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설령 그래도[레14:1-20] 본문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듣는 자는....
2.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나병 환자까지도 나을 수 있다 !
할렐루야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가능성 , 끈, 소망 !
각설하고
나병, 한센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이 이전에는 '天刑,천형, 하늘의 벌'이라고 불렸던 사실은 아는가?
구약 및 신약 내내 가장 많이 나오는 거북한 질병 중 하나가 나병이었다.
그것.
나병은 걸리면 치료제가 없이 몸의 부분 부분이 그냥 썩어 떨어져 나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 및 감각이 없어지는..
무서운 병이다.
최근에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있지만
치료도 잘 되어서 이긴 하다.
(의사나 약.. 모든 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당연히 ^^*
하지만 가끔 이 일반은총을 아무 생각없이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세상이 마음대로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하나님 따로 세상 따로 사는 니골라의 마음으로 살 때가 많다.
나뿐일까? ^^;;..ㅎ )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야말로 불치의 , 천형이라 생각되는
정말 무서운 병이 맞았다.
나 어릴 적 만 해도
꽤 많은 분들이 주변에서 눈에 띄였었고
그들이 옮기는 질병의 무서움에
항간에는 '어린아이의 간'을 먹어야 완치된다 하여
애들을 잡아 먹으러 마을에 내려온다는 헛소문들이 돌아
그들이 식인종이라도 되는양 질색을 하며
돌팔매질하며 쫓아낸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고 그 인생이 매장되는 그런 병이 맞았다. 이구..
각설하고
며칠동안 나병이 아니길 기대하며 초조히 판정을 기다리는
이레 동안의 시간동안을 묵상하며
아닐 때의 '옴이니, 대머리니' 기뻐하는
웃픈 실제를 마주하곤 했지만
거기엔 '나병'이 '천형'이라는 생각이 전제가 되었던 것이다 ㅠ.ㅠ;
오늘 , 비록 말씀으로 깨닫고 아차했지만
극소수의 자연치유되는 나병환우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했다.
그리고 그 약이 아닌 자연치유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전제로 했고...
하여튼 그들을 제외한 거의 전부의 나병환우의 절망은
말 그대로 이 삶은 이제 끝이라는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못하는 어둠의 극단
말그대로 지옥의 삶이었을 거라는
편견 (그렇다.. 그 안에도 그들의 삶은 또 시작되었고
소록도,나자로 마을등의 한센인 마을에는
믿음 깊고 더 순전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아.. 아내가 간호사로 나자로 마을 병원에서 근무 했었기도 했다.
책이나 선교사님들의 간증도.. ㅎ)에도 불구하고
오늘 '자연치유'에 대하여
나병의 자연치유,
치유된 나병환자의 삶에 대하여
그 안에도 있을 긍정적 가능성에 대하여 묵상케 하신다.
세상적으로는 그래도
영적으로 수지 맞고
행복할수 있을수도 있는... ^^;
그것...
무슨 의미일까?
그 시절, 치료제가 전혀 없던 그 고대의 시간에
절대 절망의 그 순간,
옴이니 대머리니 .. 라며 오히려 나병이 아님을 휴우하면서
오히려 감사해야할 정도의 그 절망의 순간에도
나병의 치유는 가능함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고 있으며
그 '희망의 끈'은
예기치 못했던 소망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던 자에 해당함을
오늘 말씀 묵상 과정에서 깨달아 지는 것이다.
그렇다 .
일반은총으로 허락되어진
현대의 약, 치료가 아님에도
치유가 일어날 수 있음은
오직 하나님 , 오직 주님 뿐이고
그 나병과 연관된
수없이 많은 의문과 궁금한 이유(왜 , 언제, 이후 어떻게... ???? ) 에도 불구하고
이제 소망이 생긴 것은
오직 하나님을 붙듦에서 시작됨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이 말씀과 연관되어진게 무엇이 있을까?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심이신가?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것.. .
삶을 불편하게 하며
도저히 하나님 말씀처럼 살지 못하게 막아서는
너무 오래된 구습의 흔적들,
터부 ...............
그래서 비록 하나님을 의식해서
드러내어 마주하지 못하고 의식 깊숙이 꽁꽁 숨기려 했지만
반드시 헤어나와야 할 '절망'같은 , 영적 나병을
마주하라 하신다.
그래..
