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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볼 때(스 8:21-36 )

주하인 2009. 11. 24. 09:46

제 8 장 ( Chapter 8, Ezra )

 

 

꽃이라서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주님을 찾는다고
모두
성숙한 것 만은 아니다
 
이제
흐트러진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정리할 때다

아하와 강가의
쉼과 돌아봄이 필요하다
우리와
우리의 어린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 주신
우리의 꽃술을
다시한번
가다듬을
바로
그때다

 
21.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늘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디카를

여행다녀오겠다는 아내에게 빌려주고 난 후

사진이 거의 안찍혔다.

아내가 돌아온지 꽤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사진이 안찍힌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진의 대상였는데...

 날씨 탓인가?

추워지니 모든 아름다운 것이 숨었나? ^^;;

 

 아버지 학교 스텝 기도회.

늦은 시간이지만 참 편안히 참여하고

좋은 분들과 모여 대화도 나눴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지난 일요일 아버지 학교 43기를 마치고 스텝 헌신한

따근따근한 신참 스텝분들과의 테이블 담화.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와 자유로운 이야기...

내 차례.

그렇게 긴장은 안했지만 말이 꼬인다.

이구..ㅎ

지난 토요일.

지인의 장례식 참여.

 일요일의 찬양팀 참여....

괜히 걸리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전보다는 훨씬 더 차분한 나를 느낀다.

 월요일 부터 오늘까지

아침 묵상을 거의 제대로 못하고 나온다.

문제는 그래도 큰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크게 힘들때는 크게 은혜가 오더니

잔잔하니 감성이 줄어드는 듯하다.

 

요 며칠 에스라님에 대하여 묵상이 나온다. 

 에스라.

영육간에 충만한 자.

형통한 분.

그 분은 왕에게도 구하는 대로 받고

하나님의 손이 그 위에 머무는 강력한 영적 에너지를 받는 분이다.

 나.

나름대로 심적 환경적으로 편하니

영적으로 갈급함이 줄어든다.

사진도 덜 찍히고

기쁨의 강도도 덜하다.

물론 잔잔한 ,든든함이 날 채우고 있음을 지난 수일간 느끼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에스라의 그 영적 육적인 동시적 축복

그 형통함이 나에겐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여 답답한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사진도 안찍히고 영감이 줄어든 듯하여

당황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혹.. 주님이 날 실망하고 계시나...하는 그렇지 않은 상상을 괜히 하려한다.

 

 오늘 에스라님은

아하와 강가에서 '쉬면서' '금식'을 선포한다.

일반적으로 금식..하면

영적으로 곤고하거나

절박한 치료가 필요하거나

현실적으로 굉장히 힘이 들 때

급히 무엇인가 필요할 때

주님께 뗑강부리는 마음으로 간구하려 하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에스라 일행의 오늘 상황은 다르다.

그 분은 형통한 상황이다.

형통하게 '예루살렘'을 향하여 귀환하는 행렬이다.

갈급할 것도 답답할 것도 그리 없는 상황이다.

 그런 그가 '금식'을 선포하고 안식으로 이해되는 '아하와 강가의 쉼'을 유도한다.

이게 원리인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이원론 적으로 '영적'과 '물질적' 축복을 구분하여

영적으로 부요하기 위하여는

세상적 성공이나 물질을 멀리하고 도외시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맞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를 보아도

마음이 편하고

세상적으로 갈급할 것이 점차로 줄어드니 - 현실은 변화없어도 욕심이 줄어서 일 수도 있다. ㅎㅎ-  감수성이

떨어져가는 것 만 같다.

영적 감수성의 감소.

  에스라님은 그걸 아시는 것이다.

그 분은 영육간의 형통한 축복에 대하여 아시는 분이시다.

잘 나가고 거침이 없을 때

그 때를 더욱 주의할 줄 아는 분이다.

주위에서 하나님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가

교만해지고 딱딱히 굳어가는 분들을 많이 보고 있다.

때로는 아주 적은 성과를 가지고

주님의 원리를 모두 다 아는 듯 고개가 하늘을 쳐들고 있는

교만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것은 '잘나갈 때'가 '돌아볼 때' 임을 영적으로 충만한 에스라님은 아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자신과 자신의 백성이 돌아볼 시간을 가진 것이고

그때 오히려 더 금식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기도한다.

어제는 형식을 갖추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았다.

오늘은 백성을 권면하는 그의 선포 속에서

그의 중심을 다시한번 읽어 볼 수 있다.

'금식하라.'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라.'

'우리와 우리 어린 것들'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빌으라' 한다.

 그것을 '간구'하라 한다.

