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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늘 말씀으로( 시49:1-20)

주하인 2007. 6. 30. 11:17

제 49 장 ( Chapter 49, Psalms )
1.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주님 뵐 때까지  늘 이렇게 살수 있게 하소서..)

 

 

 오늘은 유난히 강조하신다.

힘있으시게..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신다.

 요 며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아주 약간의 시도가

내 내면에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면서

주님은 말씀으로 살아 계시고

말씀이 주님이시라는

오묘한 진리를 나름대로는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 여세를 몰아서

주님은

만민들아...

귀천 빈부 상관없다..

세상의 지구에 살고 있는 (居하는) 모든 자들 (民)아..라고

힘있게 말씀을 들으라 하신다.

 

 말씀을 듣는다.

 

이게 오늘의 명제다.

말 그대로 라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인데

그게 가능한가?

 

 그분은 눈 앞에 보이는 분이 아니신데 어찌 가능한가?

구약의 시대에는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그러셨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기도하면 그렇다.

그게 혼자 만의 상상과 는 다른 점이 다만 구분하기 힘들 뿐이라는 데 있지만

그 분은 지금도

누구도 공인할 만한 기이한 방법으로 나타나셔서 말씀을 주시고 계신다.

다만, 인간의 속성의 난해함 때문에

자신의 상상이나

눈에 거는 '안경'탓으로

콩깍지 탓으로 온전치 못하게 전해진다는 게 문제지만...

 

 신약시대의 지금은

또하나의 말씀의 도구가 있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지어진 것으로 분명히 성경에 나와 있다.

시간이 지나고

체험이 쌓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성경은 정말 살아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안의 말씀은 현실의 눈으로 보면

전혀 이율 배반적이고

논리적 헛점이 많은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그게 다 맞다.

가끔은 전율할 때가 있다.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감정적 흐름을 다 입혀 놓았다.

어느 곳에서는 몇개의 단어로 조합된 불 완전한 문장 속에서

내 속을 다 뒤집어 후벼 파는 표현이 있을 때도 있다.

어제 그제는

그냥 순종하기만 하면

주님이 다 알아서 내 속에 들어와 운행하시는,

예전의 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듯이

어느때는

말씀이 예언으로, 위로로, 공감으로, 아버지의 다정한 지도로, 치유의 도구로 ...그리 온다.

 성경의 말씀은 개인적 오류가 최소한으로 줄여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은 특별히 집중하라 하신다.

만민들아, 거민들아 , 사람 상관하지 말고 말씀에 집중하라...하신다.

 

오늘은

특별히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그래야 할 모양이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11.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18.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재물

많으면 좋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으면 위험하다.

굉장히 영적으로 성장하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서 주어진 물질을 제외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자긍하게 된다.

교만해질 위험성이 다분하고

매일 같이 몸부림 치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이유가 서서히 줄어들고

고민이 줄어들기에 상대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콧등 시큰 거리고 눈 주위가 뜨거워질 횟수와 확률이 떨어지게 된다.

메마른 심령에는 사단이 침범할 가능성 - 가능성이다.   절대로 모두가 아니다.  선한 재력가도 많다.   속깊이 선할지는 주님 만이 아시지만... - 이 많아진다.

 11절에 분명히 '속 생각'이라 한다.

겉으로는 겸손하고 남에게 자선을 베풀고 선교 지원을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할 수는 물론 있다.

사람이 착하면...

그러나,

재물의 위험성은

위엣 것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려 자꾸만 땅엣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데 위험 성이 있다.

주님의 칭찬 대신에 사람들의 칭찬에 신경을 쓰게 한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주님의 말씀이 깊이 들어올 것을

노후 대책이 다 되고

넘치는 물질로

육신의 고통이 감해지면

자연스레이 영적이 감각이 무뎌지게 되나

그 감각이 무뎌짐이

원죄의 이유로 빈곳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결핍된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갈급함은 자신이 모르는 다른 곳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자꾸만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게 된다.

