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디베랴에 고기가 있느냐(요21:1-14) 본문

신약 QT

디베랴에 고기가 있느냐(요21:1-14)

주하인 2006. 3. 9. 10:11

(요한복음21:1-21:14)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잠시 쉬었다가 떠나겠지요? ㅎㅎ)

 

 

 계속 같이 계셨으면 좋을 것을...

잠시 잠시 안계신다.

 

 어제 부활된 예수께서 평강을 축복하시고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고

앞으로의 행해야될 지표를 명령하시고

기적으로 그들에게 증거를 주시며

또한 도마에게 손가락 넣어보는 확신까지 주셨는데...

계속 계시면 얼마나 좋으셨을까?

 

 그리고 그 며칠 동안의 행적도 또한 궁금하다.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떼거지로 몰려있다. ㅎㅎ

 

 성경을 통해서 내려다 보는 우리들은 확실히 앎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일행들이 '갈길 모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듯이 모여있다. '

 그것도 옛날 살던 '디베랴'의 어부 같이..

 

이게 합당키나 한 얘기인가?

그처럼 처절히 주님을 따라다니던 시간은 다 어디로 보내고?

 

 그들의 비젼은 한낮 꿈이던가?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이러다가 '에라~' 하면서 뛰겄네? ㅎㅎ )

 

 

 베드로는 역시 분위기 메이커이다.

무식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드는 리더의 풍모가 많은 사람이다.

 

 드디어, 넋 놓고 아무 것도 할 바를 몰라 허탈해 하던 자들 중 한 사람이던 베드로가 한마디 한다.

 

' 에라 ~

 난 물고기나 잡으러 가련다 '

아마 앉았던 힘빠진 자세에서 '벌떡'일어서면서 옷깃을 양손으로 툭털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닷가로 어기적어기적 , 터덜터덜 내려가니 같이 넋 놓고 하늘만 쳐다보고 (아마도 담배가 그시절에 있었더라면 피었을 줄도 모른다. ㅎㅎ) 있던 자 들이 잘~되었다는 식으로 우르르 따라 내려 갔을 것이다.

 

 부화뇌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내 주관이 뚜렷지 않으면서 남들의 말에 우왕좌왕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가?

 

주님은 그 위험성을 '고기 한마리' 잡히지 않는 기적을 보이심으로 경고하신다.

만일 이때 많이 잡히면 그게 축복이겠는가?

 

 우리의 일상에서도

현실의 각박함이 오히려 축복인 경우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4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고통은 날이 새어 갈때까지 지속된다.

 

 몸에도 힘이 다 빠지고 지쳐서 쓰러지려할 때까지 제자들은 주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세상에 몰두해 있고 머리에 고민이 많으면 주님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곁에 계셔도...

 

그분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

내 맘이 어둡고

세상에 눈이 돌려져 있어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그러나 주님은 그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다 뜻이 계셔서이다.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알 때까지

우리가 진실로 세상은 진리가 아니고 헛된 것임을 몸으로 알아

진실로 예수님을 그리워할 때까지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시다.

 

 아마도 주님은 그 어둠 속에서 세상을 열심히 뒤지며 아직도 어리석은 축복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우리를 안타깝게 보고 계실 것이다.

 

  주님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드디어 예수께서 부르신다.

"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무슨 뜻이실까?

어떤 어조이셨을까?

왜 물으셨을까?
정말 고기를 잡기를 안타까워 하시며 물었을까?

 

 아니다.

아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떼쓰고 고집 부릴 때 잘못임을 깨닫고 알기까지 안타까이 기다리는 훌륭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 아들들은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아버지 목소리 조차 못알아 듣는 악동 같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 뒤에 서계신 분이 '순종'황제 랍니다. ㅎㅎ  여기서의 순종과는 상관없지요? )

 

 

 드디어 주님은 '때'가 되어서 주님의 시기에 주님의 판단하에 오직 주님이 허락되었을 때 '세상'의 것도 축복하신다.

 

 '오른 편' 에 던져라.

 

 제자들이 어리석고 무식하며 배울게 별로 없어도 이것 하나만은 정말 배울만 하다.

 

나같으면 성질이 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몸이 지치고 마음이 허탈한 상태에서 누구인지 모를 외간 남자가 훈수를 하면 먼저 버럭 성질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제자 어부들은 '겸손'하고 '순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종'을 잘한다.

누가 뭐라하면 안되었던 것은 즉각 포기하고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주님은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

 

 '순종 ! '

 

그리고 인내하면

곧 축복까지 허락하신다.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세상 물질을 반드시 금욕으로 버리는 것은 과연 주님 뜻에 맞을까?

주님이 가르쳐 달라고 배에서 울고 불고 외치는 기복은 주님 뜻에 정말 또 맞을까?

 

생각할 문제다.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 아 ~ 차거워 ~)

 

 아 ~

요한 !

 

 아 ~ 

베드로 !!!

 

 

 요한이 역시 가장 민감하다.

베드로가 가장 다이나믹하다.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너무너무 주님을 사랑한다.

그래도 깨어있다.

베드로는 너무 귀엽다.

 

벌떡~하고 나룻배에서 일어나 마치 중국 무술가처럼 옷을 휙 두른 후 물로 주저없이 뛰어든다.