옴이니 다행이고
비록 대머리니 다행이라 휴우하고 끝나면 되지 않을 부분들이
나 ,
어쩌면 좁은 길 가려하는 많은 분들에게
어느 순간 마주해야하는 두려움일 수 있단 말이다 .
하지만.. .
설령 '나병'같은 상황이어도
그 좌절, 어두움, 끝의 예상, 예기 불안 ... 그 어떤 일에도
하나님 안에 서 있다면 절망은 없다 .
그것 , 오늘 말씀하시고자 하심 같다.
설령
그렇다 .
설령 나병이어도 절망은 필요없다
치유될 수'도' 있다.
소망이다.
끈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절대
끝
절망은 없다.
그것을 잊었었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또 다른 부정적 생각이 있다 .
나아도 , 감염력 없이 음성 나환자가 된다 해도
이전에 벌써 상한 신체는 어찌 감당할까?
그것..
너무 아프면 그 후의 회복은 나른한 기쁨이고
산통후 제왕절개 상처는 별 아프지 않은 것 처럼
한센인 마을의 하나님 사랑이 더 순수하고 맑은 것 처럼
그 때는 그때의 다른 기쁨이 분명코 존재하리라.
모두.. 지금의 눈에서 바라보니
회복후의 일상이 걱정이 되는 것이지.. .
살아보지 않은 미래는
하나도 걱정할 것 이 없을 것이
삶의 경험에 의하면 그랬고
그때 그때 임하셔서
그날을 감해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위로로 느껴지는
오히려 행복함
그렇다.. 정말 오히려 기쁜 날이 유지가 됨을
너무도 뚜렷이 체험 했기에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거 같다 .
오늘 말씀의 레마는 이런 것 같다
아직도 남아서 스물거리려는
이 오래된 영적 나병의 흔적 같은 부정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매일
주님 안에서 깨닫고 생각하면
절망만 있을 일은 전혀 없으며
거기에도 소망과 행복과 기쁨이 있을 것이란 것이다 .
그리고
그 모든 것,
하나님이 허락하신 뜻 가운데서
나의 선택이 어우러지며
그러한 결과 까지는 갔지만
넘어지더라도 붙드실 것이고
반드시 피할 길을 예비하심이시란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나와 하나님, 주변의 모든 것이 합력되어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신 결과물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비록
내 인식의 오류로
현실의 문제로
나병같은 상황에 있을 힘듦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아도 될것이라신다 .
오늘
말씀에서 '영적 나병도 완치가 될것'임이 확실하다고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비록 이레의 시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어쩌면 필요할 지라도
말씀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기다리면
또 다른 ,
육적 손해 이외를 넘어서는 다른 놀라운 결과를 체험하게 될 것임을
넌지시 말씀해주시는 것 같다 .
그렇다.
모든 '은혜'와 '응답'의 기준이
단지 이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니
그게 절망이될 수 있고
심지어 '나병의 회복, 치유'도
그 남아 있는 육신의 손괴 문제에 매달리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진 '치유의 기적' 마져 별거 아닌 것 처럼 되는 것이지
눈을 들어
하나님의 나라,
이 지구를 넘어선 우주로만 나가도
이 땅의 고민들이 그처럼 작아지는 데
영생, 영원, 천국까지
하나님의 뜻가운데 영혼이 확장이 된다면
'나병'의 고난도 실은 잠시고
치유와 회복과 그 후의 문제는
내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가운데
확실한 지표석이 되는
어떤 다른 의미가 되지 않을까?
내가
어찌 이작은 내가
주님의 뜻을 헤아릴까?
단지. .. 그래도 지혜밝은 소경의 코끼리 만지기지... 하나님의 은혜로..
참..
깨달아짐이 감사하다.
말씀 안에서 날로 새로워지는 생각의 영역 만 가지고도
난... 복을 받은 자가 분명하다.
할렐루야.
주님.
주님은 아시오매
제 안의 진득한 터부들, 그 안에 도사린 벗어내기 힘든 잘못된 생각들이
너무도 오래있는 게 있어
마치 '영적 나병'처럼 느껴질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주여.
그것.. 아닐 수도 있사오나
원치 않는 시간에 불현듯 제 영혼의 지성소에서
주님의 말씀 대신 급박히 제 행동을 촉발하는
깨닫지 못하던 오류들이었습니다.
주여.
