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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 같은 것이... (행11:1-18) 본문

신약 QT

감히 나 같은 것이... (행11:1-18)

주하인 2005. 7. 30. 21:23

 

 1. 묵상 

 

베드로의 모습과 다른 사도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 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베드로가 철저히 주님의 뜻이라면.. 따르는 모습은 이틀간의 묵상 중 보아 오고 있다.

 

그 심사가 '내가 누구관대(Who was I (17))'에 잘 나와 있다.

 

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죽어도 좋다.
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모든 의지를 다 꺾을 수 있다.
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

나는 .................

나는.........

 

 주님 앞에서 나는 없다는 고백이다.

 

이에 대하여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소문은 발없는 말이 천리 달린다는 옛 속담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귀성하기 전에 벌써 그의 이방인 안수 사건은 퍼져

있었다.

 사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율법'을 어긴자 베드로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아마도 그가 오기 전에 많은 얘기들이 오갔으리라.
말이란 한편의 얘기 만 듣고는 증폭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는 바

... 베드로가 오기전 거의 폭팔 지경까지 분노가 차 있었던 거 같다.
 2절에 '힐난하여'라는 단어에 잘 함축이 되어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주님의 성령을 받은 자들.

베드로의 해명을 기다렸다.

 베드로가 전혀 예전의 그 답지 않은 '논리 정연'하고 '온유'하며 또한

확고 부동한 어조로 말하자 그들은 마음이 누구러 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누구관대'라는 말에 의혹이 '쾅'하고 충격을 먹었

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는 카운터 펀치에는 완전히 넘

어졌다.

더 이상의 의혹은 없다.

 

그들은 '잠잠하였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생명있는 회개'

에 대한 이방인 전파를 칭송하였다.

사도들의 태도에서 '끝까지 듣는 현명함'
'하나님'의 이름 앞에 숙연해 질 수있는 믿음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자신의 율법을 버릴 수 있는 '자기 부인'을 역시

볼 수 있었다.

 

 오늘 역시 두 부류 사이의 공통점은 '하나님'이었다.


 2. 적용

 

1) 하나님의 이름 앞에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자가 되고 싶다.
   내 가진 모든 것 조차... 진실로 주님의 뜻이라면.. .

 

2)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    묵상하자.
 
3) 남의 말을 경청하는 하루가 되자
 혹여 오늘 하루 어거지 부리는 고객이 있어도 끝까지 듣는다 ~!
 
4) 베드로의 온유함 처럼 온유한 단어 만 구사하는 하루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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