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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주연같은 ( 고후 10:12-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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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주연같은 ( 고후 10:12-18 )

주하인 2009. 8. 18. 13:47

제 10 장 ( Chapter 10, 2 Corinthians )

 

 

주님

주님 만 바라봅니다

 

당신의 격려 만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내 자랑

내 사랑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12.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아이구.

왜 이리도 칭찬에 대한 욕구가 많았었던지..

참으로 소소한 부분에 대하여서도

남들의 칭찬을 들어야만 내가 존재하는 목적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었다.ㅎㅎ

 그러다 보면

남들의 칭찬을 듣기 위한 일에는

아주 흥이 나고 의욕이 생기지만

남들의 관심 밖의 일이라면 별..

 이거야 말로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한다는

그 '저희'와 무엇이 다를까?

 

  자기로서 자기를 .. 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저희'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자기가 살아온 테두리.

자기의 경험.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테두리.

자아.

인간은 누구나 극소수의 천재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살아온 테두리와 경험을 넘어서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그러니 그 자기로서 자기를 판단하고 헤아리고 비교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동물의 왕국의 침판지나

그들이 싸우고 대장을 세우고 움직이는 모든 강령이

결국 그들이 체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니던가?

그들 속에 뛰어들어 개와 원숭이의 칭찬을 듣고 싶은

의욕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를 보고 있는 어떤 훨씬 월등한 존재에게는

우리의 자랑이라는 게

그냥 '원숭이 같은 무리'의 어이없는 자랑과 무엇이 다른가?

입술이나 뒤집고 이빨이나 드러내고

으르렁이나 거리고..

 그런데도 '그 자기 자랑'하는 '저희'와 하등 다름없는 행태가

오늘 지금 당장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왜 나는 잊어버리고 살아야 만 한다는 말인가?
왜 그리도 사람들의 칭찬에 허겁하고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좌절하고

사람들의 이해하지 못함에 가슴 아파야 만 하는가?

 

 아침에 묵상을 하고 외래 진료를 서둘러 마치고

어제 수술한 환자들 회진을 돌았다.

복강경 수술을 시행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아프다는소리를 하지 않으니

얼마나 의사로서 재미가 나는 지 모른다.

 이 놀라운 기술의 발전.

그 발전의 흐름 속에 올라탄 나는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매일 고백하고 산다.

정말 감사하다.

의사로서

최신 기술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환우들에게 선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보람찬지 모른다.

 어제도 수술 3명이나 시행하는

격무에도 불구하고

마치 취미처럼 수술을 마쳤다.

 그 기쁨이 회진도는 병실에서 환우들에게 '농담'으로 나온다.

여유로 나온다.

그들은 당연히도 좋아한다.

 돌아서 나오다가 병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았다

 병원 달력.

작년에 내 컴에 보관하고 있던 내 사진 들을 보신

원장님께서 금년 달력에 내 사진을 집어 넣을 것을 명령하신 후

홍보팀에서 12개월의 달력 사진 중

무려 3 개월 치에 내 사진을 넣어 주었다.

 그 중 하나가 내 눈에 아~~주~~ 사랑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ㅎ

그래서 얼른 '라포'가 잘 형성되어 있는 환우 분에게

'이것 좀 보라.. 내~ 사진이다'라고 자랑했다.

 아......

그리고는 금새 '아차'했다.

이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는 ' 습관성 칭찬 허덕임' 병이 또 나왔구나..

얼른 입을 닫으면서 도망치듯이 병실을 빠져 나왔다.

내려오면서 회개를 했다.

일단 큰 죄는 아니어도

주님의 말씀이 분명코 경고를 했는데...

 


 
13.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분량 밖의 자랑과

분량의 한계 안에서의 자랑.

 

 그게 무엇일까?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 허락된 자랑은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우리가 자랑할 것의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이게 답이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 지니라.'

 

그래.

나도 이렇게 하려고 노력은 한다.

'주님이 주신 덕분에 이렇게..

' 주님 탓에 이렇게... '

.......

그런데 입은 그렇지만 난 어느새 내 가슴의 허급증이 녹아내릴 때까지

내 입으로 그 주님이 주신 내 성취를 떠들어 대고 있다.

 분명코 그렇다.

