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진리를 들었으니 이제 행하는 자되자[눅6:39-49] 본문
부제) 귀인 맹인, 군중 맹인 , 두려움, 마지막 날, 사멸의 날 , 그리고 진리
난 맹인이 아니다 눈 뜬자다 듣고 행하며 걷는 자다
정말이다
그 어디에도
왜 살아야 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찌 이리 되었는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냥 살뿐이다
그냥 매몰되어 걸을 뿐이다
그러다 눈뜨면 바라볼 현실이 암담해서다
어디 갈지 모르는 두려움 뿐이어서다
목소리 큰 자의 소리를 따라
누구나 그렇듯
그냥 그렇게 매몰되어 걸을 뿐이다
나 만이 그러한 게 아니라는
안심이 그리 하게 할 뿐이다
그렇다
두려움이다
공포다
죽음에 대한 그러함
사멸에 대한 본능적 위기 의식 탓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말씀으로 그리말씀하시고
은혜로 체험시키시고
주님의 평강으로 안위하셔 오신다
그리고
오늘 또 행할 일을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듣지만 말고 행하거라
그렇게 그렇게 순종하다 살다보면
마침내 뵐
진리의 그 분이
두손벌리고 기다리심을 목도할 날
곧 마주하게 될 것이다라신다
할렐루야다
난 소경이 아니다
맹인이 아니다
단지
진리 안에 거하게 되어
눈뜬 자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완전히 눈 뜨게될 자다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시146:3-4]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진실이고 사실이며
진리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
그러함에도
맹인이 맹인을 이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그것이 문제고
서로 서로 의지하면 힘이 된다고
서로의 말이 모여 군중이 되면 그 힘이 '진실'이고 진리처럼
오인이 되어 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안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무식한 것을 ,무지한 것을 인식하는 것의 두려움.
갈길 모른단 것을 인식하는것이 두려움..
그 길 모른다는 끝은 '죽음', '사멸', '영멸'....
누구나 왜 사는지 모르고 죽어가는 '운명'...
그것의 진실된 이유가 '죄'의 결과,
원죄적 존재..
그것을 마주하기 두려웁게 하는
'사단의 궤계'가 바탕에 있음이다.
그것을 오늘 '누가복음'에서
정말 정묘히도 묘사했다.
'맹인이 맹인을..'이다.
그리고 어제 자기전, 말씀 묵상 구절을 읽기전
성경읽기에서
시편146절 에서 너무도 뚜렷하고 동일한 구절이 눈에 들어와
옮겨다 놓았다.
군중
무리
bait ball(물고기 무리)
안전한 듯 하지만
오히려 적을 끌어 들이는
파멸이 끝인 자충수..
위안일 뿐
파멸이다.
맹인이 맹인을...의 표본이다
'귀인'...
귀인이라 생각하는 우리 소경들끼리의 끌림..ㅠ.ㅠ
조금 힘이 있고 똑똑한 자 같은 맹인..
그들도 역시 '도울 힘'이 있을리 없다.
비록 모두 같이 한곳으로 가니 거기가 답일 듯한
'군중' 심리의 죄의 리더일 뿐..
그들의 호흡이 끊어지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다면 '그 날, 그 죽는 날이 되자마자'
'그 생각이 소멸되어 버리고 마는'
당연한 이유라 하신다.
그렇다.
진리를 모르면
귀인의 소리인 듯,진리인듯
착각하게 하는 소리에 끌려가다
때되어 그가 예정된 죽음에 들어가면
그 생각도 소멸되고 말아
따라가던 맹인인 우리는
귀인 맹인의 사라짐에 , 소멸에
당황하다가 더큰 두려움에 불타버리고 말거라는 이야기다.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도 진리이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
'로고스 '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를 집중해야한다.
그것만이 '소멸되고 당황할 소멸될 존재'..
맹인에 이끌리는 맹인..
아무 것도 모르고 두려움에 떠는 자의 존재에서 벗어나
진리를 마주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오늘은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내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
'듣고'
'행하라'
듣고 머물면
달콤한 과자에 이빨 썩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곧 '사단의 탁류'..
'맹인 생각'에 끌려가는
'죄의 본성'이
또 여지없이 '우리', '나'를 사로잡아
넘어지기 쉽상이라는 이야기시다.
'행동'이 앞섬도 두려운 일이나
'행동'을 하지 않음도 경계할 일이다.
'듣고'
'행'해야 한다.
말씀이 있으시니
로고스이신 말씀의 하나님의 말씀이신
레마가
내게 '로고스'가 되기 위하여서는
오늘 말씀을 행하여야 한다.
말씀을 더 읽어야 한다.
주님.
그렇습니다 .
다행이도 제게는 아주아주 느리지만
그보다 더욱 많은 주님의 말씀으로 저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제게는 너무 귀합니다.
맹인의 대열에서 벗어나
한동안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일이 있었지만
옳은 말씀, 옳은 소리이신
주님의 말씀으로 저를 방향 잡아 인도하여 주시니
비록 저 맹인의 군중,
저 죽음의 행렬,
저 넓은 길에서 벗어나
옳은 길로 인도 받아 가게 하시는 중이십니다.
하지만...
제 안의 여전한 '남은 죄'성은
'도피성' 성질의 옅은 죄는
여전히 저를 주저 앉히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러십니다.
이제 그만 밖을 바라보거라.
힘있는 맹인의 소리에 끌리지 말거라
하나님의 말씀에 더 집중하거라
말씀에 집중하여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그 변화가
오늘은 더 '행'하는데 힘을 내지는 방향으로 행하거라...라십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들었으니 행하게 하소서
어제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라 .. 시니 사랑하게 행하게 하소서.
미운자를 선대하라.. 시니 선대하는 자 되게 하소서.
그냥 .. 억지로 행하는 결심도 귀하긴 하지만
내가 앞서서 행하는 잠시의 결심보다
그리 말씀하셨으니 그리되게 하실 것을 기대하고
그 방향으로 '하루의 관심'을 유지하는 '의지'를 발하여
주님이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
자연스러운 합력을
오늘도 또 기대하게 하소서
삶에서 부딪치는 '아련한 아쉬움'...
사람귀인에 대한 남아 있는 기대를 내려 놓고
그들끼리의 그러함은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얼마 남지 않아 소멸되어 흩어져 버려
우주 먼지로 사라지고 말
'멈춰버릴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깊이 묵상하게 하시어
오직 '영원하신 말씀'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 만
기쁨으로 집중하게 하시고
말씀이 있으시니 '행동'이 따르는 수준,
나는 안되어.. 라는 생각보다
그 안되는 생각을 넘어서는
말씀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그래서 그 경험이 깊이 체험과 간증으로 쌓여
제 '성품'이 되고
성황의 인생이 되는 방향수정이 일어나게 하소서.
그러한 하루 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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