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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내 약함 아시는 주님(눅8:26-39)

주하인 2012. 2. 12. 23:58

(눅8:26-39)

 

때론

혼란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어둠의 생각 들은

숨 쉴틈도 없이

한없이 날 몰아세우고   

 

살을 에는 아픔은

한겨울 바람처럼 

끝없이밀려 왔었습니다

 

그러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었습니다

 

빛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어두움이었지만

그 빛은 밝았습니다

 

바람은 몰아치고

눈발은 날랐지만

이제 그것은

단지

추움 만은 아니었습니다.

 

외로움

그것 만도 아니었습니다

 

빛 아래 그것은

휘날리는 아름다움이었고

자연의 흐름이 만드는

궤적의 향연이었습니다

 

이제

약함은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었고

곤란은

단지 괴로움 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또다른 축복이었고

내 강함을 위한

하나님의 손드시는 축복이었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런 깨달음 허락하시고

내 영혼 깊숙이 평강을 주시는

그 사랑이

한없이 기쁩니다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주님이 과연 몰라서 물으셨을까?그 전지하신 분이? 그렇다면 왜 그러셨을까?스스로 '신적인 능력을 제한' 하심이고 그러함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기도하기를 바라시고 그러하심은 주님의 우리에 대한 기뻐하심  '기도'와 묵상을 통한

대화하는 동행..이신 것 같다.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아침 식탁에서 아들이 제시한 의문점.

귀신들이 돼지에 들어가기를 허락하시었다고

허락하시면 그 돼지의 주인이 입어야 할 '손해'에 대하여서는..

 

 맞다.

그러나 살다보면 온통 온실의 훈풍 뿐이던가?

그 손해를 허락하신 일..

이유야 우리가 어찌 다 알겠고

어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일히 다 이해시키실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베이스는

주님을 믿는 자에게는 모든게 '선'이란 것이고

그 돼지의 주인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면

그것을 통하여 반드시 선한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란 것이다.

 

 금요일 .

당직을 마치고 일찍 가는 날이지만 갑자기 생긴 두분의 응급 수술 후

아내를 입원 시켰다.

원래 삼성 병원에서 작년 2월 16일에

뇌 정맥류를 수술 한 후 일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라서

체크를 받으러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침 제약회사 개최 세미나를 가려 02.11에 대관령 모 리조트에 가려던

계획을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은 듯하여 취소하고

본원에서 그냥 아내의 뇌 동맥 CT  체크를 받으면서

3년전 부실하게 된 대장 내시경 검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사전에 코리트 산이라는 내시경 전 처치 약물의 힘듦을 익히 알 던차

휴가 낸 감에 나도 대장 내시경을 같이 해보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미리 병원 원무과에 얘기하여

아내를 하루만 2인용 병실에 입원시키면서 나도 같이 거할 것이니

다른 환우를 입원시키지 말라고 했다.

그러기로 철썩 같이 약속을 했으나

최근 갑자기 늘어난 입원환자의 폭주로

병실이 없다며 아내의 옆자리에 신경외과 환자를 집어넣어 버렸다.

나.

할수 없지 않은가?

나보다는 병원 사정이 우선이지..

 

그 환우는 의학적으로는 일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격렬한 요통을 호소하며

급히 입원한 바 믿지 않는 분이었다.

62살의 차분하신 여성분..

가정적으로 이리 저리 환란이 많은 듯.

아내..가 누군가?

아내의 열정적 믿음에 나도 여기까지 이끌려 오지 않았는가?

시간 만 나고 기회만 되며 절절히 전도하고 기도하는 여인이다.

기회다.

그분.

아내의 선한 말투와 우리 부부의 스스러움 없음,

나의 의사로서의 신분...

나름의 차분한 열정에 마음이 열렸던 모양이다.

우리는 가능성을 보고 퇴원을 했다.

다음날..

다행이도 우리 부부 모두 건강한 대장과 아내의 잘 된 수술 결과의 소식을 가지고..

 

 그 분.

허리가 갑자기 아파서

또 어찌 갑자기 환우들이 많아져서 우리 방에 같이 입원하게 되셔서..ㅎ

영생을 얻을 기회를 얻지 않았는가?

  아내와 절절한 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병실에약이 부도(?)난 불편을

감수당하고 '전도'의 상급을 얻지 않았나?

마음은 얼마나 좋은가?

 

정말 축복이

이인용 병실을 특권처럼 혼자 쓰고

아프지 않은 허리로 예수님 안 믿고 조금 잘 살다가 죽는게 축복일까?

