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더 좋은 약속(히7:20-28) 본문
제 7 장 ( Chapter 7, Hebrews )
주여
저는요
주님 품에서
매일 매일 안식을 누리며
제게 허락된
이 평강의 열정
그 놀라운 비밀을
다른 이에게
알릴 수 있는 자 되길
간절히도 원합니다
주여
바램보다
더 좋은 것 주시는
내 사랑하시는 주시여
당신의
그 변하지 않으시는
언약의 온전하심에
저
이 아침
이리도 기뻐옵니다
사랑합니다
내 주님이시여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더 좋은' 것.
무엇을 좋아했던가?
내가 일생을 살면서 무엇을 욕심냈던가?
무엇을 좋아하던가?
.......
좋아 하는 것.
여행.(매니아는 아니지만 삶이 허락한다면 전세계를 여행하고 싶다.
그게 내 돈에 대한 유일한 관심이 되는 이유다. )
찬양. 언제나 가능하다.
사진 찍는 것.
분석하여 글 쓰는 것.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본질 깨닫기.
관심 받는 것.....
모두 세상적 '성공'과는 그리 연관이 없는 것들이다.
공통점은 어쩌면 '탈피'로 인한 '자유'가 아닌가?
더 좋은 것을 주신다.
그 분이 주실 만한 것이 '평강'이다.
위에 말하는 모든 내 좋아하는 것의 내 심리적 바탕을 보면
'고요한 기쁨'이 아닌가?
푸근한 안정.
더 좋은 것은 '평강'으로 표현되는
'평안한 기쁨'
'눈물 나올 듯한 고요한 열정'
' 지평이 넓어지는 깨달음'
' 여명이 물러가는 아침의 햇살을 보는 경탄'.....어느 것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자유로운 느낌.
잠시 들었다가 사라지는 감정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닌
실체적 현상.
" 더 좋은 언약"
'언약'
언약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반지.
결혼.
믿음.
안정.
확신
눈물.
삶의 이유.
흰옷
순결.
예수님의 신부.
......
예수님의 신부라는 표현을 보면서
난 속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거부 반응을 느낀다.
남자를 남자가.... 더럽다... 는 거부반응이 들면서 동성애에 대한 상기가
예수님의 그 언약으로서의 신부라는 표현이 거부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짜로 '남성'이던가?
성이 있으신 분인가?
너무 인간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재단해가는 것은 아니던가?
오늘 '언약'이란 단어를 '연상'하며 떠오르는 단어를 클러스터링 해보다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나'를 잠시 묵상해 보았다.
솔직히 격한 동성애 반대자로서 감정적으로 용인되지 않음을 내려 놓고
언약자, 나와 동행하는 것을 약속하는 자로서의
그 분을 연상하니 마음이 조금 숙연해진다.
내 나이 지금.. 까지
나를 거의 '나'처럼 헷갈리게 붙들던 것들이 무엇이던가?
'사단'의 생각들 아니던가?
그 생각들은 시도 없이 내 머리 속을 밀고 들어와
내 성품을 '급'하게 만들었지 않던가?
어제 무지막지하게 추운 날을 뚫고 늦은 수영을 마치고
몸을 말리고 헤어드라이기를 쓰려는 데 '학생'으로 보이는 세명이
차례로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나누어 쓴다.
울컥.. 하려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려서는
- 이때까지는 스스로 대견했다 ^^* - 잡으려는 순간
내 한참 후에 나오신 분이 슬그머니 다가오더만 그걸 새치기 하려는 거 아닌가?
아니.. 그 분.. 목소리 조차 날카로와 하이톤의 나이 든 남자로
좀 거북스럽더니 그러신다.
다행이도 내 잡으려는 순간에 0.05초 ㅎㅎ 차이로 늦으셔서 내가 잡아서
시작은 했지만 내 속은 이미 부글거린다.
' 나이가 들었거나 어리거나 남을 배려하는 게 전혀 없다.. ' 라는 생각이 날 사로잡으니
그들이 내 배려하는 태도를 드라이기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착각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날 스쳐갔음에도 짜증이 올라옴을 멈추기 어렵다.
다행이도 입 밖으로 말은 내지 않았지만 '화' 남을 멈추기가 어렵다.
한참을 보란 듯이 말렸다.
그리고는 느즈막히 퉁명스레이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아침이다.
눈이 심하게 많이 와서 거북이 걸음으로 차를 몰고 나왔다.
겨우 겨우 안양 시내 들어서는 데
그 느린 구석 중에도 버스 한대가 조금 빨리 추월 해나가더니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거의 사선으로 두 차선을 물고는
세워 놓고 사람들을 내려 놓는다.
눈 때문이 아니다.
그 차 때문에 미끄러질 까 조심하면서 겨우 차선을 바꾸어 나가는데
속이 상하다.
