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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물 흐르듯 살아내기[눅9: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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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서 물 흐르듯 살아내기[눅9:1-17]

주하인 2025. 3. 4. 23:10

부제) 조금은 성장한 우리에게 허락하신 연단과정, 초연의 길

        세상이 그럴수록 난 더욱 하나님 나라의 일 만을 위하여 흐른다

        주님 계시기에 이제 난 물처럼 흐르듯 살 수 있을 듯하다 

(Chat GPT)

내 등 뒤에 계신

예수님을 인식하며

든든하게 살아내기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어떠한 일에도

초연해질 수 있기

 

내 영혼을 흐르시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매사 자연스러워 질 수있기

 

내 바래는

내게 바라시는

일상의 영성

심령천국의 삶을 위한

기본을 사모하는 매일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풍성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글거리는 듯한 뿌듯함이다.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하지만... 

세상의 어디엔가에서는 '헤롯'의 고뇌와

그로 인한 예기치 못한 갈등이 싹트고 있다. ㅠ.ㅠ;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열정적 사역, 

복음 전파와 더불어 치유, 축사.. 를 행하고는

그들 역시 '쉴  자리'.. 를 위해서라도 - 아래에 정리해 놓았다 -'따로' 벳세다로 떠나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거기까지 '무리가 따라 왔거늘'...이라면서

쉼마져 쉴 수 없을 상태의 사역의 곤란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영접'하셨다. 

쉼마져 내려 놓고 영접 - 아.. 자신들의 곤란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내게 부족한 모습... 더 정숙하고 정중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매일이 되어야 한다.    일상이 믿음의 좁은 길, 영성의 길임을 감안하면 당연히 그래야한다 . 기도할 부분 ㅜ.ㅜ;. - 하셨다. 

 

 그리고는 그 목적과 모든 방향이 쉬이  드러난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는데

모든 삶의 방향이 꽂혀 있어야 함이다. 

 

 가끔.. 

이 구절을 묵상할 때

피곤이 몰려오고 지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찌.. 세상을 살면서.. ㅠ.ㅠ..다.

그리고 지나친 '사역' 으로 번아웃되어지는

이전의 많은 실례 들을 보면서

예수님이나 가능할 .. 부분이라 생각해 

약간은 피하던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주님은 그리 강요하시는 거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살면서 내게 허락되어진 삶의 범위에서

흐르듯

자연스러운 마음 가짐'으로 들여다 보라심 같이 느껴진다. 

 

 '제자'로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역도 있고

그 안에 나타내 보여지는 많은 기적과 이적도 간증거리로 있지만

또 세상의 갈등은 '영적 전쟁'의 일환,

광야의 인생을 가면서

성화의 과정으로 있을 수 밖에없음이며

그러기에 늘 흔들리는 마음을 너무 좌절로 받아 들이지 말라 신다 .

 

그러면서 

이제는 조금은 더 이타적 선택을 하되

그 선택의 기준은

항상 '더욱 더' ...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파하고 전하는 역할... 이 된다면 

오케이 하고 받아 들여보라 심처럼 느껴진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그런데.. 

그러한 선택에는 위에도 고백했지만

'피곤'과 '행동 우선 주의 에 대한 거부감' 이 막아선다. 

거기에 '합리적'이라는 형용사를 가지고 '걱정'이 다가온다. 

 

저들... 

어떻게 먹여서 움직이지?... 말이다. 

 

하지만... 

주께서는 '무계획'인 듯하신 그러한 선택에 

항상 대처방안을 가지고 계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시는 듯

때로는 책임을 지게 하시는 듯 하지만- 아.. 난 평생 저런 무게를 정말 부담스러워 하며 피했다.  내 자라던 역기능 가족의 흔적이다.. 알면서도 참 벗어나기 힘들던.. 많이 회복되었으면서도 아직도 쓰린 상처로 남은 ㅠ.ㅠ.. 게제에 들여다 보고 더 scrap out 하시길 바라시나보다.. 정결히.. ^^*-그것은 '믿고 준행하면' 

그마져 이루실 하나님의 가벼운 시험이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렇다. 