 

돼지 주인.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다른 '선'을 얻을 '기회'를 얻지 않았겠는가?

하나님의 원리 안에서?

 

그게 믿어지는 게

진정 축복임을 느낀다.

어떤 상황도 주님이 다 '선'으로 이끌어 가실 것..

아직 나에게는 그리 큰 고난이 없어선가?

어찌되었든 마음이 그리 열려 감은

그게 하나님의 선한 원리 중의 과정이라 느낀다.

점차로...

 

 

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가 회복된 것을 보고 오히려 '두려워 한다'

왜일까?

이것도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의문점 아닌가?

 

좋은 일을보고 두려워 하다니..

사람들의 '인식'의 허술함.

그들의 감각의 이상함에 대하여 난 정말 놀란다.

 

내 진료실.

사진을 몇차례 올렸지만 여기 블로그에 올린 시와 사진을 조합하여

시화로 만들어 인화하여 잔뜩 걸어 놓았다.

그런데 환우 및 보호자로 오신 분들 중에 거의 90%는 그게 거기 있는 지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정말이다.

그리고는 나중에 보시라 권유하여야 그제야 깜짝 놀라며

언제 이게 여기에 있었느냐고 놀란다.

 

사람들.

그들의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바라보는 것.

정말 위험한 일임을 다시금 느낀다.

 

 성경은 이렇듯

정말 인간의 세상사 흐름이 그대로 다 실려 있다.

이게 '신화'나 우화라고?

아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하나님이 그 살아 있는 우리의 경험을 그대로 인식하여

그 오류를 고칠 방법을 여기에 담으셨다.

성령의 체험을 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예'를 드시고

우리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여

아주 아주 적당한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그날 그날 말을 걸어오신다.

그리고 그 묵상에 감응하면 그때부터 말씀은 하나님의 소리로 바뀐다.

'주하인아..........네가 이리 이리 해라'

아니시면

'주하인아.. 네가 그리그리 했구나... 참 힘들었겠구나'도 아니시면

'주하인아.. 오늘은 이리될 수 있으니 이리 하는게 좋겟구나..'하신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내 심령이 받아들일 상태가 되지 못하시면

때론 가만히도 계신다.

그리고는 여러차례 반복하신다.

들어주시고 공감하시고 기다리신다 .

그게....신비다.

그러시면서 어느새 내 영혼의 지성소에 깊게 자리 잡으시며

말을 걸어 오시기도 한다.

 

오늘은 수영을 하였다.

오후 예배까지 마치고 다섯시 반에 하기오스 연습이 잇다하여

한시간 정도 수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갔다.

가는 길 내내 정말 상쾌한 날씨다.

청명한 하늘.

차가운 듯 시원한 바람.

수영장 물속에 뛰어 들어 가니

오늘 따라 풀속이 깊이 다 들여다 보이며

사람들의 몸 움직임이 그리 사랑스럽다.

' 주하인아..  살아 있음이 보이니...' 하시는 듯 하다.

그럴 때 그런다.

'예.........감사해요.'

'왜 '

' 혼자 있지 않게 해주셔서요.'

 '아..'

' 이렇듯 아름다움을 볼 수 잇는 눈을 주셔서요..'

' ^^*'

그랬다.

그리 느껴지고 세밀하게 소리가 머리를 공명하는 듯하다.

아마도 물속이라 내 '음~파~'하는 잠시의 머리 돌림 속으로

슬며서 비치는 미소를 누구도 보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난 그랬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동행하려는 자의 기쁨.

내밀한 '빈 곳'을

일상의 삶에서 하나하나 깨달아 가며

하나님의 그 깊은 뜻을 알아가는 자의 설레임.............!!!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예수님을 좇으면 좋지 않을까?

당신의 위업을 세상에 보이는 도구도 되고....

그런데 예수님은 일상에 돌아가라 했다.

그리고는 '그 큰 기적 행하신 예수님'을 전파하라 하셨다.

 

나.

한동안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힐 시절.

선교도 나가고 싶고

수도자도 되고 싶기도 했다.

삶이 나를 붙들어서 ,

자식들이 불쌍하고 아내가 이뻐서 ^^;; 그런 갈등을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면서 처음엔 그렇지 못하는 내 자신이 추악해 보이기도 하고

삶속에 부닥치며 살아가는 게 조금은 미천한 믿음으로 보인적도 있다.

