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모든 것 넘어 관조할 수 있는 자 되기를[단8:1-14] 본문
.
2 . 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
다니엘
가장 비참한 ,
이유도 모르고 소년 포로가 되어 타향 땅에 유배되었지만
포로 중
요셉과 더불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인물.
고난은 크지만
그 고난에 제외되거나 예외가 아닌
모든 것을 건너 건너 (사자굴, 불 속,...요셉 역시 형제의 *&^%$, 감옥, ...이구.. )
드디어는 그 고난 중
고난을 '관조'할 수 있는 위치까지 드디어 올랐다 .
보라.
몸은...
환상을 보기는...
그런데.. .
그 모든 것,
자신의 의지나 모략으로 거기까지 올랐다면
아마도 오늘 보여지는 저 자연스러움이 있었을까 싶다.
'몸'은 수산에 있지만 '환상'은 을래 강변을 꾸는....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고
차원과 차원을 넘어서는
저 자연스러운 '넘어섬'
'관조(觀照, 영어로는 meditation, contemplation이라 나오는데 조금.. ^^;) ' 라 느껴지는
한단계 높은 차원에서
그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고요한 상태로
아마도 교만, 비웃음, 다행.. 등의 저차원적이고 부정적인 웃음 대신
긍휼하거나 고요한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내다 볼 수 있는 그러한 마음으로
바라볼 상태에 이르지 않았을까?
1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그 관조하는 자의
깨끗한 영혼에
2700주야라는 많이 긴시간 후이지만
심한 혼돈,
그에 따른 우리, 평범한 영적 민초들의
심한 고통의시간 뒤에
결국
'성소가
그 때에
정결하게 '될 것임을 확실히 알게 하신다.
무엇인가?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려는가?
구약,
그것도 묵시록.
참 어렵다
한참을 묵상하고 집중한 후에야 깨달아 지는 바가 있다.
우선..
가장 크게 다가오는게
'관조'하는 자의 어떠함이다.
관조라 함은
고요한 마음의 상태
남들은 대 환란지경에 있지만 거기에서 한발 떨어진 자의 '다행함' ^^;
뭐 그러한 게 우선 느껴지며
그게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을 다 알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든든함으로
고통 중에서 한발 벗어나 있는 상태이니
'휴우.. '하는 마음이 우선 있고
그보다 더 깨닫는 자,
인사이트가 있을 때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로 깨달아질 때..
그런 상황의 지속적 유지로 나타내지는 vision, 환상의 순간이니
그 '은혜의 지속, 평강의 지속,
이땅을 살되 천국인의 마음상태'를 체험케 되는 것이니
그게... 또 더 부럽다.
그런데....
그 분..
다니엘님은
절대로 그냥 떡하니 저 상태에서 '관조적'위치에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위에 썼듯
모진 고난을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보고
자연스러이 흘려낸 그 모든 고통의 연단과정을 거친 분이시다.
그것이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
두번째.
오늘 묵상을 통하여
다시한번
믿는 자에게도 '심한 고난'은 피해갈 수 없다는 것.
성경에서 '고난을 위하여 (그를 통한 연단,시험을 위하여가 정확하다) 부르셨다'고
분명코 나와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난이라면
그 끝이 반드시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면
확실히 인내해나갈 수 있음이다.
오늘 말씀 끝에
2700주야..라 나온다.
그 영적인 의미가
'반드시 2700일,
칠년 가까이 일지' ,
다른 셈법이 있을지 주님 만이 더 정확히 아시겠지만
영적 7년 대환란의 끝에는
'다니엘님의 관조할 영적 상태'' 고통을 넘어서는
깨달음과 인도 받은 상태' ...
회복을 넘어 은총의 시간이 있을 것임이
믿어져야 하고
지금 어쩌면 고난 중이지만
그 이후의 회복의 그 나른한 기쁨이
대신 우리의 마음과 상태를 채워지길 바라라시는
'소망'에 대한 것이그 레마의 둘째 부분이 아니실까 싶다.
즉, 관조와 소망... 말이다.
감사하다.
주님.여전히 삶은 녹록치 않고
오히려 끝없는 어려움 속에 갇힌 듯 합니다.
어두움이 지금도 주변의 소란을 틈타
주님 안에서 고요한 삶을 원하는 저희에게
을래강변의 저 두려움으로 밀려오려 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여전하고 마음은 여전히 흔들흔들 거리고 있습니다.
오늘 모든 것 건너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 삶을 살며
허락되어진 인생의 위치에서
관조의 눈으로 '세상을 고요히 바라보는
다니엘님을 봅니다.
주여.
제게도 저러한 믿음 허락하소서.
세상은 여전히 제게 똑같이 흘러가고 다가오고 밀려오지만
주님의 반석위에서 덜 영향받는 자 ,
관조하는 자 되게 하소서.
그날을 감하신다는 개념..
고난은 똑같을 것이나
사랑하는 자들에게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그날을 감해주신다는 그 개념...
오늘 또 말씀이 있어
다니엘님 통해 모델링해주시니
더 깊이 그리 나가게 하소서.
주여.
