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 때로 부터 이제 부터[마16:21-28] 본문
우주로만 눈을 돌려도
그 끝간데 모르는 광활함에
입이 턱막혀 숨도 못쉬는 데
그 마져 말씀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어찌
이 미세한 자의 속내로
짐작이나 가능할 지요..
그 당연함을 가지고
계셔도 느낄 수 없다고
마치 계시지 않은 듯
사람의 일에 매몰되어 살려는
이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때로 부터..
이제 부터 진정..
하나님의 일로만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십자가 같이지는
온전한 눈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게 하소서.
시간이 바야흐로 급함을 느낍니다.
시대의 변화를 통해서도
말씀을 통해서도........
그리 느껴지게 하시오니
부디 이 부족한 자
이제부터라도
깨어 있을수 있게 하소서
제 매일을 그리 인도하여 주소서.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이 때로 부터'
전환점.
바야흐로 새로운 대 변혁이 일어나는 시점.
예수님을 따르고 제자로서의 행보는 여전했지만
예수께서 '고난'의 숙명을 말씀하시는 시점.
십자가가 드디어 모든 제자들에게 '의미'로 확실히 각인 시키게 되는 시점.
그리고 그 '고난이 숙명'임은
또한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이 단순히 이야기 속의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니고
반드시 존재했고
반드시 가야할 길이 맞음을
드디어 제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전환점.
갑자기 '제자'들의 마지막이 궁금해져 검색해 아래에 복사해놓았다.
모두 거의 십자가 , 어려운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함.. 단순히 인간적 깨달음이나 들음으로 가능한 이야기였을까?
누구나 다 십자가와 모진 최후가 운명은 아닐지라도
이 때로 부터.. 라시는 말씀과
그들이 그렇게 까지 확실하고 담대하게
인생을 걸만한 대 전환점이
바로 '이 때 , 이 시점'이고
그 시점을 목도하게 되는게
바로 이 아침..
이 때로부터라는 '단어'를 목도하는 이 순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캠핑.. 와 있다.
2주전 왔던 'CJ의 ㅇㄹ대교' 가 너무 좋아서
다시 한번 왔는데
아. .. 새벽에 난방장치가 고장이 나서
따스한 이불 속에서 나가 앉는게 고역이다 .
그래서 피곤한 눈을 빌미로 잠시 눈감고 묵상하고나서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이 때로 부터.. 를 묵상하며
갑자기 잠이 다 날아가 버렸다.
추위나 잠보다
더 명쾌한 무엇이
날 그리하게 함이 맞다.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도 그랬다
익숙한 생각, 익숙한 삶의 패턴
익숙한 세상의 논리,
뉴노말이라 표현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에 적응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좁은 길'.. 좁은 문.. 을 선택하고
본인의 원이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선택이시든
어쨋든 이 인생길을 걸어가며
그게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긴 알았지만
아쉽고 안타까운게 있다.
확실히 해야할 그 어떤 것은 알지만
무의식적으로 부인하고 싶은 것....
그래서 '붙들고 항변하고' .. 결코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날 수 밖에 없는 '이 익숙한 상황'.
그게 '이 때로 부터'...고
그게 어쩌면 오늘이 될 수도 있음이다.
아직... 내 삶에 적용시키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에서 불분명히 헤매던
세상의 삶 속에서
완전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개념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아니던가?
이제 '적당히'를 넘어서
확실히...
어제 베드로의 고백처럼
'이 땅의 염려'를 '떡'으로 적당히 버무려 살던 때를 벗어나
그 어떤 일도
예수그리스도를 마주하는 계기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확실히 돌이켜
자기 십자가지는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
이제 그리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이제 '막연함을 넘어'
이 엉터리 같던 열두제자들이
누구나 거의 (요한님 만 빼고... ) 십자가 죽음의 결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살아계심
이 성경의 확실한 진리..
그러기에 '이 제 부터' 다시금 확실히 더 깊은 실제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주여.
베드로의 저러함을 넘어서
단호히 '이때로 부터'
십자가 사역의 실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하신 살아계심.....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숙명과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제 더 정확히 하나님의 일을 구분하여 확실히 지켜야만 하는
그 시점을 말씀하시는 듯하게 느껴집니다.
아.. 베드로처럼 항변하고 몸부림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저들 모두 .. 성령의 강력한 임재후
요한 사도 이외 거의 모두 당연히 '십자가'나 십자가 같은 고역의 마지막을 장식했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갈 수 밖에없는
그 온전한 나라의 당연한 어떠함에 대하여
이 세상의 거짓들을 씻어내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의 어떠함에 대하여
다시금 돌이키게 하십니다.
주여.
주님의 철저하신 인도하심과
그 후의 '사도행전'의 이끄심을 목도하였기에
시기와 실제행함의 시간들이 주님께 달렸음을 알고 있습니다 .
이제... 이때로 부터가..
제게도 사실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힘을 주소서.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이 부족한 자.. .
세상에 다른 행보로 가는 자..
그러한 자들에게도 가나안 여인의 특별한 찾아오심으로
이 때로부터의 시간이 시작됨을 믿습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살게 인도하소서.
그마져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펌)
(초대교회 시대, 제자들의 죽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3-24).