산다는 것,

좁은 길을 걸으며 

주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 

정말 힘들고 지칠때도 있다. 

어렵고 버거움이 예상되며

당연하지만 세상의 저항이 갈등으로 심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영접하고 정성껏 받아 들여야 한다 ' 

그리고 나머지.. 일상의 예측되는 모든 저항들은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된다. 

이때도 ... '주님 만 뵈면 '된다. 

 

주님이 하실거다 

주님이 합력하여 이루실거다. 

난 .. 거기에 순종의 발만 드리우면 된다. 

하라면 가서 고치고 쫓아내고 전하면 된다. 

 

그리고 때로 피곤할 지라도 

다가오는 많은 가련한 불신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더 전할 수 있으면 된다. 

나머지.. 나중에 생각하자. 

주님이 또 다하실 거다 .

할렐루야.

 

 

주님.

제게는 영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고 

감성도 뛰어나게 해주신 반면

반대의 영적 부분... 영적 오류들에 대하여도 

민감하게 꽂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주님 잘아시리라 압니다. 

주님의 풍성함을 '감성으로' 영혼 깊이 누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꽂혀서 한발도 나가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내 일정부분.. 누려야 하고 숨쉴 틈이 있어야 하고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자들을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지나치다 싶을 때는 콱 닫히는 문이 있습니다. 

주여.

제게 힘을 주소서.

그때 조차....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이라도 

하나님 나라 전파에 도움이 된다면

나를 부인하고 받아 들여 

더 정성껏 '겸손'의 옷을 입고 그들을 대할 수 있길 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그리되게 하소서.

 

그리고 세상의 반발을 더 기뻐하라시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리 살아지게 하소서.

걱정 내려 놓고 

기도만 하길 원합니다. 

주님이 제게 하라 실 때 조차

주님이 그냥 두지 않으실 것을 

제게 느껴지는 주님의 임재감을 근거로 

확신하고 힘있게 사는 자 되길 원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그리 , 오늘의 말씀대로 살아내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0절의 따로 가신 벳세다는 사역 중 쉼을 의미한다 ))

 

네, 맞습니다.

누가복음 9: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고 따로 벳세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따로" 벳세다로 데리고 가신 것은 쉬기 위한 목적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마가복음 6:31에서도 같은 사건을 다루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조용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9:11을 보면, 무리가 그들을 따라오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맞아들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쉬기 위해 벳세다로 가셨지만, 그곳에서도 백성들이 몰려오자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필요(쉼)와, 무리들의 필요(말씀과 치유)를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는 피곤하셨을지라도, 여전히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고, 결국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면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결국, 이 장면은 제자들은 쉬려고 갔으나, 예수님께서는 백성을 위해 다시 섬기시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단순한 휴식이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 Chat GPT가  내 묵상을 주제에 맞추어 정리해 낸 글 ))

주님 안에서 물처럼 흐르며 살아내기

- 그 어떤 것도 주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지 않음을 믿으며 -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며 놀라운 사역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세상의 반발과 갈등이 존재했다. 사역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벳세다로 떠나 쉬려 했으나, 무리는 그들을 따라왔다. 예수님은 쉼을 포기하고 그들을 영접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다.

이 장면은 믿음의 좁은 길을 걷는 자들이 마주할 현실을 보여준다. 사역과 헌신에는 피로와 갈등이 따르지만, 주님은 우리가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그분의 뜻 안에서 살아가길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며, 우리의 한계를 초월한 믿음의 걸음을 요구하신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역사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 순종하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뿐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는 삶은 피곤하고 버거울 수도 있지만,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그 모든 상황이 주님의 계획 속에서 흘러가게 된다. 그러므로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고, 주어진 자리에서 물처럼 자연스럽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자.

주님이 다 하신다. 나는 순종할 뿐이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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