그게 감사하다

살아계신 구주 예수님이

내 하나님이심이

너무도 다행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유명한 '변화산 베드로의 허언'

그런데 그게 '가련하고 가상한 것'은 

베드로의 저 때의 모습은 아직 세상의 버릇이 번연히 남은 미성숙한 신앙인이기에

무슨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저리 말하지만

오롯이 '예수님'께만 향하고 

마치 매사 어린아이들이 마주하는 세상의 처음보는 현상에 대하여

'경이로움'에 젖어 

한편으로 두려움으로 몸을 움츠리며

동공이 커져있는 그런 듯한.. .

그러면서 충성된 그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이 구절이 어이없으면서도 실소를 자아내는 듯 하지만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며

그 안에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투영해 보게 하기에 그런 것 같다. 

 

 나.

베드로님과 비교할 바는 안되는 자이지만

오늘 다시 

이 유명한 구절에 마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두려움' 부분인듯하다. 

 

 GPT 챗봇이 바야흐로 현실화가 되었다. 

AI를 구분하는 여러 개가 있다 한다 .

이 GPT챗봇은 'generative AI'에 속하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는.. 그러면서 인간의 대화와 비슷하게 하니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현실이 눈앞에 바짝 다가온  바 크다. 

이제 곧 별 고민 없이 '상담'할 부분들을 그들이 담당하게 되고 

그래서 영적인 고민......

예수님.......

신앙..........뭐 .........많이 흐려질 것이 

난.. 두렵다. 

이제는 이전 시대의 생각 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뉴노말'의 현실화......가 

영적 부분 까지 혼란 스럽게 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해오던 것이 하나도 옳지 않게 느껴져

이제 바야흐로 '대혼란'이 눈 앞에 온 것 같은 

두려움이 크다.

 

 생각지도 못햇던 습격이 그렇다 .

 

어젠 CJ에서 따사로운 봄 같은 날씨 안에서 무사히 캠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의 따근한 손길이 담긴 식사를 마치고 시간을 잘 보내고 

TV를 보는데 전세계의 '오염'이 환경특집으로 나온다. 

아........이건 이전에 보았던 것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바다가 온통.........땅이 온통.......이다. 

이제는 돌리기 어려운.........

곧........그렇게 될 세상이 이제는 맞는 것 같다. 

 

사뭇......

아내와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기도하고 잤다 .

두려운 시대.

 

 베드로가 '두려워 한다 ' 

 

그런데 그 두려움이 무서움 일색 만은 아닌게

주님이 날 보고 보라 하시는 것 같다. 

 

 "그날을 감해 줄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오직 주님 만을 더 바라보아야 할 시대인데

왜 어찌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두려움에 매몰되려 하는가.. .. ?" 하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랬다 .

 

그래서 베드로의 두려움에 헛소리 하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소망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그러시면서

두려워하는 베드로를 

'홀연히'(아.. 이 홀연히라는 단어가 왜 이리 감사하게 느껴지는 지... 불현듯, 홀연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단 한칼로 위로 하시는... 말씀하시지 않아도 날 얼른 감싸 안으시는 듯한 .. 그런 뉘앙스^^*).. 

'빛난구름'으로 

베드로와 일행을 덮으셨다 한다. 

 

 위안이고 위로시다. 

'빛난 구름'이 눈에 그려지듯한다. 

그래서 얼른 이미지에 맞을 사진을 검색했는데 마땅한 게 없다. 

우리를 감싸는 빛난 구름..

그래서 '예수님을 감싸는 산정상의 안개 '사진으로 밖에 할 수 없어

걸어 놓았다.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각설하고 

이 미련하고 둔하기가 '주 하인' 같은 제자들이 

감사하고 감격해야할 주님의 위로와 

이 신비적 현상으로 예상될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로 기뻐하는 대신

오히려 '심히 두려워 '하였다. 

엎드리는 것은 '경외'의 마음이 더해져서 그런게 맞는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기뻐하고 안심'하길 원하시며 

허락하신 저러함을

오히려 '심히~' , 심히 두려워 했다는 표현처럼

상황구분 못하는 모습을 본다 .

 

 나.

이제의 두려움은

두려워할 것이 맞다. 

 이 세상의 끝간데 없는 타락과 

그 안에 살아갈 다양한 문제를 

기뻐할 수 는 없지 않는가?

 

당연히도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워 하여야지.. .

더구나 하나님 믿는 사실 자체도 

이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데... 

 

그러나.. 

그러함에도 '요한계시록'에 모습을 드러낸 부분들이 

작금에 이루어지고 있음은

더구나 온 우주를 만드신 주님의 그 광대하심에 비추어 

겨우 이 지구의 이러함과 

그 안의 당혹스러움은 

어쩌면 베드로들의 저 두려워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함이 느껴지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놓치 않는 이상

빛난 구름으로 감싸고 

성령으로 도장찍은 

제자들 중의 더 선택받은 자'로서의 단단한 붙드심.. 에 대하여 

보여 주시는 것 같다. 

 

 그렇다. 

좁은 문을 건너 좁은 길을 선택한 

선택받은 소수.............

주님을 붙들고 이 인생길을 가는동안

앞으로의 그 어떠함도 

두려워할 일 없다. 

일어나거라... .하심이시다. 

감사하다. 

 

 

 주님.

또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날입니다. 

오직 제 두려움을 거두고 

빛난 구름 으로 감싸신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위로를 붙들고 살아가겠습니다. 

언제 오실지 저희로야 알 수 없지만

이 마지막 시대를 

오직 주님 만 바라보고 나가겠습니다. 

두려움.. 두려워하지 않기를 말씀하시니

내려 놓겠습니다. 

감사하나이다. 

주여.

홀로 영광받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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