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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한가지를 넘어서는 자의 소망[욥21:17-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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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한가지를 넘어서는 자의 소망[욥21:17-34]

주하인 2014. 8. 4. 09:45

매일 다니는 길이라고

늘 똑같은 풍경이 아니다

 

어느 때는 분위기의 석양이

그 어느때는 거기에

날아가는 새가

새로움을 더하고

 

또 언제는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가

황량한 하늘에

분위기를 입히기도 한다

 

산다는 것은

그 안에서 아무리 웃고 울며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도

결국 시간이 지나

죽음 앞에 서고나

다 똑같아진다

 

결국

매 한가지다

 

  영원 앞의 그 허무와

흑백의 빛깔없음에

의미와 칼라를 더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오직

주님으로 인한

소망 뿐이다

 

오늘도

주님 만 바라보고 나가는

그런 결단의 하루가 될 수 있길

다짐하고

또 기도해 본다

 

 

23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26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불신자든 믿는 자든

믿음의 시간이 오래되었든 신참이든

그의 행실이 좋든 나쁘든

 

어떤 사람은 죽기까지 튼튼하고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마음까지 ' 고통을 품고 죽어 행복이란 것 조차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 .

사람마다 천차 만별이고

그것을 결정함은 본인이 아니다.

본인의 옳고 그름에 따라 주위에 영향을 미쳐

어느 정도는 세상 살이가 평균적으로는 나아질지 모르지만

그게 결코 '행 불행'을 결정할 결정적 인자는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설령.. 그래도......

그들이 가지고 가지지 못함이

세상의 '행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건가?

세상의 벌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조건.. 댓가가 있지 않던가?

성공을 위해서는 가정적 시간을 희생해야고

외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내면적 투자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게

사실이 아닐런가?

진정 행복은 '마음'에 있는데..

가지고 가지지 못함보다는

오늘 표현처럼 '마음의 고통'이 심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성공'한 것인가?

 

더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마음의 여유로움으로 행복까지도 가진

특별한 예외의 경우가 설령 있을지라도

그게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영원에 비하면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누리는 시간이

과연 얼마 정도될까?

티끌?

먼지?

..

 

결국 육신은 땅에 눕혀지고

그 위에 흙이 덮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구더기가 생기기전에

그들의 그렇던 아픔이나, 행복이나

그들이 그렇게나 고민하던 문제나

그들의 그렇듯 전 인생을 지배하던 '상처'나

그리도 추구하던 목표,

비젼이라는 이름의 가치...

그 어느 것도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기억되지 못할 것이며,

결국  '의미'없는 티끌 속의 그것들이 되어 버릴 것이다.

 

결국 .. 우리..

아무리 인권을 주장하고

우리가 옳다하여

스스로 가지고 있는 모든 거 드러내고

세상의 인정을 받고

아니면 나름의 내면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도

그것은

곧 있을 죽음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며

어떤 이름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도

영원 앞에서 구더기 먹히고 녹이 슬어 버리면

또 다시 '티끌'되어

부는 바람에 스러져 버리고 말아

오늘 표현처럼 '매한가지' ..

그렇고 그런 그들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 마져도 영원의 시간,

하나님 앞에서의 '우주의 시간'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없는 '매한가지'의 티끌이 될 뿐이다 .

 

결국,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의미있이 될 유일한 방법은

'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을 위해 어떤 일을 하였는가',

이 인생의 어이없이 적은 시간 속에서

그 분을 얼마나 동행했는가만 의미있다 .

 

그제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때는 이제

'매한가지'가 아니다.

'나'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나..........

 

 

오늘 나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아침 부터 바쁘다.

방학때라 그렇다 .

내 좋아하고 기뻐하는 '수술' 환자들이 계속 온다 .

삶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재미를 주려한다.

그리고 적당한 정도의 휴식이 있고

이룸도 적당이 있어

남들과는 다른 행보로 세상에 보여줄 만한 삶의 방향을 잡아 가고 있다.

그들처럼 이리뛰고 저리 뛰어 이루어낸 것이 아닌

내적으로 깊이 성찰하면서 깨달아 내고 이루어져가는

그러한 성취들..

 

그게 내 혼자의 번쩍임이면

역시 나도 '매한가지' 일 뿐이다.

곧 구더기 쌓이고 녹슬어 버릴 하찮은..

그래서 세월의 바람 불어오면

그마져 기억되지 못하고 날아가버릴 허무한..

 

하지만.. 난 말씀 앞에 서 있다.

그러기 싫은 귀찮음을 물리치고

바쁜 틈틈히 글을 쓰고 있다 .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 그런다.

환우 한분 들어오면 한자 쓰고 쉬었다가

또 짬짬히 그렇다 .

그러함은 그러할 때마다 .. .내게는 의미가 부여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러함에도 이렇게 인도하실 것임을 알기에 그렇다 .

마음이 풀어지고 의미가 생기고 소망이 커짐을 느끼고

그에 따라 점차 인생이 풍요로와지며

남들의 매한가지와는 다른

내 결국이 있을 것임....

영생의 기쁨이 내 것이 될 것임을 아는 자의

마땅히 해야할 하루임을 알기에

나는 바쁜 가운데서도 그렇다 .

 또 환우 한분 나가셨다 .

오더 내고 또 '기도 ' 하는 글을 쓰리라.. .

 

 

주님.

정말 그렇습니다.

이땅에서 아무리 웃는 일만 생겨도

곧 바람 앞에 스러지고 말 먼지고

이 땅에서 아무리 몸부림 쳐도

또 똑같이 영원속에 없어지고 말

허무한 것들 뿐입니다.

 

주여.

그러한 사실을 잘 앎에도 불구하고

어찌 미련히도 이 인생의 그러한

허무한 조건과 현상들에 파묻히고 울고 있는 지요.

한편으로 참으로 그러함의 미련함..

그러함의 어이없음에 좌절하기도 했었습니다.

 

주여.

이제 당신의 십자가....

나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이땅에 성육신 하셔서 내려오셔

나대신 지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저 소망이 생겨 나고

그 소망이 매일매일 말씀의 인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제 서서히 그러하신 소망이

더 큰 희망으로 눈앞에 커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그랬습니다.

인생의 이  매한가지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당신을 영접하게 됨으로서 이처럼 벗어나고

주님의 매일 동행함으로

이렇듯 사슬의 속박을 벗어나니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참으로 그러나 인생은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이 그냥 두지 않는 시간대입니다.

그 안에서 앎에도 불구하고 자꾸 잊는 망각의 시간들..

그러함으로 자꾸만 무뎌지어가는 우리의 결심들이

또 영적 도전과 영적 전투의 시간들임을 깨달아 가고

늘 깨어서 주님 앞에 설 수 있길 고대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 매한가지가 아닌 소망'을 가지게 된 저를 보게 하십니다 .

그리하고 아무 것도 아닌 듯한

매일의 변함 없는 일상에서도

하나님으로서 의미와 삶의 기쁨을 허락하심을 봅니다 .

주여

내 주여

이 귀한 진리

모두 알게 하시사

특별히 우리 가정 ..  .

깊이 간섭하소서.

매 한가지가 절대로 아닌

귀한 도구임을 알게하소서.

잊지 아니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도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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