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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을 아는 자로서의 하루[렘22:1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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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을 아는 자로서의 하루[렘22:10-19]

주하인 2023. 8. 18. 06:56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형통, 잘나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난 확실히 안다

 

그냥 이땅에 고착되어

주변의 변화

내 가짐과 못가짐에 의하여

일희 일비 되어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지

자연스레이 알게되어

 

주변의 흐름을 자연스러이 맞출줄 알고

내 내면에 흐르는 흐름이 기쁨으로 유지되게 할 줄 알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어느 때 어느 상황

심지어는 내 마음의 흐리고 밝음과 상관없이

알아차리고 흘려 보낼 수 있는

그런 삶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하루..

 

또 말씀을 이유로

내 그러하지 못해왔었음을 확연히 깨닫고

다시한번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나와 주변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 또

나도 모르게 기쁨으로 흐르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형통함이고

제대로 나가는

go Well

복의 삶이 아닐런가

 

모든 것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합니다.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형통'

NIV에서 'went well'..잘나갔다.. 정도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소위 말하는 '복' 아닐까?
막힘없이 '사통팔달' .. 시원 시원하게 잘 나가는 거.

 

 그 막힘 없음을 사모하는 것..

이 삶 자체가 어차피 불완전 하기에

돈을 많이 벌고 재산이 많아 '백향목'으로 상징되는 이땅의 모든 것을 다 누려

'외적'으로나마 그 형통함을 확인 받아 보고자 하는 욕심... 

그것이 '복'에 대한

'형통'에 대한 인간들의 이해의 정도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게 맞는가?

정말 

이 '유한한 세상'에 '형통'이 있을까?
남을 누르고라도 우리가 그토록 누리고자 하는 욕심..

그 '복'.. 형통의 실제가 실재 하기는 할까?

 

 분명히 아니라고 15절에 말씀하셨다. 

 

 오히려 그 아버지의 세대가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잘나갔다'고 한다

 

그 비교는 분명코 아들로 표현되는 우리네 ,지금...어쩌면 나까지 포함되는

이 잘나가는 '현재의 외적'인 데 

내가 그토록 안정하고 싶어하고 

가진 것 놓치면 느껴질 허탈함이 '복'..에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은

'복'이 아닐 것임을 확실히 말씀하신다는 이야기시고

분명코 아버지 시대는 '물질'의 의미로

모든 것을 '소유'하려 몸부림치는 욕심의 상징인 '백향목'은 못가졌어도

내면적, 마음의 '복'은 한층 가까웠을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

 

 그렇다면 그 '복'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 포기하고 아버지 시대처럼 

마음이 편하려고 '가난한 자를 .. 궁핍한 자를... 포용하고 정의를 행하려 노력하면'... 

그게 '복'인가?

정말?

 그렇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세상에 보기 드문 '청빈함'을 추구하고 

타인을 위한 온전한 헌신의 모습을 보인

소위 '위인'들에게

그렇다면 '복'.. 이 있었을까?

쉬이 생각나는 '테레 ㅅ'.. '성ㅊ'....'김삿갓(알려나.. 요새 사람들이..ㅎ)'.....

그들 뿐 아니라 그 수없이 '청빈'하려는

'수도자'들.. '스 ㄴ'......들

과연 '잘 나갈까?.. '복'이 있을까?

 

 아닐 것임은 

우리는 너무도 잘안다. 

그러나 왜 주님은 '아버지 세대'의 청빈함을 예로 드셨을까?

'비교'하여 조금 더 나았을 행태에 대하여 말씀하심이고

'진정한 복'은

그 행함에 있지 않고

그 원리와 순서에 있음을 말씀하심이 맞다. 

 

" 잘들어라..

세상의 주하인들아..

주님의 아들들아...

 

 '여호와의 말씀'이시니

집중하고 들어라

네게는 

네 앞에는 '복'의 길이 놓여 있다 .

당연히도... 온전한 구원.. 온전한 천국의 삶, 영생이 네 앞에 놓여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다시한번 마음을 잡고 

복을 누려 보거라..." 하시는 뉘앙스로 들린다. 

 

그거.. 

무슨 말씀이신가?

나.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받았고

온전한 중생, 성화.. 

그리하여 '천국의 영생'을 기대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자고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복'임을 아는 자..........맞지 않은가?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런데.......왜 ......'복'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복을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한번 집중하거라 하심이신가?

 그 형통함.

그 형통함이 과연 내 현재의 삶속.. 

아침에 눈뜰때 여전히.......'고요'.......' 평강'......'샬롬' ......감사에 

항상 흔들리지 않고 유지 되어 있던가?
아니지 않던가?

매일 매사 매시 흔들리고 막힌듯하지 않던가?

복의 여부

형통의 어떠함의 여부를 떠나

난.. 복과 형통에서 잠시 떨어져 있음이다. 

막힘이고 답답함이다 .

그것..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로서

구원의 온전함을 아는 자로서는 아닌 거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한번 새기게 하신다. 