말씀 가운데 많이 빛으로 비추고
기도로 제하여 냈으나
아직도 깊이 그리 되어 있는
어쩌면
거룩하신 주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아
꼭꼭 무의식 깊이 누르려 하고 있었사오나
주님.. 그 불가능할 것 같아 누르고 있던 것..
그 영적 나병마져 '치유와 완치'가 가능할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쉬이 드러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내 속의 그것은
'회복'되면 무엇해.. 벌써 상처가 그리 그득한 것을.. .하며
힘이 빠지 게 하려 합니다.
주여.
그러나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겨우 이 땅...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이 이전의 내 잘못으로 인한 이미 흐트러져버린 상처의 흔적들은
그래도 주님의 시간, 주님의 뜻 안에서
다른 '감사'함으로 바뀔 것임을
말씀 가운데서 다시 깨닫게 됩니다.
주여.
나병마져 회복시키시고
나병 안에서도 행복이 있게 하실
유일한 끈이시고 길이신 우리 주님.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홀로 영광받으소서.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 2010.08.27 이 어려운 구절에도 지속적인 은혜가 있었네요 ^^*
진영 밖의 그 시간
적어 보여도
우주를 떠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시다
하늘 지축을 흔들 고민도
우리 주께서 정하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가 하듯 사라지고야 말리라
세상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이루고야 마는 것은
주님
그 전능하신 분이 계시기에 그렇다
내 삶은 곧
온전한 정결함으로
거듭 나게 될 것이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주여.
이 죄인에게도
그리 일러 가르쳐 주실런지요?
3. 제사장은 진에서 나가서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문둥병 환처가 나았으면
문둥병이 나을까?
문둥병으로 오인받던 자들이 아님을 받고 정결하다 선포 받은 것을 이야기 하실 까?
문둥병이 낫지 않는 다는 것은
현대의 육신의 눈만 밝아진 어줍잖은 의사의 소견으로는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빨간 불만 켜져 있는 나병,
그러나 주님 예수님께서도 낫게 하셨고
여기서도 나았다고 나온다.
나을 것이다.
영적인 나병 비슷한 증상,
불신의 영적 나병도
주님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을 것이다.
이게 '레마'인가?
지병..
나을까?
믿는가?
문제는 나았다고 다 끝은 아니다.
완전한 나음은 시간이 더 걸린다.
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에 들어 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칠일을 거할 것이요
나았다고 판정 받은 자를 물로 몸을 씻긴다.
그러면 '정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진 밖에 일주일 거하게 하고
8일째 속죄제 및 번제를 드린다.
20.제사장은 그 번제와 소제를 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속죄제와 번제 및 소제를 드리고 나서야
그는 완전히 정결해진다고 나온다.
문둥병이나 문둥병 유사 피부질환이
일주일의 격리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두려움 속에 있다가
드디어는 '정하다'는 판정을 받고서
완벽히 정결해지기 위한
또 얼마간의 시간 동안 행해지는 여러 기다림과 행사를 묘사하고 계시다.
이 시간 ,
만일 당연히도 건강한 자들이라면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얼마나 희망의 시간일까?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시간이 아닐까?
grace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시는 아침의 바람이 싱그럽다 하신 답글을 보며
'은혜'를 체험한 자들 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에 대하여
나까지 마음이 들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
그 청명하고 맑고 신선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들의 시간이 아닐까?
이 기다림의 시간이 아닐까?
묵상은 '이 회복된 나병환자'에 집중된다.
나병환자 같은 영적 질환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개개인의 경중도는 다르지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자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영적 나병이 될 가능성이 많은 죄를
느끼지도 못하고 방치하고 떠도는 세상의 수많은 불신 나병환자들이 불쌍하다.
또한 '유사 나병'이 있으면서도 자신은 죄없다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영적 둔감 증'에 걸린 기독교인들은 또 없나?
'상처'를 이유로 더 큰 아픔을 느끼는 '영적 유사나병' 환자도 있다.
문제는 고통을 느끼면서 '정한' 치유의 시간을 가지는게 나은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치유내지 정한 판단의 기간 자체를 부인하고 사는 게 나은가이다.
심해서 더 고통을 느끼는 것 보다는
덜 심해서 덜 고통을 느끼지만
그래도 정한 판단을 위한 치유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모든 이에게 낫지는 않을까?
나.
고통도 심하고 정함에 대한 욕구도 크다.