이전보다는

그래 이전 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횟수도 줄고

그래,

마음으로 조금은 덜 허급댄다.

그러면서 입으로 주님의 영광을 돌려 대려는 시도는 자주 한다.

그렇지만 그게 '분량' 밖의 자랑인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다.

그러고 나면 꼭 덜닦고 나온 화장실 같은 느낌이 없지 아니 드는 것으로 보아

분량을 넘나드는 자랑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과연 '주 안에서 자랑하는 ' 자랑이 될까?

진정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자랑이 될까?

 

 드는 느낌이 이것이다.

내 외적으로 이루어 놓은 어떤 성취에 대한 자랑.

내 가슴에 껄덕거리는 자랑.

남들의 눈을 살피는 자랑은 분량 밖의 자랑이고

그러한 나는 '저희'와 같은 자들이라고.

저희는 아무 개념없는 불신자나 초급 -표현이 맞는지는 몰라도 ^^;;- 신앙인 같은 자.

 

 '주 안에서의 자랑'은

주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것.

즉, 내적인 성취를 동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주님의 뜻을 이유로 해서 한번 더 참아 내는 것.

주님이 좋아하실 것 같기에 손해를 한번 감수하는 것.

주님이 좋아하실 진정한 선을 행함.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는 일.

...................

 

 정말 그렇다.

이제 '저희'들의   '저희 끼리의 ' 비교와 칭찬과 자랑은

그만 스톱하고 싶다.

 바램은 그렇다.

이제 그러한 오래 되풀이 해온 동물의 왕국의 주인공 같은

남에게 내 영혼의 존재 이유를 다 맡기는

남의 칭찬 만이 내 영혼이 존재할 유일한 이유처럼 생활하는 것은

이제 그만 내려 놓고 싶다.

그것이 옳다하면

그것이 정말 주님의 뜻안에서 옳다면

하등 거침이 없는

주님의 이름 안에서 자랑이 되는

특별히 주님의 칭찬을 받들 만한 내적 성취를 가져올 일이라면

꺼리김이 없고

그것이 내 존재의 가장 큰 에너지가 되는

그러한 영적인 삶을 살고 싶다.

 참 좋아하던 구절.

그러면서 오래 잊고 살았던 구절이

어제 저녁 성경 읽던 중에 눈에 들어 온다.

골로새서 3장에 ' 땅엣 것을 버리고 위엣 것을 바라라.'는 말.

위에 계신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의 칭찬 만이 내 생존의 에너지가 되는

그러한 삶.

그것이 내 얼마 남지 않은 인생후반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내 살아가는 유일한 비전.

궁극적인 비전이 되어야 만 할 것이다.

 

주님.

칭찬해주소서.

주님

주님 만 갈급합니다.

 

 

 

적용

1. 사람들의 칭찬을 들을 때 귀를 털어 내겠다.

  물론, 돌아서서...

 

2 . 사람들의 비아냥도 의미없다.

 흔들리지 않겠다.

 주님이 그러라 신다.

 

3.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칭찬을 돌린다.

 주 안에서 자랑하자.

 

4. 내 잘난 체는 동물의 왕국 시청시키는 것이다.

  잘난 체는 '저희'에 속하는 길이다.

 

6.  내 생존의 유일한 이유는 '주님의 칭찬'이시다.

 기도하자.

 성경 일곱장 읽자.

 

7. 외운다.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

 

8. 남들의 관심 없어도 주님이 좋아하시면 한다.

 

 

기도

주님

저에게는 특별히 '칭찬'의 욕구가 많은 듯 싶습니다.

남이 칭찬하면 아닌 듯 하지만

속으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없으면 아무 의미없는 일 같아 보일 때도 많습니다.

저희가 저희를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날 헤아리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결국은...

그런 심사 인듯 싶습니다.

난 동물의 왕국 주연 같습니다.

주여.

이제 조용히 주님 앞에 침잠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내 영혼의 에너지를 삼고

기도 가운데서 쓰다듬으시는

주님의 칭찬과 위로로

내 삶읕 늘 새롭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주여.

말씀 만이 내 전부임다.

말씀 만이 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칭찬

주님의 사랑 만이 내가 살아갈 윤활유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귀하신 주여.

강건하게 하소서 .

주여

놀라우신 주여.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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