'형통함은

복'은 

'하나님을 앎으로'(그렇다.. 이게 우선이다.. 가장 기본이다. ..온전히 하나님을 앎.. 난... 앎에 대하여 확신이 있다. 그 앎을 알고 있음을 오늘 말씀을 근거로 확인하게 하시니 다시한번 고요해진다.  감사해지려한다.. 잔잔하고 초연함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신다. .. 그리고 내가 무엇을 어찌 해야 할 것인지 막연하지만 알것 같다.. 감사하다. 살아계신 내 하나님을 알고 살아간다는 이 사실이.. 진정 난... 복 가운데 있는 자다.  형통... 한 자 !) 흐르는 것이다. 

막히지 않는 것이다. 

 

 그 막히지 않는 마음으로 

이웃을 향하여 '정의'를 행하고 공의를 행하게 되는 거다. 

 

 그거다. 

복이라는 것은

막히지 않는 것이라면

막히지 않기 위하여 '모르는 것'이 없어야 한다 .

 

 하나님을 먼저 알게 됨.. 

하나님의 전적이신 선택으로 이루어진 '구원 백성'으로

감사함을 유지하고 

그 감사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흐르는

그 온전한 '범우주적 (요새는 다중 우주다.ㅎ.. 말씀으로 이루시는 주님 안에서 어찌 불가능할까?  제한하는 것은 우리의 한계지... ^^*) 에너지를 받아 

이 일상에서 

그 어떤 명령이라도 준행하게 되는것... 

그리함을 근거로

'이웃'에게도 '정의'와 '공의'로 변호하게 되어지는 것... 

그 상태가 '진정한 복' 가운데 서 있는 자의 현상이란 말이다. 

 

 즉.. 

형통이라함..

이곳 저곳 막힘이 없음은

하나님을 깊이 앎으로 ( 이 안다는 것의 깊이가 가슴에 온다 .. ) 

이 세상에 그 기쁨과 감사함을 흘려 보내게 되는 현상으로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천국보좌 에너지의 흐름으로 

자연스러운 뚫림이 

가슴에 느껴져 오게 되는 '삶'...

그게 '진정한 복'이 있는 자의 인생 아니겠는가?

 비록.. 

아직

'인생의 광야'..

'시험과 연단'에 있어도 말이다. 

 

 

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나.

왜 갑자기 이 '형통'함.. 잘나감.. .복 에 대하여 

이 아침에

살아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말씀으로 느끼게 하시던가?

 

 이 

당연히도 

잘아는 '복'의 원리에 대하여 말이다. 

 

 

나..

자꾸만 '과거의 특이한 칭송'.......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행보에 대한 감탄하는 자들의 박수갈채가 떠오르려 하고

한편으로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어이없는 안타까움이 

슬그머니 또 떠오르려 하였다 .

 

그런데....주님 안에서 깨달아 지는 바가 있었다. 

 

그마져 

하나님께서.........

 

그렇다. 

내 그러함...

내 그러하지 못하여 반대에 서 있어 분노케 하던.. 

내 어이없는 고민들..

그리고 어제 하루만 보아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살던 '날카로움'들의 근저에

'복'..'형통'함에 대하여 

잘 알면서 '적용'시키며 

감사하고 더 조심하고 

삶의 방향에 대하여 다시한번 더 옳은 곳을 틀어서 

하루를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깨달음이 왔던 차다. 

 

말씀을 붙드니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형통'을 보여주시고

형통하지 못한 내 일상의 태도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나... 복 안에 있으면서....(누구보다 더 깊이 ^^;...^^*..

복의 증상에서 벗어남은

또 탐욕 ,..의 영적 반대편에 흔들려 

눈 앞이 흐려졌음이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

너.. 

그런 자격있지 않은가?

복을 아는자.

형통함을 아는 자.

그 진정한 원리를 꿰뚫어가는 자.. 아니던가?

 더 이상

이 땅의 어이없음

과거의 '상처'라는 변명을 의지로 

타인에게 함부로 함으로 

'복'의 흐름.. 

형통의 막힘을 초래할 이유가 어디 있던가?............라심으로 

오늘 말씀이 다가온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모두.. 모두... 주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신것...

내 어두운 시절의 암울한 예측에 하나도 예상되어진 바 없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 안에 서 있는 것...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 안이었습니다. 

 

아.. 

그러니. ..

제가 형통하지 못할 이유,

복을 누리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꿰뚫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제가 오늘 해야 할 일.. 

제가 취해야할 스탠스가 

이렇게 뚜렷이 보이니

그게 형통이 아니겠나이까?

부디 바라올 것은

저도 모르게 '습관'으로 '성격'으로 굳어져

이해하지 못하게 순간순간 사로잡혀 버리는 

복없는 자의 행동이 있으려 할 시 

성령의 은혜로 깨닫게 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영적 반대의 세력들을 제거하여 주시며

하나님의 복 안에서 숨겨 주소서

아.. 

주님. . 골로새서 말씀처럼

제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감추인' 자로서 

제가 저 자신을 확실히 느끼게 하시어

오직 제가 해야 할 것......

주님의 형통을 막히지 않게 

하루 살아가게 하소서.

힘을 주소서.

흘려 보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능력을 주시고 

깨달음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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