세상을 살되 영향을 덜받는
흔들리되 덜 흔들리는
고난이 다가오되 조금은 떨어져 있는
그래서 주변을 긍휼히 여길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안타까움으로 중보하고 아뢸 수 있는
그런 제가 되게 하소서.
주여.
흔들릴 상황에서 저를 붙드시사
소망을 가지게 하소서.
그런 '다니엘'이나 '요셉'같은 믿음 가지게 하소서.
나머지 ...
세상의 일들적극적으로 빌지 않아도
허락하신 위치로 이루어지게도 하소서.
제 작은 일상에서
제 자식들.. .
제 주변인들..
동역자들.. .
모두 그리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시고 귀하신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14.06.21 묵상
내 하나님은 늘 그러하시다[단8:1-14]
하나님은 그러하셨다
가녀린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의혹을 하고 있을 때
그러한 내게
청초함이란 이름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은 또그리 하셨다
이리 적고 이리 힘들어
무엇을 이겨낼 수 있을 건가 고민하고 있을 때에
내가
코스모스이었음을 깨우치셨다
주님은 그러하시다
늘 그러하시다
늘 옳고늘 선하시고
늘 나를 지키시는 그러하신 분이시다
주님
그 귀하신 분이
바로 내 하나님이시다
2
내가 환상을 보았는데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내 몸은 엘람 지방 수산 성에 있었고 내가 환상을 보기는 을래 강변에서이니라
그는 비록
환상으로 보이시는
그 환란에 처하지 아니하고
그 곳에 있지 않은 곳의 환란을 보고 있으며
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그 악의 환란이 대단한 것은
어찌보면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라는
근본의 의혹을 가지지 않겠는가?
하나님.
우주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만드시고 아시는 분이시라면
겨우 저 정도의 악에 흔들리실 것인가.. 하는 의혹..
그러나 , 다니엘은
전혀 의혹이 없다 .
그냥 들은 것 전하고 본 것 알릴 뿐이다 .
그는 그의 인생에 '타향살이'라는 변을 경험함도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곤란을 겪으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도
아무 의혹도 없다 .
그냥 단지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고
그 안에서 자신은 '기뻐하고 기대할 뿐이고 기도하는 ' 자임을 인식하는 듯하다 .
내 삶을 돌아다 본다.
만일 내가 중국 쿤밍에서 돌아오는 중에 비행기 사고라도 당하는 순간이었다면,
아들이 내 없는 동안에 잘못되었다면 ^^;;
이제 갑자기 잘 있는 직장에서 '당신 나가시요..' 라 했다면...
그리고 나나 아내가 '암선고'를 받기라도 한다면
......................
생각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지금, 이 혼란의 시대,
이 격변의 시대,
인간성이 상실이 되어가고
환경은 한없이 더러워지고 자원이 고갈되는 시대,
나라와 나라가 서로 힘을 다투고
하나라도 잘못해서 불을 던지면 곧 터져버릴 듯한 이시대.
각종 병은 창궐하여
세상에 의학으로 들어보지도 못한 병들이 서서히 기를 펴고
곧 터져버릴 듯 공해로 찌든 이 시대에
그 많은 위험 중의 하나가
도저히 내 손으로 견뎌내기 힘든 조류의 세기로 다가오면
과연 난.. 그때도 지금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 살아계신 하나님... 을 외치고 있을 수 있을까?
분명코 난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내 생각과 반하는 내 마음 속의 거부와
그로 인하여 나도 모르게
갑자기 다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게.. 오늘
다니엘의 '묵시' 를 바로보며 느끼는
계속 되어지는 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아무런 흔들림 없이 '예언'을 하는 다니엘의 심사를 생각해보며
나를 거기 대입해보며 느껴지는 바가 그렇다 .
그거.
하나님의 늘 온전하심.
하나님의 늘 선하심.
하나님의 늘 나를 아심 .
늘 내 궁극은 승리...임을 확신하고 믿는 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다 .
나를 돌아본다 .
아까도 고백했지만
머리와 마음 속에서 아직 왔다갔다 하는 정도의 믿음이 맞다.
그러하기에
오늘 나.. 더 고백할 것은
'하나님은 늘 선하시다 .
'하나님은 늘 그러하시다' 라는 선언이
더 내 안에서 터져나와야 한다.
다시 돌아보자 .
하나님.
우주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만드시고 아시는 분이시라면
겨우 저 정도의 악에 흔들리실 것인가.. 하는 의혹..이라 썼지만,
실은,
하나님.
우주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만드시고 아시는 분이시기에
겨우 저 정도의 악이
그 분의 전능하신 선에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는 믿음..으로
아주 쉽게 이해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감사하다.
오늘 내 붙들 명제다 .
하나님은 늘 그러하시다 .
주님
귀하시고 놀라우신 내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인 곳에
여행을 다니면서도
기도가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
주여.
부디 게으른 저를 용서하소서.
조금 피곤했습니다 .
그래서인지
자꾸만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와 일상에서
주님을 묵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 합니다 .
오자마자 제게 필요하신 물음을
다니엘의 입을 통하여 주십니다 .
주여
부디 언제라도 하시라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뻐하는 제가 되길 기대하나이다 .
위의 여러가지 버거운 물음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제가 되게
믿음마져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그 귀한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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