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또또 (눅9:51-62) 본문
(눅9:51-62)
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굳게 결심'하셔야 했다.
하물며 인간인 내가 , 또 그 누구도
굳게 결심해야할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고
의지를 드려야 할 시기가 오지 않겠는가?
삶이 꼭 평탄하길 기도하는 것은
어쩌면 치기어린 어린 신앙이거나
미련한 자의 소치가 아닐까?
아니면 포기된 자........ㅜ.ㅜ;
반면 , 굳게 결심해야 할 상황은
'소명'에 부딪칠 때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오셨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결심을 하셔야 하실 수 밖에 없는 시기에 오신 것을 아신 것이다.
그 소명은
우리가 다 알듯
'십자가'에 달리실 그 엄청난 고통이고
그것을 '육화'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그 고통을 두려워 하시는 것이시다.
그러면서 그 엄청난 고난 앞에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소명'을 준행하실 것을 결심하시는 것이시다.
나.
나 뿐 아니라 선택받은 소수에게 하시는 말씀,
' 결심하고 행하여야 할 때에는 그리해라' 다.
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또..
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또,.. 가 또 나온다.
그 분의 결심,
그 분의 어려움에 상관없이
세상의 일로 '제자'들은
그 분의 가슴을 짖친다.
그게 '또'고 '또'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세상은 전혀 상관없이 밀려와
또 긁고 또 연단의 불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그들의 그 비정함과 어리석음에 '화'가 날 수도 있는 일들이
또 몰려오고 또 몰려온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함은 '분노' 나 '좌절'이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상황에
'소명과 현실 '사이에 처하면
우리는 '우울해 져' 자칫 ............ 위험에 있게 되지 않을까?
또와 또가 의미 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어제 금요예배.
목사님이 역시 명쾌한 설교를 하셨다.
'소명과 사명'에 대하여
소명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결심을 하는 것이고
사명의식은 '내'가 결심을 함으로 어떤 것을 해나가려는 ' 것을 의미한다시며
소명과 사명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냉랭해지거나 방만해지기도 하는 등 위험성이 있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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