  이러한 주문이 모두 '잘 나갈 때' 한 것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겸손하고 낮아지기 힘들 때 겸비하기 위하여 금식한다.

기도한다.

간구한다.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의 어린 것들 - 표현이 가슴을 찌르르 하게 한다 -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들이 길이 평탄할 것을 위하여 기도한다.

사업이 잘되고 자식이 좋은 대학들어가고............도 좋지만

평탄한 길.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물질이나 세속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평탄한 길.

돈이 많아도

세상에 높은 관직에 올라도

성공을 해도

병이 들거나

가족이 깨지거나

마음이 시기와 탐욕과 헛된 정욕으로 그득하면

그게 무슨 축복인가?

저주지...

에스라의 형통은 그런 것이 아니다.

'평탄한 길'이다.

그것은 떼부자가 되는 개념도 아니고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허락하신 가운데

영적으로 걸림이 되지 않을 범위내에서

그 어린 것들의 달란트 안에서

주님과 영적 교류를 나누면서 충만한 누림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평탄'한 길에는 '욕심'은 배제 되어 있고

주님이 주시는 것을 '만족'한다는 개념이다.

주님이 응낙하시는 것만 받겠다는 개념이다.

 그러한 것을 '평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축복을 '형통'한 축복이라 한다.

 

 오늘 에스라님의 아하와 강가에서 쉼을 보고 있다.

그 강가에서 금식을 보고 있다.

그 강가에서 기도와 권면을 보고 있다.

그 강가에서 가르침을 보고 있다.

 

이제 다시한번 나를 돌아볼 때이다.

더 힘이 들기 전에

나름대로 평탄할 이때에........

 

 

적용

1. 아침 한끼라도 금식해 보자.

 오랫동안 아침 안먹던 버릇도 하루 하루 아침을 먹어 버릇하니

속이 비면 허전함을 금할 길 없다.

 아침..

나름대로 커피한 잔 안마셨다.

삼일 씩은 자신이 없어서 그냥 한끼만 하려하는 데

왜 이리 컴퓨터 자판 앞에 있는 조그만 귤이 눈에 쏙.. 들어오는 지..

왜 이리 시간이 안가는지.ㅎ.ㅎ

 주님의 말씀에 금식이 있었으니 흉내라도 내보자.

 

2. 외우자.

(스 8:21)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3. 겸손하자.

  말을 줄이자.

  낮아지고 약해지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가만히 있자.

 

4. 중보하자.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 주시기를 간구하자.

  

5. 응낙 받자.

  기도원 간다.

 

6. 에스라의 형통을 묵상하자.

  

7. 성경 일곱장 읽겠다.

 어제는 못했다.

 회개하자.

  

8. 돌아볼 때다.

 연약함을 기뻐할 때가 맞다.

 축복 받을 때가 영적으로 손해 볼 수 있을 때이며

 그때 더 금식하고 기도하고 조심할 때임을 잊지말자.

 

 

 

기도

 주님 회개합니다.

요새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고 있습니다.

아침 묵상은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주여 죄송합니다.

용서하여 주소서.

주여,.

금식 한끼 하고 있습니다.

제 속에서 배고프다고 요동을 칩니다

음식만 눈에 들어옵니다.

이 한끼 가지고요.

하나 주님의 말씀에 금식이 있어

제가 따르는 아주 적은 충성의 표시이니

주여 받아 주시고 기뻐해 주소서.

간절히 빌 것은

저와 제 어린 것들과 제 가족들과

제 소유와 주님의 아시고 계시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의 평탄한 길을 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주여.

형통하길 빕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충일하길 원합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그 놀라운 에너지에

감전되어 지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여.

제가 앞에 나서지 않도록 하소서.

주여.

가끔 뒤로 물러서야 하는 나이임을 느낄 때마다

내 자아가 죽겠다고 소리칩니다.

무엇을 해야한다는 내 자아가 외칠 때

그러지 못하는 내 속이 흔들림을 느낍니다.

주여.

그리 마음이 바빠지려할 때 

아하와 강가의 쉼을 결행하게 하소서.

그 마져도 섣불리 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형통하게 하시사

금식도 할 수 있으면 하게 하시고

모든 것 지금껏 그러셨듯

인도하심에 따라 하게 하소서.

내려 놓는 제가 되게 하소서.

그러기 위해 내 자아가 죽음이 필요합니다.

어찌 그리 아프려 하는 지요.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말씀으로 힘을 얻어 자연스레이 받아들입니다.

주님

주님이 인도하시기만 하면

필요없는 것은 죽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살아나게 하실줄 확신합니다.

주여.

저를 인도하소서 .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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