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예수님 내 하나님(히7:1-10 ) 본문
제 7 장 ( Chapter 7, Hebrews )
예수님 만 계시면
그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그리고
기쁘고 통쾌하다
그게
축복이다
이제
세상에 현신하신
그 하나님께서
의와 평강과
모든 물같이 흐르는
축복을 주신다 약속하신다
이 아침이
사랑스럽다
2.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멜기세덱'
' 예수님'
세상에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흔적.
역사에 드러내 보이신 우리 주 하나님의 모습.
보이는 것 아니고는 믿지 못하는 이 연약한 자를 위한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못견디심.
멜기세덱은 당연히도 예수님의 모형이시다.
예수님은 당연히도 하나님이 세상에 '성육신'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이시다.
얼마나 세상에 당신의 뜻을 알리고자 하시는
간절하신 사랑의 폭팔하심이시던가..!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으로 나온다.
살렘은 '예루살렘'으로도 이해가 되는 지명이다.
샬롬과 발음이 비슷하여 '평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멜기세덱은 정말로 예수님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되기 어려운 분이 아니신가?
그 예수님 께서 구약에 모습을 드러내시었던 것이시다.
그 분은 '의'의 왕이시다.
그 분은 '평강의 왕'이시다.
그 분은 내 '왕'이시다.
내 구주이시고 내 형님이시고 내 왕이시고 나의 동행자이시고 나의 멘토이시다.
그 분이 계신 곳은 '의'롭다.
그분이 계신 곳은 '평강'이 있다.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오늘 묵상은 '복'이란 단어가 세 번 씩이나 되풀이 되며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구약에 이처럼
육적으로 몸을 드러내시면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복'이시다.
당연히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우주 근원의 에너지이신 하나님을 내 영혼에 받아 들이는
이 무궁무진한 '복'의 실체이지만
그 실체는 깨닫는 자의 몫이시다.
말씀은 '복'이다.
깨닫는 자만이 알아들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복'이다.
그 복은 물질에만 국한 되지도 않고
물질을 제한하는 개념도 아니다.
그 복은 자유다.
막히지 않고 흐르는 '복'이다.
너무 과한 물질이나 세상의 소위 말하는 '복'으로
비만이 심해지고 마음이 둔해져서 그 날이 오는 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파리같이 되는 것도 아니고
청빈과 청결에 대한 지나친 경계로 물질을 혐오하는 정신병적 결벽증도 아니다.
흐르는 것이다.
마음이 열리고
의가 영혼에 자리 잡고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평안함,
거기에 상황에 상관없는 기쁨이 물처럼 흐르는 '평강'의 상황으로
정말 세상에 의롭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선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영적, 심리적 건강함과 더불어
물질적 번영도 부여 받아
그 물질이 '육신'을 비만으로 이끌어가지도 아니하고
그 세속의 명예가 영혼을 병들게 하지도 않고
없음에 의하여 '비교'로 피폐되는 열등감도 존재하지 않고
잠시 찾아오는 결핍으로 '비관'하지도 않게 되며
사람들 사이에서 온유하고 더욱 겸손해지고
물질의 사용이 이제는 더 이상 그를 교만하게 하지도 못하고
그것의 유용이 영혼을 둔하게도 하지못하며
세상의 어떠한 이룸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 될때만
그에게 의미로서 자리잡게 되는 ..........
그런게 진정한 '복'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매일 우리에게 저러한 '복'을 주시길 원하신다.
말씀을 통해 '조금' 살짝 보여주신
당신의 '육신'적 현신,
구약시대의 멜기세덱과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심으로
당신,
하나님을 어리석은 '주모'가 올바로 보길 원하신다.
그리고 누리길 원하신다.
그 분이 얼마나 '의'로우신 분이시어
그 분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이고
그 분이 얼마나 '평강'의 원류이시기에
그 분 곁에 거하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해도 누려지는
눈물나는 기쁨을 체험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 '복'을 매일매일 누리고 살기 원하신다.
주님은 '주하인' 이라는 전인적인 '땅'에
그래서 그래서
매일 매일 '자주 내리는 '비'로 오신다.
성령으로 내리시고 말씀으로 내리신다.
성령이신 말씀으로 오시며
말씀으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신다.
오늘은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모습으로
당신을 한번 더 드러 내시고 싶으신 게다.
적용
1. 하나님의 그 원칙, 세상에 적은 간섭의 스스로의 결심을 물리치시고
오직 사랑의 간절함으로 보이신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기억하자.
2. 예수님은 '복'을 주신다.
실제적 예수님.
복 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자.
3. 그 분의 복을 묵상하자.
무엇을 주실까?
돈.
명예.
회복.
사람.
........
무엇이든 간에 그 분이 주시는 것은 '의'롭다.
평안하고 기쁠 것이다.
평강이고 샬롬이시다.
행복하다.
4. 말씀을 세장 읽으리라.
하나님을 어찌 놓치랴.
매일 묵상하는 마음으로 말씀 받자.
5. 부족한 것.
................ ^^;;
그 어려움을 아시고 주님은 '복'을 말씀하신다.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신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에게 '복'주신다 하신다.
기대하자.
6. 몇가지 세상적 문제들.. 기도한 것.. 들어주실 '복'으로 기대합니다.
. 하나님의 시간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구한다.
. 기도하며 기다린다.
- 55세 이후, 논문 통과, 자식들...
. 결과는 모두 하나님의 '선'의 영역임을 받아들일 마음 자세를 갖는다.
. 영혼이 피폐 하지 않도록 묶이는 세상의 재물은 싫어하도록 해주세요.
. 마음의 평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세요.. 주님.
. 이제 저에게도 '복'을 주소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은 멜기세덱과 예수님을 보이심으로
당신이 살아서
육신에 거하는 내 곁에 육신으로 보이셨던 것을 기억시키십니다.
주님.
참으로 어리석어 이제야 '아, 그렇지.. ' 하고 다시 기억해냅니다.
부족하고 부족해서
예수님 영접하고도 십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어리석음에 흔들립니다.
과거의 흔듦에 약간 휘청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그 정밀하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늘 살아계셔서 나의 평강을 주장하시는 주님.
오늘은 특별히 그 현신하신 내 예수님께서
복을 주신다 합니다
복을 빌어 주신다 합니다.
그 세상에 몸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날 위해 복을 주신다고 저리저리 강조하십니다.
얼마나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요.
주님이 주시는 복은
'의'요, 샬렘이요, '평강'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복은
나에게 '통전적'이고 '전인적'이고 '온전하신' 그런 복임을 압니다.
이제 제가 비는 세상의 몇가지 기도 제목을
자신없고 힘없는 어린 나의 소리처럼
겨우겨우 소리내어 빌고 있지만
그걸 들으신 모양입니다.
제 흔들리지 않는 의로운 축복을 맛보려는 결심을 기뻐하신 모양이라 생각듭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놀라우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제 자식들에게도 동일하게 그리하소서.
제 나라.
제대로 잘 믿는 모든 지구 촌의 당신 자손들에게 그리하소서.
간절히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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