눈이 오기에 자꾸 늦어지니 빨리 빨리 가기 위해 그러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밉다.
더구나 뒤에서 오는 차들이 미끄러져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계속 쌍라이트를 켜고 경적음을 몇번 울려 주었다.
다음 정류장까지 무대뽀로 다른 차를 추월해 나가 또 그런다.
짜증이 가라 앉지 않으려 한다.
내려서 충고라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든다.
그러다가 묵상의 구절이 생각난다.
'참으로 오랫동안 '내 속'에서 나와 사단이 한 가락지를 낀 것처럼
내 생각인양 나를 자유롭게도 조정하는 구나... ' 라는 생각.
이제 예수님께서 날 출애굽 시키신 후
그 강력한 '첫사랑'의 경험을 허락하시고
성령으로 날 매일 동행하시는데
아직도 난 내 의지로 이전의 생각들과 손가락 걸고
그들의 나쁜 속삭임을 그대로 내것인양 받아 들이 고 있는 것이다.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더 좋은 언약.
성령으로 통한 예수님의 손가락 걸으시고 약속하고 언약하시는
그 좋은 평강의 영혼이 되기 위해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게 그 분을 힘입는 길이다.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도 말씀으로 붙들어야 한다.
그제야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
얼마나 많은 도움을 체험했던가?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말씀으로 얻어지는 그 놀라운 변화의 체험을 했던가?
일순간에 내면에 요동치던 폭풍이 멈추고 고요로 변하던
그 말씀의 위력에 대하여 체험을 했던가?
주님은 '항상 살아서' 계신다.
그 분은 내 손에 끼우셨던 그 가락지,..
내 영혼에 깨닫게 해주셨던 그 언약의 편지를 기억하길 원하신다.
내 부족한 인격이 아직도 내 속에 휘몰아치는
사단의 풍파를 착각하고 흔들릴 때
하나님은 그 때도 내 손을 놓치지 않고 기다리고 계시니 말이다.
다시 정신을 차린다.
그 분이 내 손을 잡고 있으신 내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나와 대화하길 원하신다.
그 분의 말씀 만으로 내 '감정'을 표출하길 원하신다.
이렇게도 항상 살아계셔서 그러신다.
그분을 힘입기를 얼마나 원하시는가?
특별히 오늘 하루
'더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그 분의 더 좋은 것을 받아 누리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그 더 좋은 것에 반드시 '심정적'인 안정만이 아니고
내가 받을 수 밖에 없는 '복' 중에
내 과거의 이유로,
내 안될 거라는 사단의 소리에 속아 누르고 있던
현실적 '좋은 것'도 기다려 본다.
오늘 하루를 가슴 조이며 더 좋은 것에 대하여 기도해 보리라.
언약을 묵상하자.
내 손가락에 끼워진 생명의 반지.
보증의 반지... 기억하자.
그래서 주님 말씀 만 내 영혼의 흐름으로 선택할 결심한다.
나쁜 것은 근접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적용
1.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묵상하고 기다리자.
무엇을 주실라나..
오늘 하루 기대한다.
무엇이실 까?
2.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
그렇다.
살아계심은 늘 고백하고 알고 있다.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을 오늘 하루 더욱 뚜렷이 느끼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늘 생각하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그 분은 내 손가락에 언약의 반지를 끼우시고
죽을 때까지 날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3. '함께 함 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매시간 나와 함께 해도 아무렇지 않으신 내 예수님.
그런 예수님이 내 일생을 함께 하심이 부담보다는 기쁨일 ...
4. 말씀을 세장 읽겠다.
5. 난 진심으로 무엇을 좋아하는 가?
주님이 진심으로 주시고 싶으신 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시던가?
그 로 인하여 난 이 남아 있는 인생에서
어찌 주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가?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은 참으로 좋습니다.
언약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언약의 보증.
내가 진심으로 가지고 싶어하시는 것을 주신다니요.
일단 전 '안정'을 원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원합니다.
또, 그로 인하여 내가 세상에 , 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을 미치고 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들어내면서요.
그게 어떤 것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만 하신다면
항상 살아계셔서 나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받고'
주님을 힘입어 제가 더욱 나갈 수 만 있다면
어찌 가능치 않겠습니까?
주여.소망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뚜렷함은 아니라도
주여 약속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길 원합니다.
예수님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이여 보이소서 (히9:1-10 ) (0) | 2010.12.19 |
---|---|
진정으로 중요한 것( 히 8:1-13 ) (0) | 2010.12.18 |
내가 잠시(히7:11- 19 ) (0) | 2010.12.16 |
내 예수님 내 하나님(히7:1-10 ) (0) | 2010.12.15 |
이미 이제도 이같이 ( 히 6:9-20 ) (0) | 2010.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