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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本

주하인 2006. 2. 16. 09:32

두가지 本(요13:15-30)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을 보였노라

 어제의 그 대단한 사건.

하나님이 내 무릎 앞에 구부려 앉으신 그 세족의 사건은 주님이 나에게 보이신 본이라신다.

 

 본받으라 하신다.

 

주님께서는 거의 대부분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오늘은 그냥..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 날 닮아라.

 어제 보여준 그 행동은 너희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범 답안이다. "

 

 이렇게 까지 쉽게 가르치고 문제까지 미리 가르쳐주니 얼마나 좋은가?

 

 가정교육이 아이의 품성을 거의 대부분 결정한다.

그 교육은 훈계와 교육도 있겠지만 실은 부모의 모본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따라 배우는 것이 가장 크다.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동일시'  , 영어로는 'identification'이라고 한다.

 

 삶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흉내내며 그들을 그대로 배운다.

걸음걸이, 목소리 까지 닮아가니 이 얼마나 강력한 교육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 성령, 교육도 모자라 직접 본을 보이시는 행동을 하시고 그것도 모자라 또 하나하나 설명하신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예수님의 그 자상함.

 그분의 그 철두철미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여기서 나온다.

 

 " 진실로 진실로"

 

 마치 애기를 물가에 내려 놓는 아버지같이 신신당부한다.

아들 손수건을 가슴에 달아놓고 유치원 문 앞에서 아기의 눈 앞에 맞추어 앉아 이것해라, 저것해라.. 하고 도 부족하셔서 또..이렇게 하라.. 고 한번 더 당부하는 듯한 필링이다.

 

 자..

그리고 그것으로 부족하니 한번 더 중요한 각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겸손이란 이런 것이다.

 아랫사람으로서의 주하인 너를 잘 생각해보아라.

아무리 네가 다 아는 것 같고

윗사람이 부족한 것같이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네 교만의 산물이다.

 

 윗사람은 너보다 더 뛰어나다.

보내는 사람은 보냄을 받는 자 보다 더 크다.

이런 사실 만 명심하고 내 보인 본을 잊지마라.

그러면 겸손에 이를 수가 있다. "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다시 말한다.

네가 이것을 잊지 않고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야 "

 

 아마도 무릎꿇고 앉아서 조잔 조잔하게 앉아있던 아버지가 이 말을 마치고 눈을 갸름하게 뜨면서 눈빛을 고요하게 아기에게 맞춘 다음 고개를 몇번 위아래로 살살 빨리 떨은 후 다시한번 아이의 양 옷깃을 살포시 잡아서 접혀진 옷을 펴준 다음 아이를 돌려 세우고 엉덩이 한두번 토닥 거린다음.. '사랑한다 얘야.. 오늘 하루 잘 보내거라' 하고 아이를 유치원으로 밀어넣어주는 것 같은 장면이 연상되지 않은가?'

 

 그러면서..

멀리 가는 아이를 앉은 그 자세에서 쳐다보다 .. 갑자기 생각 난 것처럼.. 다시 한번

'얘야.. 네가 아빠 얘기한 것 지키면 아주 복이 있을 거야.

 잊지마라~!'

하는 것 같지 않는가?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겸손해야할 당위성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무조건 당연한 일이다.  

 또, 그 보내신 자가 누군가?

 성령이실 수도 ,

부지 불식간에 맞아든 천사일 수도

아이를 가장한 예수님이실 수도 있다.

 

 내 주위의 모든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면 그게 그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모든 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대해야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여기서 마귀가 역사하는 원리에 대하여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어제 묵상 구절 중

 "2절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마귀는 나쁜 생각을 집어 넣는다.

 

 우선 자신도 모르게 번뜩 드는 생각은 자신의 것이 아닐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영적인 부분과 회개에 민감한 분들은 이 생각과도 싸우려고 애쓰다가 지쳐 넘어지는 경우도 종종있다.

 특별히 '죄책감'이란 부분을 타고서...

 

 

 그런데..

실은 이 첫생각에 대하여 주님은 특별한 이야기가 없으셨다.

 이런 사실을 모르실 이 없는 주님께서 마귀의 농락을 받고 있는 유다에게 까지 친절히 세족을 행하셨다.

 

 그러나. .

문제는 이 귀한 하나님의 본을 보이시는 현장에 있으면서도 그는 다른 생각으로 갈등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다.

 

 그 마귀의 생각을 과감히 자르고 주님의 누누히 강조하시는 '겸손' 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팔기로 확정적

 이 원리인 '선택'부분에 유다는 잘못한 것이다.

선택을 하자 마귀가 들어왔다.

 이제는 모든 게 유다 책임이다.

 

우리는 죄의 생각이 들면 얼른 기도해야 한다.

동조 했으면 갈등이 생길 테니..이때는 얼른 회개하여야 한다.

 

 

 이제 세번 째 죄에 대한 원리가 ' 마귀의 모든 행태는 주님 예수님의 허락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이제 유다는 완전히 붙들렸다.

나가도 '곧' 나간다.

 

이제는 그의 인생도 '밤'이다.

어두캄캄해졌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상태다.

 

 죄의 무서운 결과이다.

 

겸손 만이 죄를 이길 수 있음을 우리 주님은 통렬히 대비시켜주신다.

그토록 주님 곁에 오랫동안 최측근으로 따라다니던 엘리트 사도 유다가 '겸손'치 못하고 끊임없는 욕심과 교만과의 싸움에서 드디어 마귀에게 모든 넋을 빼앗기는 자신의 선택에 의해 '지옥'의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엄청난 장면 아닌가?

 

혹시 내 인생의 어두운 장면은 어디서 시작이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늘 깨어 있고

겸손이 생활화되지 않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 특별히 직설적으로 ,

몸으로 모본을

유다의 사례를

두려운 결과를 보여주신 게 다 이유가 있으시다.

 

 

 

적용

 

1. 손님 들 모두를 예수님으로 보고 친절을 다 하겠다.

 

2. 전도하겠다.

 

3. 세족을 묵상하겠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마귀는 끝도 없이 달려 듭니다.

잠도 없다 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다고 합니다.

 

 오늘

그토록 열정적으로

주님 하나님의 실체를 보며 따라다니던

한 귀한 제자의 몰락을 보고 있습니다.

 

그에 반하는

우리 주님 예수님의 몸을 낮추시는

그 엄청난 영광의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두 본이 되는 대비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오늘 저에게 요구하시는 그 덕목에 대하여

확실히 깨닫게 되었나이다.

 

 겸손

 

겸손 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늘 노리는 마귀의 발톱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깨달음 만 가지고는

이 어리석은 영혼이 늘 망각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힘이 없어 알면서도 분노의 자극,  교만의 횡행에 무방비 상태라는 것입니다.

 

도우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성령님..

늘 동행하시는 당신의 도움에 기댑니다.

겸손킬 원합니다.

늘 주님께 고정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의 신이다.

 - 마틴 로이드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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