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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딴소리 들을 소리[욥22:21-30]

주하인 2014. 8. 6. 11:46

그게 딴소리 인가

그게 들을 소리이던가

 

그게 받을 소리던가

혹 그게 받지 안아도 될 소리인가

 

모든 것

내 안에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광명이 비치게 되고

 

또 그리 인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유지 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들을 소리요

받을 소리가 맞으리라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아멘..

아멘이다.

정말 귀하고 힘이 될만한...^^;;.. 소리다.

 

그런데 그게 왜 힘이 안될까?

하나님 말씀인데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시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던가...ㅠ.,ㅠ;;

 

정말 힘이 들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가며 위안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

정말 귀한 행동인지 알아

없는 힘을 짜내고

굳어 버린 얼굴을 풀어가며

억지로 '아~멘' 하고 대답하지만

그들이 돌아가고 나면

가슴 깊이 남는 무게는 웬일이던가?

어쩌면 그들이 와서 신앙적으로 너무도 그래야되는 멋진 말을 했지만

그게 가슴 깊이 들어오지 않아

오히려 '자신의 신앙'에 대한 '회의'와

그들의 그러하고 할 일 다한듯 가버림에 대한 ' 아쉬움'등이 가해져 

그런 거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찌 하여 위로가 되지 못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더가?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난... 오직 이땅의 것만 관심있고

오직 세속적인 것에 의하여서만 영향 받고

하나님의 나라, 그 생명의 말씀은 받아 들이지 못하는

영적으로 미숙아 던가..

 

이런 생각이 어쩌면 사단의 입술을 타고

우리의 영혼을 휘몰아 치게 만들기에 그런 거 아니던가?

 

말씀이 말씀이 되기 위해서,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 것인가?

 

우선..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성이 그를 완전히 넘어서는 정도의 성화가 이루어지면 되리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내게 흔들림없는 경지가 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것.. 누구나에게나 다 똑같은가?

태어나면서 부터 '대학생'인 아이가 있는가?

태어나면서 세상 모든 것을 다 경험한 늙은이처럼 다 안다해도

그 아이의 나이에 버거운 정서를 세상이 받아 들일 것인가?

징그럽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선 '나'의 문제이다.

같은 소리. .

위의 구절처럼 너무 귀한 소리를 들어도

영적으로 낮으면 '헛소리'가 될 것이고

높으면 ' 한소리 또 듣는 잔소리'의 가능성이 될 것이고

그런 교만함을 넘어서는 성장,

성령의 내주 합일되어 가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의인' 일(... 인.. 이 아니다... ) 욥 님 마져 저런다.

저런 말에 힘들어서 '발끈'하신다.

고난이 길어지니 말이다.

어쨋든

욥에게는

그 소린 들을 만한 상황의

들을 만한  소리가 될

자격이 아직 없었던 모양이다 .

 

 반면, 친구 엘리바스의 입장에서 저런 소리 하는 것은

지금, 장기 판 훈수 나 구경꾼 같은 입장의 우리가 들으면

'미련한 자' 같이 들린다.

왜 저리 대단한 소리가 그런가?

 

 생명력이 없어서다 .

남에게 힘이 되어 그의 원기를 돋구고 자라게 할 만한 '소리' .

진정한 위안의 소리.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의 입을 통해서 대신 한 소리.. 말이다.

그 소리는 '들을 만한 자'에게 하는 들을 만한 소리가 되어야 한다 .

즉,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의 상황과 그의 수준에 맞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

욥이 과연 ... 그런 심적 기력이 남아 있던가?

온통 망하고

온통 병이고

온통 고난 뿐인 그에게

친구인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랑 하고 있다 .

즉, 상황에 맞는 소리가 아닌

영혼없는 잘난 체일 뿐이란 이야기다.

들을 만한 소리가 아닌

전혀 뜬금없는 '딴 소리' 인 것이다.

 

 나.

나에게는 그런 소리하는

어이없는 일이 없던가?

가만히 지켜보고 마음으로 공감함이 당연함에도

'가르치려는 ' 교만의 발로는 없던가?

안타까움을 가장한 나타내려는 지식욕은 없는가?

 

혹여..

타인의 소리에

발끈.. 하거나

좌절 .. 할 일은 없던가?

 

오늘 그렇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 입에서 '딴 소리 ' 나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

타인을 공감하려 노력해야 하고

가능하면 말을 줄여야 한다 .

정말 필요한 자,

말씀으로 중심잡음이 필요한 때가 아니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아야 한다.

 

또, 나의 생각에

나보다 한참 영적으로 부족한 자들의

그럴 듯한 소리에 대하여

과민하게 반응함은

내 교만함일 수 있다 .

내 부족한 영적 성장의 반영일 수 있다.

내 어려움을 이해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서운함일 수 있다 .

그것 . .모두 '사단'이 기뻐할 일들이다.

 

헛된 소리가 아니고

들을 소리를 하는

 

버릴 소리가 아닌

받을 소리로 받는

하루가 되길 소원해보자.

 

 

주님.

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말 수준,

아닌 공해 수준으로 넘치게 하는 세상입니다.

이때 주여... 주님의 공감으로 저들을 공감하여

말대신

위안의 따스함으로 그들을 보게 하시고 보듬게 하시사

제게 성장하는 영혼의 시간을 허락하소서.

주여.

어이없는 위안을 무시하는 교만함을 내리게 하시고

설령 그래도 받아들여

들을 만한 소리로 듣게 하는 귀도 허락하소서.

내 주여.

오늘 모든 것 주님께 맡깁니다.

 

특별히

병원에서 듣지 못할 소리

들을 가치 없는 소리라 생각되는 일로

요 며칠 흔들 거리려 합니다.

주여.

당신의 은혜와 십자가 보혈로

절 씻고 감싸서

하루를 건너게 하소서.

내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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