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도리어 [욥 23:1-17] 본문
세상에 홀로 떨어진 듯 외롭고
어두움 곧 올 듯 두려워지려하며
그들 만의 이해 속에
홀로 속상하려 할 때
나
주님 보리라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심령에 느껴지지 않으실지라도
나
눈들어 하늘 보리라
나
눈감아
내 안의 주님 갈구하리라
주님
답하시리라
이제 곧 주님
날 안으시리라
그때
나
빛을 보게 되리라
삶
내
이 답답한 매일에서
도리어
강하게 비취는
주님의 영광
보게 되리라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도 세상에, 불합리에, 불신앙 같은 겉 신앙들에게 ...
이리 대답하고 싶다.
2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너희들은... 이리 .. 이리.. 해서 잘못이다. '
현재
수도 없이 많은 '버거움', '어이없음'.. 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그 인내를 기뻐하며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겨우겨우 '예수님 '만 바로보고 여기까지 오니
그 마음의 근심과 현실적 어려움 대신
'하나님의 이루심'을 많이 목도했다.
체험하고 내 앞에 열매로 이루어 놓으셨다.
그러나, 또 비슷한 상황이
내게 계속 도래한다.
이해하려 해도 '반항하는 마음'이 올라와
나를 근심하게 한다.
그것.. 생각이 많이 뒤엉키려 하여
재앙처럼 느껴지려 한다.
다행이도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이리 읽어주시니
내 콧 속을 통하여 뜨거운 바람처럼
분과 노와 화로 올라오려는 열기가 빠져나감을 느낀다 . ^^;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억지로 힘을 내
그래도 주님 앞에 나갔다.
집중되지 않는 마음을 부여잡고
예수님을 연상하고 그 앞에 하소연하려 하였다.
이전 처럼 많은 혼돈의 생각이 날 가로막지는 않는다.. 다행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간다' 는 표현이
참 가슴을 공감으로 일렁이게 한다 .
엊그제도 자전거를 타고 가며
홀로 중얼거렸다.
'주여.. 쟤들이.. 저 들이.. .그냥두지 말아주세요.. '
그러함을 성경에서 목도해왔기에
다윗이 그러하심도 알기에
욥님이 친구들의 어이없음을 하나님 앞으로 돌려서 그러기에
그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그러하는 마음이 읽혀져
나도 그랬다.
'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그의 처소에 나갔다.
솔직히 '하나님이 깊이 임재하심'을 비전으로 보았으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
그러나, 눈뜨기 싫은 고요가..
그 순간,
그리고 나서 기도하는 시간에 자주 찾아오심을 느끼며
그나마 하나님을 발견하는 기쁨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듯하였다 .
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내 조금 어린 영적 상태일 때는
주님은 기도하면 놀라운 은혜로퍼부어 주시던가
깨달음으로 팍팍 꽂아 주실 때가 많았고
담배가 끊어지고 눈물이 쏟아지고 불면증이 없어지고...
현상도 많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조금씩 커가는 영의 상태가 되어가며
하나님은 모습을 덜 드러내시는 듯하고
잔소리 처럼 늘어나시는 가르침들의 시간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오랜 버거움을 견디고
난...
하나님이 감성적으로만 다가와
늘 좋은 달콤함으로만 주시는 게 '사랑'이 아님을
영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성숙한 자들은 대화를 통해서
상황을 통해서
사랑의 깊이를 더 깊이 깨닫는다 .
하나님이 잘못하며 혼내시고 잘하면 달콤한 상을 주시는
어릴 적 일차원적 사랑을 넘어
성숙한 자를 대상으로 베푸시는 사랑의 넓고 큼을 눈치채길 원하시는 것이다.
욥.
정말 깊은 고난의 시간에
하나님은 '나와 다투시는 분이 아니시다' 라 고백하고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고백할 수 있음은
단지 머리속 생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머리 좋은 천재급 아이는 대학생의 논리를 이해하나
그 감성은 따르지 못한다.
나..
하나님께서
내 비록 지금 이리 버거운 속상함의 시간들.. 속에서
그러함에도 나를 징계하시는 것이 아님은
아주아주 잘 안다.
아니... '도리어' 이러할 때,
내 말을 잘 듣고 계심을 알고 있다.
믿어진다.
내 가슴의 소리를 들어도
그런 믿음에 하등 흔들림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다 .
그게 감사하다 .
주님은 내 버거운 심사를 뚫고
욥님의 입을 통하여
내가 할 소리를 대신 해주고 계신다.
억울함,
세상에 기댈 곳 없는 절박함
그래도 믿는 자들에 대한 기대
........
모든 것이 뒤헝클어진 마음의 고통.
현실에 대한 암담함..
그러함에도 그는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거나 혼내시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
그런 실제 옳은 자의 올바른 '의인'의식.
그 의식의 원천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의 '자유로움' 이고
그러함에도 잃지 않는 '소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
감사하다 .
주님.
아침에 눈이 일찍 떠져
기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기도처에 앉으니 자연스레이 눈을 감아지고
복잡한 심사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상당히 오랜시간을 묵상 가운데
주님께 여쭈려 애를 썼습니다.
주여.
이전에는 집중되지 않는 혼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고통이라
기도가 무섭고 두려웠지만
이제.. 그러함 조차도 하나님께서 자꾸 기도로 자연스레이 인도하시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제게 감정적 현상의 변화가 없는 듯함에도
하나님과 함께 있는
눈감고 하는 묵상의 시간을 벗어나기 싫게 하시는
그런 체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욥님이
그러함에도 하나님을 발견하길 원한다는 고백이
제 고백과 어찌 그리 유사한지요.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실 것이라는
그 '의로운 고백'이
제 고백이 되어감이 좋습니다 .
감사하신 하나님.
훨씬 좋은 조건에
오라는 곳이 몇곳 있답니다.
제겐 두려워 하는 것이 있음을 주님이 아시지요?
그러함에도 이곳에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이신지
옮기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신 지
여러 복잡한 마음이 절 혼돈 스럽게 하나이다.
주님도 아시오매
저들은 저리 하면 안되는 데
귀중함을 모르는 게 속상합니다.
한편 , 제게 허락된 게 '현실적 손해' 뿐 아니라
그를 누르고 내 오래된 '존중받지 못하는 데 대한 아픔'의 발로를 치유키 위하신
하나님의 허락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복잡히 꼬아 말씀을 올렸지만
주님은 잘 아시리라 압니다.
제게 대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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