세상에 가진 것을 척도로 타인을 재게 되고

영적인 부분, 위엣 것을 자신 도 모르게 누르고 억압하게 된다.

그래서 그 대체물이 필요하다.

대체물은 '착각'과 '유사물'이다.

 

유사물은 사람들의 칭찬이고

착각은 믿되 중치 않을 수 도 있다는 합리화이다.

 

이 세상은 자기 마음대로 되기에

세상에서 충실하게 열심히 살면 되고

자식들에게 많은 교육과 물질을 물려 주면 영원히 자신이 지속될 것 만 같은 착각이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성공을 가르치고 대물리려 하는 헛된 시도이고

사람들의 박수에

잠시나마 공허한 영혼이 눈물 나도록 기뻐하나

그들의 박수가 끝나면 더 큰 공허는 찾아오게 된다.

그러다가,

누구나 그렇듯

시간은 점차로 흘러가며

죽음은 그의 앞에 다가온다.

 

 이게

주님을 모르거나

주님을 알되 주님보다 더 앞세운 다른 것이 있는 자들의

누구나 겪어야할 길이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주님 없는 삶은 아름다울 것만 같은 바다가 언젠가 뒤집히는 위험과 비슷합니다. )

 

하나님은 오늘 이리 말씀하신다.

 

말씀에 집중하라.

그리고

매일같이 깨달아라.

그것만이 존귀를 유지할 유일한 길이다.

 

아니면

멸망한다.

 

짐승이 도살자에 끌려 가듯이

죽음의 두려움 앞에

거침없이 도살 당하게 된다.

 

 

 

 

적용

 

1 . 감사한다.

 아직까지는

 매일같이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한다.

 은혜를 자주 부어 주심을 감사한다.

 그 은혜의 원천이 말씀이 기준이 되게 하심을 감사한다.

 

2. 성경 5장 읽겠다.

 

3. 오늘 아버지 학교에서 최선을 다한다.

 

4. 곧 있을 수술에 최선을 다한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기도

주여

전요

아직도

돈 많고 성공하는 자들이 부러워요.

그들을 닮지 못하는 내가 한번 씩,

항상은 아니지만요.

부러워요.

그럴 때는

말씀 만 붙잡고 사는 것이...라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간답니다.

솔직히요.

하지만

육신이 조금씩 피곤을 자주 느낄 때마다요.

영원에 비교하면

이 땅의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있는 지 느끼면서

만일

제가 주님을 몰랐고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라면

과연 전 얼마나 불행한 사람일까 생각하며

소름이 끼치고 있답니다.

전요.

지금 행복합니다.

물론 은혜 안에 있기에 그렇지만요.

은혜 할 수 없는 조건에서 받을 수 있는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기에 가능한 것 임을 알고 있으니

이 얼마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입니까?

그러기에 전 행복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의지와

내 아무 것도 없는 선함에도 불구하고

믿게 되었으니

정말 감사함을 느낍니다.

오늘

특별히 말씀에 집중하라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길 원합니다.

비단 저 혼자 뿐 아니라

이 곳에 방문하는 모든 자들이

부디

주님의 말씀으로 전율하는 기회를 얻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들이

주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케 하시고

세상의 부요함과 풍족함이

결코 우리가 누려야하고 고집해야할 궁극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주신 물질은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니고

이웃을 위하여 쓸 것임을

내 도덕적 관념이나

주님의 명령에 대한 강박적 준행 동기가 아니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전율하는 기쁨으로 남을 위해 같이 쓸 그런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저 뿐 아니고 오시는 모든 분들이 같이요.

 

그래서

지금 껏 주신 나의 삶의 여정이

존귀에 있었음을

지금 인정하고 느끼고 감사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외적 조건이 결코 우리의 존귀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깨닫지 못하여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랍니다.

또한

가능하면

주께서

저 뿐 아니라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말씀으로 일어나고

현실의 어려움이 풀어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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