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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맞아도.. (행14:19-14:28) 본문

신약 QT

돌로 맞아도.. (행14:19-14:28)

주하인 2005. 7. 30. 21:15

 1. 묵상

 

; 죽을 때까지 돌로 맞았다.

 그리고는 시체처럼 버려졌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미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싫었을까?

얼마나 회의가 들었을까?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 제자 들이 둘러서자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   상처 치료 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리고는 다시 성에 들어갔다.

 

 둘러 서자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즉시 다시 들어 갔다.

반미치광이가 아니면 뭔가 있다 ~!!!!!!

상처는 그냥 두면 분명히 부작용을 일으켰을 터... 최소한 보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테니 치유된 몸으로 들어갔을 확률이 많다.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추정) 

1) 돌로 맞는 동안 주님이 필요한 부분 - 치명적인 부분-은 다 막으셨다.  

  어느정도 통증의 시간이 지나자    통증도 없애 주셨다.  

2) 그런 후 정신을 잃게 하시고 천국에 잠시 데려가서 영혼을 쉬게 하신 다음...  시간이 다 되자 돌려 보내시었을 것 같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 많은 격려와 지도, 용기 .. 그리고 자연 치유를 허락하셨을 듯  싶다.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 치명타를 가한 유대인 들이 산재한 곳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유는 오직 복음 전파이다.

  복음전파는 우리의 절대적 사명이다.

그를 위해서 주님은 ’환난’을 허락했고, 복음 전파 중에 생기는 환란은 주님의 손으로 막아 주신다.

 

 

        2. 적용

 

 머리가 아프다.

힘이 들다.

 

조그만 환란에도 금시 지친다.

 

생각도 하지 않고 들어 왔던 큐티 방에서 다시금 주님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단의 환란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는 결론 지으신다.

 

지독한 통증

엄청난 두려움

정신을 차리기 힘든 저주

자칫 뒤덮을 분노

끝이 났을 것 같은 극단적 실패

...................................

 

이 모든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님이 같이 계심을 알고 만 있다면..........

이 모든 어려움이 주님의 허락하심임을 안다면...........

그리고 환란 중에 한마디라도 복음을 전파할 뜨거운 열정이 있다면........

아니 놓치지 않으려 노력만 한다면..........

그리고 그 때에도 주님이 꼭 도우실 것임을 믿기만 한다면.........

 

사도 바울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

두려움 없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고통과 환란을 통하여 함께 하시고 금세 회복시키는 주님을 증거하고

이 환란이 주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 요건임을 명심시키며

수천년 후에 이글을 보고 있는 많은 혼란스런 고통속에 빠진 자들을 위하여

담대하게 소리내어 외친 것 처럼.........

 내 이웃을 위하여 힘을 내게할 표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아주 쉽게 다시 회복 시키실 것이다.

 

기뻐하자.

전도하자.

주님께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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