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말씀대로 세상을 보고 주님 뜻대로 천국을 바라보다[눅7:18-35] 본문
부제) 무엇을 보려고 어디에 왜 나갔더냐
오늘 너 무엇을 보고 어디로 나가더냐
무엇을 보려 하고 무엇을 하며 사느냐
난 아직까지 분명히
세상을 바라보고 산다
육신을 입고
이땅의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면
가끔은 깊은 은혜가운데
본질과 진리를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작은 들풀을 바라보면서
우주를 느낄때가 있다
수없이 많은 그러함이
때로 내 영혼을 터치하면서
사진으로 찍혀 나오기도 하고
성시로 활자화 되기도 하며
찬양의 곡조로 드높아 질때도 있다
이제 정말 더 원하는 것은
말씀이 있으시니
즉각
세상의 것들의 진실들
그 안에 함유 함축되어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위한 영광이
내 영혼에 즉시로 내려와
그대로 바라뵈질 수있길
간절히도 원한다
주께서 오늘 그러셨다
너 주하인아
네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인생에
나갔던가
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무엇을 보려고'
무엇을 보다.
그 보는 것이 무엇일까?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보고 있는 것이 보고 있는 거 정말 맞을까?
그 보고 있는 것이 보고 있는 것이 맞다면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보고 있는 것이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일까?
보고 있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내가 보길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난 무엇을 보려고 사는가?
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던가?
난..
나갔던가?
보려고 나갔던가?
보려고 나갔으면 소득은 있었던가?
그 소득이 정말 옳은 소득 맞던가?
내가 원하고 바라는 소득
그 소득이 내가 바라고 보기만 원하던 소득은 맞던가?
나갈 만한 가치가 있던가?
..........
왜 사는가?
무엇때문에 살던가?
난..
사람들의 보는 것에 대한 무지를, 어이없음을
일찍 부터 경험해서 알고 있다.
환우 들이 드나드는 내 진료실.
지금이야 훨씬 단촐하게 내 '성시화'들을 보일듯 보이지 않을 듯
몇개 걸어 놓고 있지만
이전 10수년 전에
정말 뜨겁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글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리던
AY샘병원 시절,
놀라운 변화로 터져나오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매일 블로그에 시화가 생성되고 사진이 찍히면서'
액자로 현상되어 쏟아지듯 나오면서
개중 정말 맘에드는 것들은 '진료실 ' 곳곳에 액자로 걸려 있었다.
거의 빈벽이 없을 정도로..
그 러함을 많이 좋아들 하시던
미션병원 이사장님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그리하였었던 차,
내 진료실에 드나들던 환우들중..
정말 소수의 분만..
일반 진료실과는 너무도 다른 내 진료실의 분위기에
가끔 .. 놀라듯이 깨닫곤 하는 것을 보곤 하였었다.
그 많은 성시화 작품들이
그들 관심의 밖이라
전혀 ~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때로 '말씀' 전할 기회가 생기면 사진을 가리키면서 전도하려면
깜짝 놀라면서 ''이런게 여기에 있었네요.." 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미션병원'으로의 추구가 뜨겁던
초창기 시절 많이 드나들던
'선교사님'들,
목회자님들.. 은
당연히도 '감동'하며 감상하는 비율이 훨 높았고..
무슨 말이던가?
인간 '감각'이나 '본다는 것'.. 의 어설픔이 한도없다는 것을
난 이미 훨씬 오래 전부터 체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
그게 '사람의 인지 능력'이다.
오늘 주님 말씀에
'너희가', 주하인 네가...
''무엇을 보려고" .. 라 물어 보신다.
나.
다행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보려한다.
점차, 그러한 의도가 강해지며
하루를 살아간다.
어제 말씀대로
'백부장'은 '말씀 만 하소서'' 했다.
말씀하시면 말씀대로 세상이 변해짐을 보고 있는 자,
그러한 체험이 있는 자다.
그는....
이제..
난 내 속의 내 마음대로 변화시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려
무진 애를쓴다 .
주님이 말씀하시니
말씀하시는 근거로
내 귀에 들어온 소리
내 눈에 바라뵈이는 정경..을
바라보고 느끼려 애쓴다 .
그리고 '말씀'에서 말씀하시는 바만 바라보려 하고
말씀에 말씀하시는 바 놓치는 것 없는가 노심초사 하려 애쓰려 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가 바라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고민하고
내가 그토록 아쉬워 하던 그 모든 것들
내가 바라보려던 것만 바라보려 하고
내가 보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정말 귀중한 것이 없던지 하등고민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러나...
예수님 믿어가며
점점더 세상의 빠른 흐름과는 다른
내 시간, 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난.. 정말 놓치는 것이 많았었음을 알게 되어져 갔다.
정말 작은 꽃들이 우주를 품고 있으며
덩굴 장미의 등돌린 모습이
그 어떤 장미보다 아름 다울 수 있음,
그 위에 내린 처량한 봄비가
그냥 초췌하고 시선에 들어오지도 못할 버려야 할 것들이 아닌
정말 귀중한 하나님의 피조물,
너무도 아름다운 '장미이슬'을 만들어주는
필수 불가결한 '생명의 비'를 머금는
겸손하고 고요한 장미였음을 깨닫게 되며
그 장미와 비는 서로를 감싸고 안아
'장미이슬을 머금고 있는 장미'이며
'덩굴장미의 외로움을 청초한 붉음으로 승화시키는 장미이슬 비'가 되는
그러함을 보게 되었었다
오래 전부터..........
말씀을 근거로
은혜가 쏟아지면서
이 삭막했던 영혼이 살아나며
내 눈은 '보아야만 하는 진실과 진리'를 보게 되는
아름다운 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거다.
오늘 말씀에서
'무엇을 보느냐 주하인아?'
''어디로 가려 하느냐 주하인아"
'' 무엇을 보고 어디로 향하더냐 주하인아'' 하신다.
그냥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아'
놓치는 아름다움 없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하루 되려 살려 한다. .. .
이게
말씀에서 깨달아지는 진리와 원리다.
할렐루야
주님.
바라본다는 이 감각의 어이없음,
그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인식하는 과정에 끼어들
자아의 수도없이 많은 구멍들..
보아도 보지 못하는 감각의 구멍들..
..
그 어이없음을 통하여
주께서 무엇을
이 결점덩어리 인간들에게 허락하셨는지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우리의 영혼에 채워 넣고
그 말씀을 근거로 흘러 들어오시는 '성령'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를 근거로
진리이신 하나님의 뜻으로
세상을 바라보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며
진정으로 감사되는 삶..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올리게 되는 삶..
그것을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통하여 나오시는 말씀으로
제게 깨닫게 하십니다.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볼 것 보게 하시고
왜곡된 것 보지 못하게 하시며
제대로 바라보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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