이제,

말씀을 묵상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다 목회자고

누구나 다 스승이고

누구나 다 은사자냐.........라 시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나.

내 삶에서

내 진료실에서

내가 가진 회복의 경험,

특별히 말씀으로 인도 받아가는 자의 경험을 통해

틈나면 전도하고

내 신앙일기,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정해 놓은 내 블로그를 통하여

세상, 이 주인잃은 가상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귀한 일들을 소리 높이려

노력 만은 하고 있다.^^;

 

오늘 오전 예배의 담임 목사님의 설교

오후 찬양예배의 존경하는 P 부목사님의 설교

심지어는 극동방송 K 교회의 '석' 목사님의 눈물 어린 설교 등의 공통 주제가

하나님 앞에서 약한 자의 강함이었다.

 

내 약함.

내 부족함.

나의 이해할 수 없었던 부족한 경험들.

모든 부족함들이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은혜로 , 성령으로 깨어지면서

서서히 세상이 꿰뚫어져 보인다.

세상을 통한 의혹들이 말씀 앞에 하나하나 이해가 되어지니

세상이 점차 희미해져 간다.

점차로 세상은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강해져 보인다.

참..........희한하다.

말씀이 그대로다.

'약함'이 '강함'이다.

 

 

진정 할렐루야 지 않은가?

 

나.

수주 전에 '내일 부터 목요일까지'  휴가를내 놓았다.

'사랑의 동산'에서 하는 '영성 훈련'을 교회에서 모집하여 신청했다.

Tres dias

삼일이라는 카톨릭 영성훈련을 개신교에서 '영성'을 사모하는 분들이 도입하여

아주 여러 분파- 한국 사람들의 특징 !!!   -가 시행하며

갖은 시행착오를 겪는 프로그램이지만

나름 장점이 많이 있고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가 '수도적 영성생활, 밝은 빛'을 좇던 교회이기에

영성 생활에 대한 사모함이 나에겐 늘 있다.

그게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바이지만

치우침이 옳지 않을 뿐이지...

 아마도 일체의 외부 연결은 되지 않을 듯 싶다.

그 기간 동안......

본의 아니게 이 블로그에는 접속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이 된다.

 

늦은 시간.

오늘도 그냥 혼자만의 말씀으로 가지고 갈까 하다가

말씀 사모하시는 귀한 분들의

적은 (?) 궁금증을 해소 위해

들렀다 가게 된다.

 

 

 

기도

 

주님 .

놀라우신 하나님.

모두 하나도 어긋남이 없으신 내 하나님.

오늘은 의문점 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약함을 기뻐하는 '눈',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 강한 눈으로 볼때

해결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의문을 통하여 주님은 당신의 메시지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계속 설교를 통하여

답을 십게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주님.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수없는 곤란,

돼지 주인의 억울한 물질적 손해같은 현실의 손해들.

어찌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아픔들.

오래된 상처들.

좌절,

심지어는 말씀의 귀신 예화처럼,

영 깊이 감정적으로 타격을 받아 생기는

되풀이 되는 중독적 문제까지도 하나님은 '선'으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는 알고는 있지만

진정 그 상황에 부닥칠 때,

아니... 지금껏 마음 고생해왔던 그 상처들의 표독스러움 보다 더 강렬한 힘듦이 부닥칠 때

지금처럼 '주님 나 다 이해했어요' 할 지

아니면 또다시 잊게 되고 고민할 지 자신은 없지만

이제 확실한 것은

주님의 뜻은 '선하심'이심입니다.

그것을 점차 깊이 영혼에 박아 넣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점점 세상의 무게는 가벼워 가고 있고

점차 점차 자유로운 삶이 되어 가고만 있습니다.

주여.

내일 부터 영성 훈련 갑니다.

지금까지는 제 어려움, 약함을 통하여

제가 주님을 떠나지 못하는 도구로 삼으셨다면

이제부터는 진정 깊은 체험,

주님 때문에 살아가는

우선 순위가 주님이 되어가는

진정한 믿음이 제 깊은 곳에 자리잡는

그런 교정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저로 인하여 제 주위가 조금이라도 더 주님의 향기로 채워졌으면 합니다.

주님의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힘있는 삶을 사는 자되길 원합니다.

주님 땜에누구든 용서하고

나 자신도 깊이 받아 들이는

정말 깊은 나를 만나길 원합니다.

나는 약해지고

주님은 내 안에 강해지길 소원합니다.

지키소서.

지금껏 그러하셨듯

또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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