1. 야고보(James)
처음으로 우리가 만날 순교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인데 야고보의 순교는 스테판이 죽은 후 약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이는 헤롯 아그립파가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자마자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을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매서운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을 때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2. 빌립(Philip)
빌립은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서 설교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다. 히에라볼리(터기의 ‘파묵칼레’라는 지역)에 이르러 그 지방 주민들이 큰 뱀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그 뱀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지도급에 있는 자들, 특히 미신을 이용하여 많은 돈을 번 제사장들은 화가 나서 그를 투옥시켰고, 빌립은 지독하게 채찍질을 당한 후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북아시아에서 신실하게 주를 섬겼으며, 프리기아(터키 소아시아)의 헤리오폴리스에서 순교했다.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A.D. 54년에 십자가에서 처형됐다.
3. 마태(Matthew)
세리였던 마태는 태국 파티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했다. A.D 60년경 에티오피아에서 왕에게 불편을 끼쳐 칼로 목 베임을 받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에티오피아에 있는 도시 나다바에서 미늘창(끝이 둘 혹은 세 가닥으로 갈라진 창으로, 도끼‧창‧갈고리를 하나로 묶어 놓은 무기)으로 살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4. 작은 야고보(James)
사도 요한의 형과 구별하기 위하여 작은 야고보라 불렀으며, 예수님 승천 후 예루살렘 감독으로 선출됐다. 이때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분개해 복수하고자 야고보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끌고 가 밀어뜨렸으나 죽지 않자, 상처를 내고 돌(혹은 나무망치)로 머리를 때려 죽였다고 한다. 또는 블레셋과 애굽에서 전도하다가 애굽에서 94세에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5. 맛디아(Matthias)
맛디아는 다른 대부분의 제자들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갸롯 유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임명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돌매질을 당하였으며 후에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다.
6. 안드레(Andrew)
베드로의 형제로 러시아에 처음 복음을 전한 자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의 파트라스(혹은 터키 에데사)에서 체포되어 총독에 의해 X자 십자가형에 처해졌는데, 좀 더 천천히 죽도록 하기 위해 못으로 박지 않았고, 줄로 꽁꽁 묶여 삼일 내내 십자가에 달렸다. 무서운 고통을 당하는 중에도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그의 태도에 감화를 받은 사람들이 총독에게 자비를 요청하였으나, 결국 두 끝을 땅에 수직으로 박은 X자형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7. 베드로(Peter)
안드레의 형으로 주로 안디옥과 소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것 때문에 자신은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사형 집행자들에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는 머리를 아래로 하여 거꾸로 못 박아 달라고 청했다. 주후 64년경 네로 황제 때 바티칸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체코의 신학자인 제롬은 베드로의 죽음에 관해 “베드로는 머리가 땅으로, 다리가 위로 향하는 자세로, 즉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는 주님과 같은 자세로 죽을 만큼 자신이 고귀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전해진다”라고 전했다. 후일 베드로의 시체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지하로 옮겨졌다.
8. 바돌로매(Batholomew) - 나다니엘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란 뜻으로 이름은 나다나엘이다(요 1:43~51). 바돌로매는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지를 거쳐 현 아르메니아의 알팍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교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이방 왕에 의해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진 후, 오랫동안 잔인하게 폭행을 당했고,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져 순교했다고 한다.
9. 도마(Thomas)
도마는 디두모(Didymus)라고 불리며, 파티아와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고, 이곳에서 이교도 제사장들을 격노케 하였다. 그래서 그는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었다.
10. 시몬(Simon)
시몬의 다른 이름은 젤로(Zelotes)이다. 그는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MAuritania)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영국에서도 선교하였다. A.D. 74년에 그는 영국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11. 요한(John)
이 "사랑받는 제자"는 큰 야고보(James the Great)의 형제이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명령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끓는 기름가마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를 입지 아니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그 후 도미티안(Domitian)은 그를 팟모 섬으로 추방하였고, 요한은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도미티안이 후계자인 네르바가 요한을 재송환하였다. 그는 사도들 중에 유일하게 참혹한 죽음을 피한 사람인 셈이다.
12. 다대오(Thaddaeus)
알패오의 아들로 작은 야고보와 형제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다대오’로, 누가복음(6:16)과 사도행전(1:13)에는 유다로 기록돼 있다.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몬과 함께 복음을 전했고, 앗수르와 페르시아(바사)에서 전도하다가 우상을 파괴하자 분노한 사람들이 다대오와 시몬 두 사람을 포박한 후 살해했다고 전해지며, 순교의 모습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도 하고 활에 맞아 순교했다고도 한다. 현지인들은 다대오와 시몬이 3500여 명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매장됐다고 전해진다
13. 바울(Paul)
처음에는 사울이라 불렀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숭고한 희생과 말할 수 없는 수고를 치룬 후, 역시 네로의 박해 아래서 순교하였다. 로마 병사들에 의해 바울은 마을 밖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바울은 기도를 마치고 칼에 목이 베여 순교당했다.
14. 누가(Luke)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이며 복음 전파자이다. 그는 바울과 함께 많은 나라에서 선교하였으며, 그리스의 우상 숭배 제사장들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5. 마가(Mark)
마가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우상인 세라피스를 기리는 웅장한 종교 의식을 할 때 순교당하였다. 그는 무자비한 처형 방법으로 몸이 찢기며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16. 바나바(Barna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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