 

아~~ 차거 !

물방울이 지금 방금 내 얼굴에 튀는 착각이 든다.

ㅎㅎ

 

( 작년 QT는 베드로를 치유시키는 주님의 역사에 대하여 포커스를 맞추었었습니다.

 치유에 관심이 있으시면 다음에 다시 올렸으니 보세요.. ♡ )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yard)쯤 되므로

 50 간, 즉 50야드라면 약 46미터 ( 1야드는 0.9144m) 정도의 거리이다.

어두우면 식별하기 어려울 거리지만 얼마든지 소리는 들릴 거리이다.

 

주님은 항상 내 곁에 계시다.

내 속에도..

 

 

 

 

12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여기에는 무슨 마음이 담겨 있는가?

 

 며칠 사이에 지독한 혼란을 겪었다.

주님의 돌아가심.

공포.

의혹

부활의 기쁨

극도의 공포 속에 찾아온 이해할 수 없는 평강

성령의 용트림...........

 

 사람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혼란이 제자들의 영혼에 들끓었다.

 

너무 혼란한 그들은 주님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바를 모르고 옛 터전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들은 죄책감도 있으나

마음의 감정이 완전히 고갈되어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같이 처분 만 바란다.

 

그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도 마찬가지 인 경우가 많다.

열심히 주님 닮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 심한 현실의 벽앞에 주저 앉아 무기력한 상태.

아무것도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상태.

그 상태가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날 수 없는 상태.

이리로 가지도 저리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

 

그리하여..

주님 앞에 모닥불 켜고 둘러 앉아 있지만 불빛에 반사되는

그들의 얼굴 표정은 멍 한 표정일 것이다.

눈은 밑으로 내리 깔고

눈꺼풀은 쳐저 있을 것이다.

일부는 나무 가지로 불쏘시개 삼아 뒤적거리는 의미없는 행동 만 하고 있을 줄도 모른다.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주님은 지속적으로 그들 곁에 있지 않으셨다.

때가 되어 한번씩 나타나신다.

우리가 기도하고 은혜 받아도 매일 같이 충만한 상태 유지 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다.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순종의 힘을..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것 같다.

 

오늘 주님은 세번째로 나타나셔서

드디어 치유를 시키신다.

 

 

 주님은 이러시는 것 처럼 보인다.

주님의 뜻에 대하여 확실히 알기를 바라신다.

그리고는 뜻에 순종하시기를 깊이 원하신다.

가장 그것을 좋아하신다.

거기에 우리 자신의 왜곡된 인지 구조를 고치시기를 바라신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러지 않고는

그분의 그 고귀한 명령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생명이 되지 않고

Superego가 되고 율법이 되고 지독한 절제로만 굳어져

결국은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그래서

우리가 완전한 회복이 되기를 원하셔서

우리의 내면의 치유를 권면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역시 그 분답게

그분의 특허적 방법으로

이제 곧 베드로를 치료하신다.

 

 

 

 

적용

 

1.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본다.

   혹시 오늘 나에게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님 예수님의 눈으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2. 지치고 힘들어도 주님이 예비하신 쉼의 시간임을 인식하고 기뻐한다.

 

3. 주신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 분의 명령에 기쁘게 순종한다.

 

4. 세상의 것은 주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 분이 허락해야만 축복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한다.

   모든 것이 그 분의 시간과 뜻에 달려 있음을 안다.

   재물의 획득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금욕이 죄 일 수도 있다.

   소수의 선택받은 수도자를 제외하고는..

 

5.  늘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깨어있는다.

 

6. 주님 뜻이라 생각되면 즉시 일어나 뛰어든다.

   어디든..

   그래야 주님에게 사랑받는다.

 

7. 내 Want를 분명히 안다.

   난 주님에게 가장 사랑 받길 원한다.

   돈도 주님 방법으로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 *

 

 

 

 

기도

 

주님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상세히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것 만 보아도 성경이 얼마나 성경인지 알수가 있습니다.

 

지쳐서 갈 바 몰라 헤메이는 제자들의 우왕좌왕으로

오늘 제모습이 얼마나 투영되는지요.

정말

성경의 인물들이 오늘 나와 다를 바 없음을 볼 때

힘이 생기기도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아...

나에게는 주님 예수님이 계시지.. 하는 단순한 깨달음의 기쁨이 다시한번

제 마음을 기쁘게 기쁘게 합니다.

 

때가 되면

주님이 원하시면

제 죄와 상관없이

세번째로

아니 열번 째로

또다시 기회를 허락하시기 위해

디베랴 바닷가 저편에서

'하인아~'하고 부를 것이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

오늘 다시 기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힘이 들지만

곧 회복될 겁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과 성령의 충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넘어지는 그 죄책감의 무기력을

이제는 곧 다시 벗어나 축복을 받을 약속을 받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의 마음이 절망으로 가득차 있다 해도, 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아신다.

-그랜트 오스본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드로라면(요21:15-25)  (0) 2006.03.10
디베랴 II ( 베드로의 치유 )  (0) 2006.03.09
부활은 사실이다(요20:19-31)  (0) 2006.03.08
깊은 좌절은 회복의 신호이다(요20:1-18)  (0) 2006.03.07
끝까지(요19:28-42)  (0) 2006.03.0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