때로는 정결해지고 있는 내 과정이 너무 사랑스러워
G님의 그 산들거리는 바람에도 감탄, 감탄을 금하지 못하다가도
내재해 있어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는
그 지독한 죄악의 욕구,
버리지 못하는 그 죄의 욕구에 치를 떨면서 흔들리는
자신이 안타까워 고통이 심하기도 하다.
오늘 묵상은
정하다는 판단하나로 끝나지 않음이 희망적이다.
그런 아픔,
그런 고통은
"왜 아직까지 내가 정결하지 못하지?'라는 초조함이 더 증폭시킬수 있다.
그러나 더욱 정결해지기 까지는
팔일 까지의 진영 밖에서 홀로 거처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속죄제'와 다른 제사를 지낸 후에야 정결하다 하니
그 과정이 김을 이해한다면
자신의 죄와 고통의 지리함이 한편 위로가 된다.
아직은 '더 ' 나가야 한다.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은 '희망'이다.
하나님이 날 더 어루 만지는
더 기다려야 하는 시간,
힘들지만 상쾌할 수도 있는 시간.
그 후는 완전 정결.
참 힘이 들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매일 은혜에 거할 수 도 없다.
지지는 않지만 풀리지 않는 어떤 끈이 있다.
어쩜 그 죄악의 끈은
내가 풀길 그처럼 원하여도
상황이 허락지 않을 때도 있다.
오래된 습관의 정서적 흐름은
틀을 깨기가 쉽지가 않다.
비록 이전에 비하여 너무나 많은 영적 맑음으로
스스로 생각해도 '정하다'는 느낌이 들을 지언정
실패한 것은 실패한 것이다.
자칫 깊은 좌절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이럴 때 내가하는 행동양식은 뒤로 물러섬, 가만히 있음, 시간이 지나감,
주님의 말씀에 둔해짐, 도피..........였다.
하지만, 오늘 묵상에
칠일 간의 '영 밖 독처'가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가만히 내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온갖 되뇌이던 그 수많은 생각을 이제는 끊어 버리고
주님이 인도하시면 그 어떤 것도 감내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지금껏 정해져 온 과정을 보아
더욱 정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홀로 가만히 주님의 뜻에만 집중하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외롭다.
어쩌면 남들은 전혀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아도
세상에 열심히 적응해가며 사는 데
나는 이게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다.
그들은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영적 나병 환자일 수 있다.
고난 고통은 돌아보면
오히려 기쁨이었고 평강이 더 깊어지는 도구였었다.
그를 통하여 많은 분들이
내 경험을 통하여 은혜 받고 ,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회복이 되기도 하고
영적 최전선에 있던 몇 선교사님이나 목회자 분들도
강한 영감으로 깨닫고 가신 경험도 고백한다.
나.
나 혼자로 만 생각하면 이 고난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고난...
끝나지 않을 듯한 이 조금은 가벼워진 고난이
'진영 밖의 외로운 ,
그러면서 정결한 판정을 위한 약간의 더 기다림'일 수 있다.
그렇다.
그러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기쁨이다.
과연,
이러한 이들의 시간이 나에게도 올수 있을까?
죄송하고 안타까운 하루지만
의미있는 영적 일주일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나..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만 보고 기다리리라.
적용
1. 기다린다.
초조해 할 이유가 없다.
2. 그래도 주님만 본다.
3. 외로움은 진영 밖의 시간이다.
외로움이 외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축복이 있다.
4. 성경 세장 읽겠다.
5. 이런 나에게도 이들의 시간이 있을까?
여쭙자
기도
주님.
놀라우신 주님.
말도 못하게 죄 덩어리 이 죄하인.
주님.
그러심에도 이 어려운 레위기를 통하여 말씀을 허락하십니다.
희망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 오히려 희망인 그 시간을 묵상케 하심니다.
감사합니다.
끝날 줄 알았던 죄의 속죄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지만 그 시간조차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절망에 빠질 뻔 했습니다.
저요.
하지만 희망이 소롯이 돋음을 느낍니다.
주님.
저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주님.
주님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전능하신 하나님.
그 세심하신 하나님.
매일 같이 살아계셔서 정확히 짚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절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냥 .. .기다립니다.
주여.
아픔.. 다 내려 놉니다.
예수 앞에 그리합니다.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이 죄많은 죄인 정하다 하소서.
정결하다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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